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변신> 김홍선 감독, "잘잘못을 따지기 힘든 이야기가 흥미롭다"
2019-08-22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김홍선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하나의 가닥으로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실제 장기밀매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공모자들>(2012) 이후 그는 김우빈, 이현우 같은 젊은 얼굴들을 내세운 케이퍼 무비 <기술자들>(2014)을 만들었다. <반드시 잡는다>(2017)는 ‘~들’로 제목을 짓던 법칙을 깨면서, 노인을 액션의 주체로 내세운 추적 스릴러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과 이웃에 얽힌 사회문제를 조명해온 김홍선 감독의 일관성을 읽어낼 수 있다. 장기매매로 이익을 챙기기 위해 보험조사원이 일부러 피해자와 결혼까지 했다는 씁쓸한 반전으로 문을 닫는 <공모자들>부터 노인 고독사를 다룬 <반드시 잡는다>까지, 김홍선 감독의 작품에는 평범한 가정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서로의 일상을 일정 부분 침범하는 필연에서 비롯된 이웃 문제는 최근의 세대론까지 아우른다. 그가 처음으로 오컬트에 도전한 <변신>은 김홍선 감독만의 인장이 무엇인지 좀더 확신을 갖게 되는 작품이다. 인간의 외형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변신>의 사탄은 주차 문제로 부딪히는 맞은편 이웃에게도, 공간을 공유하는 가족 안에도 스며들 수 있다. 가장 익숙한 단위로 공동체 문제를 조망하는 김홍선 감독이 스릴러가 아닌, 하우스 호러로 돌아왔다.

-(주)다나크리에이티브의 구성목 대표에게 연출 제안을 받았다.

=구 대표는 <공모자들> 당시 한주 차이로 개봉한 <이웃사람>(2012)의 제작자였다. 그때부터 알고 지내다가 <반드시 잡는다> 이후 다른 작품을 준비하던 나에게 이게 더 어울리지 않겠냐며 시나리오를 주시더라. 누구든 악마성을 갖고 나타날 수 있다는 기획 의도가 너무 좋았다. 지난해 6월쯤 제안받고 두달 동안 각색했고, 11월 말에 촬영에 들어갔다.

-어떤 부분을 수정했나.

=사탄이 가족의 얼굴로 나타난다는 설정만 놔두고 거의 3분의 2 정도 각색했다. 반복되는 신을 줄이고 새로운 설정을 넣으면서 89쪽 정도였던 분량도 51쪽으로 줄었다. 원래는 신부, 형사, 가족, 세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형사 캐릭터가 사건을 해결했다. 신부가 된 중수(배성우)가 강구(성동일)네 가족과 함께 살며 눈칫밥을 먹고 형수인 명주(장영남)에게 괄시당하는 구체적인 신도 있었다. 각색 과정에서 형사 캐릭터를 없앴고, 소녀에게 구마의식을 치르던 중 그를 죽게 만든 중수의 트라우마를 새로 만들어 오프닝으로 썼다. 엔딩도 완전히 달라졌다.

-여백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시나리오의 모든 장에 빼곡하게 메모한다. 취재 과정에서 얻은 천주교와 악마에 대한 지식 중 <변신>에 녹여낼 만한 것들도 따로 적어놨던데.

=영화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아도 기본 설정이라고 생각해둔 것들이다. 중수의 세례명은 유스티다. 최초로 평신도에서 순교자가 된 인물에게서 따왔다. <변신>의 사탄은 ‘아리만’(조로아스터교의 선신인 아후라 마즈다에 대립하는 악마.-편집자)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서로를 험담하고 거짓말하게 만드는 악마다. 그외에도 ‘바보 같지만 꼭 지켜야 할 십계명’을 맨 앞장에 적어두고 매일 아침 읽은 후 촬영에 들어갔다. 설정숏을 꼭 찍는다, 호흡에 의한 핸드헬드를 가져간다, 타협하지 않는다, 찍기 전날 부분 리딩을 반드시 한다, 호러영화의 분위기를 잊지 말자, 키(Key) 컷은 공들여 찍는다, 클로즈업을 많이 딴다, 망원렌즈의 사용, 나도 좋아야 남들도 좋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자…. 화음과 대사, 여기에 오케스트라가 합쳐지면서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아이디어도 적어놨는데, 합창이 너무 성스럽게 보인다는 의견이 있어 마지막에 뺐다. <변신>에서는 무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겉표지의 영화 제목 바로 밑에 ‘mood’를 크게 써서 볼 때마다 상기했다. 콘티북을 따로 갖고 다니지 않고 촬영 때마다 프린트를 하는데, 거기에도 그날그날 이런 식으로 필기를 한다.

