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위로 차오르는 유독가스를 피해 칠순 잔치에 모인 일가친척이 옥상에 피신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라오긴 했는데 뉴스에선 구조 헬기가 부족하다고 겁을 준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영화 <엑시트>에서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는 순간에 옥상 문을 열고 부리나케 달려오는 한 젊은이가 있다. 한때 산악 동아리의 에이스였던 용남(조정석)과 연회장 부점장인 의주(윤아) 캐릭터가 이끌고 나가는 이 영화에서 짧지만 막강한 임팩트를 보여주는 용남의 사촌동생 용수(유수빈)다. 직전까지 어딘가 소심하게만 보이던 이 남자는, 더이상 절박할 수 없는 표정과 몸짓으로 기어이 관객을 와락 웃기고 만다. 흥행궤도를 빠르게 달리고 있는 <엑시트>의 신스틸러, 유수빈을 만났다.
-<엑시트>가 무서운 속도로 관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주변 반응을 체감하고 있나.
=연락이 많이 온다. 내 얼굴이 스크린에 크게 나오니까 어머니가 특히 좋아하신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가장 좋아하고 있는 사람은 나다. 내 기분이 제일 좋다. (웃음)
-옥상에서 노래방 기계를 활용하는 장면은 배우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질 법한 장면이다. 신선한 얼굴인 데다 캐스팅이 절묘해서 시너지 효과가 커진 경우인데 엄청난 샤우팅 실력과 큰 입이 인상적이다.
=옥상 문을 여는 순간부터 굉장히 비장하고 진지하며 절실하게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따따따~ 하는 구조신호의 박자를 틀린다는 설정을 집에서 생각하다가 감독님께 말씀드리기도 했다. 시나리오상의 상황 자체가 워낙 재미있었다. 샤우팅 실력은 군대에 있을 때 대대장 훈련병이라고 해서 수료식 때 목소리가 아주 큰 훈련병을 뽑는데, 최종 후보 2인에 올라간 적이 있다.
-취준생인 용남의 상황이 ‘웃픔’을 자아내는 것처럼 사촌동생 용수도 청년 세대로서 자기만의 애환이 있다. 캐릭터를 어떻게 바라봤나.
=용수도 현실이라는 재난에 처해 있는 청년이다. 그래서 실제 재난상황에서 절실한 마음이 강렬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용수는 입시에 실패해서 삼수를 했고,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런 면모를 보여주려고 셔츠를 입었을 때 단추를 끝까지 잠궈서 좀 답답한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거나, 다른 인물들과 마주할 때 땅을 쳐다보고 눈치를 보는 등의 디테일을 상상해봤다.
-배우를 꿈꾸게 된 계기는.
=원래 개그맨이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장기자랑이 열리면 꼭 나가는 애 중 한명이었다. 8살 때 인천사랑병원에서 열린 장기자랑에 나가서 가수 싸이의 <새> 춤을 춰서 1등을 했다. (웃음) 남들 앞에 나서서 웃기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재밌어할 때 특히 뿌듯하다. 고등학교 때는 자주 교실 앞에 나가서 선생님을 따라하고 그랬다. 개그맨이 되려고 일단 연기학원에 다녔는데, 막상 연기를 배워보니 너무 재밌는 거다. 현실에서는 누르고 살게 되는 인간의 욕구를 연기로 다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올해 <엑시트>와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서 모두 약간은 소심하고 귀여운 캐릭터를 연기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에선 흥신소의 부장이지만 권력이 가장 약한 인물이었다. 맨날 눈치 없이 굴다가 혼나고, 쥐어 터지는…. 지금은 인터뷰 중이라 이렇게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만 실제로 내게도 두 캐릭터가 보여준 허술한 면모가 있다.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특히 배우들끼리 친해져서 지금도 가끔 만난다. 오늘도 인터뷰 끝나면 같이 밥 먹고 맥주도 한잔할 예정이다.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가 있다면.
=특정 장르보단 내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에 끌린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0)을 무척 좋아한다. 인간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다루는 이야기에 끌린다. 단편영화로 시작해서 요즘 그때의 열정이 그립기도 하고, 독립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영화 2019 <엑시트> TV 2019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2019 <리갈하이> 2018 <오늘의 탐정> 2018 <이별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