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약 중독자가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마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야기의 얼개만 봤을 때는 가족의 사랑과 인간 승리라는 주제를 다루는 감동적이지만 전형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약중독으로 점차 망가져가는 아들 닉 셰프(티모시 샬라메)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아버지 데이비드 셰프(스티브 카렐)의 이야기는 중독 문제를 다루는 영화가 쉽게 취할 수 있을 만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영화는 닉이 마약에 빠졌다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한번에 직선적이고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지 않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치료와 재발이 되풀이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마약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닉의 회복이 가져오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은 재발이 가져오는 절망적인 순간과 끊임없이 교차한다. 이 과정을 보는 이마저 고통스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감으로써 영화는 중독자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직시한다. 감동적이고 낙관적인 희망이 아니라 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에 가득한 고통에 집중하고, 초인적인 의지와 헌신이 아니라 한 가족의 연약함을 보여주려 한 영화의 선택은 이들의 사투를 더 감동적인 것으로 만든다. 서로를 상처 입히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놓지 못하는 부자를 연기한 스티브 카렐과 티모시 샬라메의 호연이 영화에 큰 힘을 불어넣는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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