-부마자들의 비주얼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악마 백과사전>이라는 책을 보면 나일강 유역 문명에 까마귀 악마가 있다. 인간의 껍데기 안에 동물 형태의 악마가 있다는 건데, 당시 동물에게 갖던 두려움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손에서 까마귀 털이 나오는 그림도 생각해봤는데, 너무 과한 것 같아 영화에 넣지는 않았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소녀는 뱃속에서 말을 하는 악마 모티브를 가져왔다. 악마가 입으로 나오는 그림도 생각해봤지만 이 역시 너무 과한 것 같아 검은 연기로 이동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오컬트 장르에서 ‘빙의’는 이미 너무 많이 등장했다. 때문에 악마에 관한 실제 기록에서 차용할 수 있는 다른 설정으로 비틀기위해 노력했다. 부마자들이 많은 양의 피를 쏟는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미키 루크 주연의 <엔젤 하트>(1987)를 오마주한 거다.

-주 무대가 되는 저택은 낡고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어디서 찾았나.

=80, 90년대 지어진 2층 양옥집이면서 지하실이 보이고, 차가 다니는 길이 좁아야 했다. 꽤 크고 비싼 집인데 아무로 입찰하지 않아 이사 올 수 있었다는 설정과도 맞아야 했다(원래 시나리오에는 강구가 경매를 하러 갔을 때 악마의 농간으로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입찰하는 신이 있었다.-편집자). 또한 옆집과 거리가 가까워서 이웃간 소음이나 주차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악마가 집에 스며 들었을 때 메마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이어야했다. 적절한 공간을 찾느라 제작부 친구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크랭크인 직전 대구에서 찾은 공간에서 저택 외관을 촬영했다. 내부는 전부 세트다. 동선이 단순하지 않게끔, 구조가 뻔하지 않게끔 디자인했다. 동시에 리얼함을 주기 위해 실제 집과 같은 사이즈로 만들었다.

-필모그래피 전반에 이웃과 뒤틀린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변신>에서 이웃집 남자와의 갈등은 미스터리의 기점이 되고, <반드시 잡는다>는 세입자와 집주인의 갈등을 다룬다. <변신>의 ‘가족의 얼굴을 한 악마’는 <공모자들>에서 아내의 장기매매를 주도한상호(최다니엘)와 연결된다.

=실제 우리 집은 화목한데(웃음), 그래서 문제 많은 가족을 오히려 상상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겐 이런 이야기가 색다르고 재미있게 다가온다. 층간 소음 문제로 불평이 터지면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게 되는데, 명확하게 선과 악이 구분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기 힘든 이야기가 뾰족하고 흥미롭다. 내가 만든 영화들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정리되고 나오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변신>의 엔딩을 해피엔딩도 배드엔딩도 아니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악마가 가족 중 누구의 얼굴로 나타날지 모르는 긴장감을 주는 시퀀스들이었다. 그런데 <변신>은 후반부 중수의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얘기한 엔딩과도 이어진다.

=장르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마무리가 있었다는 말에 동의한다. <변신>은 가족 이야기이고, 지금의 결말이 이 이야기의 정서에 더 맞다고 생각했다. 해피엔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마가 살아 있었다며 속편을 예고하는 식의 결말도 생각했지만, 호러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봤던 설정이라는 생각에 그냥 없앴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좀 달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죄책감’을 가진 혹은 자신이 믿는 ‘옳은 길’을 가려는 남성들은 당신의 작품을 하나로 잇는 가교로 보인다. <공모자들>의 영규(임창정)가 가진 죄책감은 장기 적출을 위해 납치된 여성을 살려주는 이유가 되고, <기술자들>의 지혁(김우빈)은 스승의 복수를 위해 1500억원을 터는 작전을 거짓으로 설계한다. <변신>의 중수 역시 자신이 잘못한 바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려 노력한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하고 있다. 가령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거리에 버리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 적 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은 무조건 어떤 쓰레기 소각장으로 소환되는 거다. 신호위반하는 차는 제3의 공간으로 순간 이동시켜 30분 정도 갇히게 하고. 이 정도 대가를 치르면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전작 <반드시 잡는다>의 주연배우였던 성동일·백윤식을 포함해 배우 라인업은 어떻게 완성됐나.

