지난 7월24일, 남기남 감독이 별세했다.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으며 가족들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 남기남 감독은 가장 장 알려진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비롯해 지난 40여 년간 1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다. 비평적 성취를 이루진 못했지만, 1980년대~1990년대를 거쳐온 이라면 그의 작품을 보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있을 듯하다. 빠른 제작 속도로 ‘가장 빠른 카메라잡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던 그. 고인의 명복을 빌며 대표작, 일화 등으로 남기남 감독을 돌아봤다.
시작점
남기남 감독은 1959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의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해 영화를 전공했다. 배우 기주봉, 선우용녀, 최불암 등이 동문이다. 원래 그는 배우를 지망했으나, 당대 미남 배우로 유명했던 최무룡(최민수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을 실제로 마주하고 감독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저히 내 얼굴로는 영화배우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이후 한형모, 장일호, 임원식 감독 등의 영화에서 연출부로 참여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1972년 김지미, 태현실 주연의 멜로드라마 <내딸아 울지마라>로 감독 데뷔를 했다.
다작왕, B급 영화의 대가
남기남을 대표하는 키워드로는 ‘다작’과 ‘B급’을 말할 수 있겠다. <내딸아 울지 마라> 이후 남기남 감독은 1977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1년에 적으면 두 편, 많으면 아홉 편까지 영화를 제작했다. 스스로도 총 몇 편을 찍었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그가 이토록 많은 영화를 제작했던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다. 1970년대 TV의 보급과 함께 한국영화의 경쟁력은 저하됐고, 정부는 그 방편으로 외화 수입을 억제했다. 이때 외화 수입 우선권을 한국영화를 많이 찍은 영화사에게 부여했다. 그렇게 영화사들은 저예산으로 최대한 많은 영화를 제작하려 했고, 이에 맞춰 떠오른 인물이 남기남 감독이다. B급 영화의 유래인 1920년대 할리우드 ‘B Movie’의 탄생과도 유사하다. B 무비는 대공황으로 인한 극장가 불황을 이기기 위한 방편이었다.
부족한 시간, 예산으로 제작된 만큼 남기남 감독의 영화들은 엉성한 완성도를 보여줬다. 이런 엉성함이 오히려 재미 요소로 작용하며, 지금까지도 팬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유사점에서 할리우드의 에드워드 D. 우드 주니어(일명 에드 우드) 감독, 로저 코먼 감독과 비교되기도 했다.
대표작
남기남 감독의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대표작을 몇 개만 꼽아보자. 처음 연출을 시작할 당시 그는 아동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데뷔작 <내딸아 울지 마라> 역시 정극이다. 이후 그가 주력한 장르는 액션 코미디. 이소룡을 필두로 홍콩 액션영화가 크게 유행하던 1970년대 후반, 그는 <불타는 정무문>, <신정무문> 등 <정무문> 패러디 영화들을 제작했다.
코미디언 이주일이 주연을 맡은 <평양 맨발>도 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포목 운반수 황석두(이주일)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소시민이 일제의 횡포에 대항하는 이야기다. <평양 맨발>은 약 30만 명(비공식 집계)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 무명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이 스타덤에 오른 계기가 된 영화기도 하다.
처음으로 심형래와 호흡을 맞춘 것은 심형래의 영화 데뷔작인 <각설이 품바타령>. 이후 두 사람은 <철부지>, <탐정 큐> 등으로 꾸준히 함께했다. 그리고 남기남 감독은 심형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영구’ 캐릭터를 살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아동영화 제작에 초점을 맞췄다. 2000년대 영화로는 여러 코미디언들이 한 데 모인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가 있다.
일화
빠르게 찍기의 달인으로 충무로의 ‘레전드’로 남은 남기남 감독. 이에 걸맞게 그에 관한 여러 일화들도 유명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영구와 땡칠이 2 - 소림사 가다>에서 등장한 소림사 장면. 영화 속에는 실제 소림사에서 찍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당시 촬영 허가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스태프는 “빨리 가서 허가를 받으면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돌아온 남기남 감독의 대답은 “다 찍었다”.
‘하이틴’ 스타 시절의 최수종이 출연했던 <슈퍼맨 일지매>도 있다. 최수종의 바쁜 스케줄로 일정 조정이 힘들었던 상황에서 남기남 감독은 웃는 표정, 우는 표정 등 최수종의 얼굴만 촬영했다. 그리고 뒷모습, 히어로 복장을 입은 모습 등은 대역 배우를 활용했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에서는 본인이 직접 심형래의 대역배우로 나서기도 했다고. 이외에도 붉은 화면을 위해 셀로판지를 카메라 위에 덮어씌운 일화도 있다. <태권소녀 어니와 마스타 킴>은 <영구와 땡칠이> 촬영 중 세트 제작으로 일주일간 촬영이 지연된 틈을 타 만든 영화다.
첫 수상
2009년에는 처음으로 트로피를 쥐기도 했다. 그는 2009년 제47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남기남 감독은 “영화 인생 50년에 단상에 올라와서 상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난 지금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찍고 있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이후 유작인 <동자 대소동>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