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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이상근 감독 - 보여주고 싶은 것에 집중했다
2019-08-15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꼬박 7년이 걸렸다. 청년 백수 용남(조정석)과 사회 초년생 의주(임윤아)가 산악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갈고닦은 클라이밍 기술을 응용해 가스 테러 현장을 탈출하는 과정을 담은 재난액션영화 <엑시트>가 구상부터 극장에 걸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말이다. 2013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기획개발지원사업에 선정됐던 <결혼피로연>은 옛사랑의 결혼식장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두 남녀가 가스 테러 현장에 남겨진 이야기를 담은 저예산 소동극이었다.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연출부를 거친 이상근 감독의 사수였던 류승완 감독의 제작사인 외유내강이 제작을 맡으면서 제작비 100억원대 상업영화로 판이 커졌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엑시트>는 기존 재난영화의 공식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고유의 개성까지 더한 웰메이드 오락영화로 탄생했다. 이상근 감독은 “원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나 이른바 ‘고구마 캐릭터’ 같은 클리셰도 있었지만, ‘청춘의 탈출’에 집중해서 으레 등장하는 장르 법칙을 제외했다”며 <엑시트> 제작에 관한 뒷이야기를 상세히 들려줬다. 두 주인공의 액션신이 두어 장면 더 있었지만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 같아 과감하게 뺐을 만큼 ‘선택과 집중’에 주력한 <엑시트>는 개봉 8일 만에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다.

-용남이 철봉 운동을 하는 오프닝은 <엑시트>가 어떤 영화인지 선언하는 듯하다.

=소소한 일상에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청년이 클라이밍에 필요한 전완근을 키우기위해 자신만의 루틴을 행하는 모습이다. 소소한 유머를 넣고 분할 화면으로, 우리는 젊고 만화적인 느낌으로 가겠다는 톤 앤드 매너도 보여줬다. 시작한 지 5분 내에 엄청난 시퀀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법칙을 무시했다. 할리우드영화처럼 가스 테러범이 실험실에서 뭔가를 제조하는 모습으로 문을 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는데, <엑시트>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쓰지는 않았다.

-화려한 움직임 대신 현실적인 액션을 추구한다. 첫 장편을 만드는 신인감독에게 위험한 도전일 수 있다.

=드웨인 존슨이 구사할 법한 대단한 액션이 나오는 순간 몰입이 깨질 거라는, <엑시트>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를 무술감독과 많이 나눴다. <엑시트>는 어설프고 평범한 사람들이 힘들게 버티는 모습을 그린 영화다. 사실 톰 크루즈처럼 클립으로 문을 따보라는 용민(배유람)의 대사는 의도적으로 넣었다. 집착에 가까울 만큼 액션을 직접하는 그처럼, <엑시트>도 배우들이 할 수 있을 만큼 직접 해보겠다는 일종의 선포였다. 용남이 컨벤션홀 외벽을 오르는 신 같은 액션 시퀀스를 후반에 넣지 않은 점을 아쉬워하는 분도 있는데, 처음부터 후반 클라이맥스는 두 사람이 숨차게 달리는 이미지밖에 없었다. 응원하고 싶고, 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벅차고. 나에겐 그 모습이 어떤 액션보다도 멋지다.

-용남과 의주는 쓰레기봉투를 입고 뛴다. 청춘의 처지를 쓰레기에 은유한 점이 꽤 파격적이더라.

=쓰레기봉투 안에 쓰레기가 아닌 인간이 있고, 그들은 누군가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이상해서 웃을 수는 있어도, 웃겨서 웃음이 나와서는 안 되는 신이라고 봤다. 생존을 위해 달리는 모습이 처절하면서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쓰레기가 쌓여 있는 옥상을 달리는 신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재난의 규모를 보여주는 연출을 최대한 자제했다. 가령 <엑시트>에는 시체도 등장하지 않는다.