=강구 역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성동일 선배님을 떠올렸다. 발타자르 역은 내가 각색하면서 새로 추가한 부분인데, 임팩트 있고 무게감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우정출연을 거의 안 하시는 분이라 백윤식 선생님에게 삼고초려해서 출연을 부탁드렸다. 배성우 선배님은 제작사 대표가 추천했다. 나 역시 너무 좋아하는 배우라 흔쾌히 함께하게 됐다. 명주 역의 장영남 배우는 사실 내가 조연출로 참여한 드라마 <대물> 당시 인연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준 다음날 바로 오케이하셨다. 배우들이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프리 프로덕션 당시 디자인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세 남매는 오디션으로 뽑았다. 첫째 선우 역의 김혜준은 매니지먼트AND의 권오현 대표가 사무실에 놀러 왔을 때 보여준 <마녀>(2018) 오디션 영상에서 발견했고, 둘째 현주 역의 조이현 배우는 단편영화 <귀로>(2018)에서 인상 깊어 미팅을 하게 됐다. 다만 이 두 배우가 너무 닮아서 역효과가 날 수 있겠다는 걱정이 있었는데, 의상팀, 분장팀과 논의한 결과 충분히 두 캐릭터를 차별화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강훈이는 <사랑하기 때문에>(2016)에서 성동일 선배님의 아들로 나왔던 배우다. 너무 귀엽고 연기도 잘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막내 우중 역에 오디션을 보러 온 것을 알고 바로 만나자고 했다.

-<변신>에서 가장 강도 높은 학대를 받는 이는 침대에 묶여 몇번이고 매를 맞는 첫째 선우다. <공모자들>에서 장기 적출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채희(정지윤), <반드시 잡는다>에서 한의사 정혁(천호진)의 아픈 아내를 대신할 제물로 납치된 205호 세입자 지은(김혜인)이 생각났다. 이런 이미지를 자주 반복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보고 목을 잡는 신을 꼭 넣는다고, <공모자들> <기술자들> <반드시 잡는다> <변신>에 모두 등장하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의식하고 넣은 신은 아니었다. 상대의 목을 잡는 액션은 이야기적으로 필요할 때 다시 등장할 수 있겠지만, 여자든 남자든 누군가가 묶여서 고통받는 장면은 앞으로는 지양하려고 한다. 다음부터는 고민을 더 많이 하고 다른 방식으로 연출하겠다.

-피겨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그런데 마니아적 기질이 영화에 드러나지는 않는 듯하다.

=정말 좋아한다. 핫토이도 좋아하고, 게임도 좋아해서 몇년 전에는 <디비전>에 엄청나게 빠졌다. 게임 커뮤니티 루리웹이나 디시인사이드의 관련 갤러리에 거의 매일 들어가는데,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활동을 꽤 열심히 했다. 글도 사진도 열심히 올렸더니 루리웹에서는 레벨이 60가까이 되더라. (웃음) 근데 이런 곳에서 내 영화에 대한 안 좋은 글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영화 일을 하면서 좀 덤덤해질 때도 됐는데, 안 좋은 댓글을 보면 여전히 속상하다. 이런 마니아 성향이 직접적이진 않아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 속 캐릭터를 피겨로 형상화할 때 어떻게 색을 구현하느냐는 컬러리스트들의 중요한 고민이자, 사는 사람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문제다. 덕분에 영화를 연출할 때 배색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변신>의 저택은 기본적으로 우드 톤이지만, 컵이나 액자에는 다른 색을 줬다. 중수의 성당은 암바 톤으로, 발타자르의 구마를 담은 TV 속 장면은 컬러풀하게 갔다.

-차기작은.

=쓰고 있던 시나리오도, 제안을 받은 아이템도 있지만 우선은 <변신>이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서 여기에 올인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아주 센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 반, 휴먼이나 로맨스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반 정도 있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세렌디피티>(2001)다. 멜로드라마를 많이 연출한 오종록PD 밑에서 조연출과 B팀 연출을 맡던 시절, 옆에서 배운 게 많았다. 기회가 있으면 휴먼이나 멜로장르를 연출해보고 싶다. 슈퍼히어로들의 실상을 파헤치는 내용을 담은 아마존 드라마 <더 보이즈>나 영화 <더 보이>(2019)를 흥미롭게 봤는데, 표현수위가 막혀 있지 않은 다크 히어로물도 언젠가 하고 싶다. 원래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을 만족시키면서, 새로운 층을 유입할 수 있게끔 상업적인 요소를 더하는 그림을 상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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