=초반에 사람들이 가스를 마시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어느 정도 보여주긴 했지만, 그들의 희생과 참상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데 불편을 느꼈다. 물론 그런 신이 적재적소에 배치됐을 때 좋은 연출이 되는 영화도 있지만, 유머가 있는 <엑시트>에서는 그런 신이 몰입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된다. 재난과 유머를 한 장르 안에 버무리기 위해서는 그 나머지를 확실히 줄여야 했다. 그래서 어느 지점 이후에는 거리에 널린 핸드백, 신발,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했다.

-드론과 크리에이터들의 등장은 주인공의 분투를 온 국민이 지켜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자 지금 한국 사회를 대변하는 설정이다.

=이전에는 유명한 사람만 카메라에 찍혔다면, 지금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이 생겼다. 드론은 2015년 시나리오 5~6고쯤부터 등장했다. 당시 드론이 유행할 조짐이 있었고, 이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유튜브가 전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대 풍경을 영화의 전개에 활용하기 위해 슈기·윰댕·대도서관 같은 크리에이터들을 카메오로 섭외했다.

-용남과 의주는 건너편 건물 학원에 남아 있던 학생들에게 구조 헬기를 양보한다. 그때 카메라는 학원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멀찌감치에서 아이들을 찍는다.

=그 시퀀스의 원래 의도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타심을 보여주고 드라마적 상황을 구성하는 데 있었다. 그 시간까지 건물에 남아 있을 법한 사람은 누구일까. 용남과 의주보다 약한 존재, 특히 한국이라면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 역시 그랬으니까. 범국민적 트라우마를 낳은 사건 이후 재난영화에서 희생될 것만 같은 아이들이 등장하면 피해갈 수 없는 지점이다. 이 장면이 관객의 아픈 기억을 건드린다면 영화가 아주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촬영할 때 최대한 거리를 두고 싶었다. 극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아이들의 절박한 감정을 바스트숏으로 담는 식으로 촬영해서는 절대 안 됐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용남과 의주의 감정은 시점숏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내가 만든 영화의 장면이 한국 사회에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거창한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세월호와 분리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용남이 가족과 만나는 신에서 의주를 배제한 점이 아쉽다는 반응도 있는데.

=용남의 가족이 의주에게 수고했다는 식의 말을 건네는 순간, 그것은 ‘웰컴 투 시월드’가 된다. 땀 흘리며 노력한 의주가 용남의 가족으로 편입되어 ‘예비 며느리’가 되는 그림이 싫었다. 이것은 둘만의 이야기여야 했다.

-용남과 의주는 같은 국문과 출신이고, 의주는 임용고시를 준비했지만 잘 안 됐다는 설정이 있었다. 의주의 부모가 제주도에 살고 있고 뒤늦게 딸 소식을 접하고 비행기를 타고 올라온다는 배경이 있었지만 극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임용고시 관련 내용은 대사에서 뺐다. 원래 의주의 부모님이 집에서 딸을 걱정하는 신이 있었는데, 서사가 너무 복잡해져서 편집 단계에서 없앴다. 영화가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가야 하나 싶기도 했고. 6개월 후 두 사람의 후일담을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은 <엑시트>의 톤 앤드 매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 역시 배제했다.

-테러는 신시가지에서 시작되고, 구시가지로 가스가 점차 이동한다

=‘국제미래신도시’라는 가상의 공간은 기존의 것이 사라지며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신시가지는 비즈니스 구역으로 높은 빌딩이 많다면, 용남과 의주가 있는 구시가지는 기존 주민들이 있던 곳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본 익숙한 건물이 있다. 두 사람이 건너는 끊어진 육교 역시 사라지는 어떤 것을 보여준다. <엑시트>가 거대 담론을 제시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내포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높은 곳에 올라가야 살아남는다는 설정은 단지 물리적인 의미만을 담지 않고, 많은 분의 분석처럼 계급 문제와 연결된다. 하지만 영화에 정치색을 포함하고 싶지는 않았다. 계급 문제에 대한 비판보다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봐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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