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201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던 <조커>가 차지했다. 코믹스 캐릭터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에서 최고상을 거머진 것. 이에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 관객들의 <조커>를 향한 기대는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그러나 2019년 베니스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것은 <조커>뿐만이 아니다. 거장들의 신작을 비롯한 여러 영화들이 관객들을 만났다. 대부분 국내 개봉은 불투명한 작품들이지만 <조커>와 함께 베니스를 장식한 화제작 7편을 소개한다. 미리 영화를 관람한 해외 평단의 호불호를 취합한 로튼토마토 지수(9월17일 기준)를 함께 게재한다.(<조커>는 현재 76%를 기록 중이다)
로이 앤더슨 감독 <어바웃 엔들리스니스>
은사자상 / 로튼토마토 신선도 94%은사자상은 스웨덴의 블랙코미디 거장, 로이 앤더슨 감독의 신작 <어바웃 엔들리스니스>가 차지했다. <유, 더 리빙>, <비둘기, 가지에 앉아 존재를 성찰하다> 등으로 유수의 영화제를 휩쓸었던 그는 다시금 실력을 입증했다. <어바웃 엔들리스니스>는 폐허 위를 날아다니는 연인, 빗속에서 딸의 신발을 묶어주는 아버지, 어디론가 끌려가는 전쟁 포로 등 여러 장면을 통해 인간의 아름다움, 잔인함 등을 담은 영화다. 뚜렷한 서사는 없지만 각 장면을 역사적인 사건들에 비유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느리게 비추며 씁쓸한 휴머니즘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로이 앤더슨 감독의 특징인 정적인 화면, 몽환적인 분위기, 비전문 배우들의 날 것 같은 연기는 그대로 유지했다.
양범 감독 <넘버 세븐 체리 레인>
각본상 / 로튼토마토 신선도 80%<넘버 세븐 체리 레인>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의 유일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금세월>, <미소년지련>, <유원경몽> 등의 영화를 제작하며 홍콩 영화계의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는 양범 감독. <넘버 세븐 체리 레인>은 그의 첫 애니메이션이다. 화면 질감은 달라졌지만 이번에도 그는 자주 다루었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랑을 그렸다. 주인공은 1960년대 홍콩에 살고 있는 한 영문과 학생. 그는 자신이 과외를 해주고 있는 여성과 그녀의 어머니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삼각관계에 빠진다. 작품성을 인정받은 여러 영화들을 배출했지만 이전까지는 상복이 크게 따라주지 않았던 양범 감독. 장기를 살려 도전을 강행한 <넘버 세븐 체리 레인>은 베니스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로튼토마토 신선도 77%2018년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의 신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최초 공개됐다. 처음으로 해외 배우들과, 해외 로케이션에서 진행한 작품으로 에단 호크와 프랑스의 국민배우 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았다. 까뜨린느 드뇌브가 유명 배우 파비엔느를, 줄리엣 비노쉬가 그녀의 딸을 연기했다. 오래간만에 마주한 두 모녀가 쌓였던 갈등으로 대립하며 진실이 드러나는 전개다. 에단 호크는 줄리엣 비노쉬의 남편으로 등장한다. 따듯함과 서늘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독의 세계를 볼 수 있을 듯하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 <애드 아스트라>
로튼토마토 신선도 82%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애드 아스트라>는 <조커>와 함께 일찌감치 국내 개봉이 확정된 작품이다. <비열한 거리>, <이민자>, <잃어버린 도시 Z> 등으로 실력을 입증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브래드 피트를 필두로 SF 스릴러 <애드 아스트라>를 완성했다. 우주 비행사 된 로이(브래드 피트)가 우주에서 실종됐던 아버지가 살아있고, 아버지의 실험이 인류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을 알게 되는 이야기. 부자 대립, 지구 구하기 등의 설정은 자칫 뻔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느린 호흡으로 인물의 감정에 집중했다. 의심, 소통에 대한 메시지를 심도 있게 전달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 <더 퍼펙트 캔디데이트>
로튼토마토 신선도 90%하이파 알 만수르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녀는 2012년 <와즈다>를 통해 베니스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 10개가 넘는 트로피를 거머줬다.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 아이가 자전거를 사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여성 인권 문제를 아이의 시선으로 밝고 사랑스럽게 그려내며 찬사를 받았다.(실제 이 영화의 여파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러 율법들이 개정되기도 했다)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신작 <더 퍼펙트 캔디데이트>에서도 중동 문화 속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하는 첫 여성 후보의 고군분투다. 문제의식을 날카롭지만 차분하게 담아냈다고.
노아 바움백 감독 <결혼 이야기>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칸의 행보와 반대로 베니스는 넷플릭스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올해도 경쟁부문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더 런드로맷>,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 두 편의 넷플릭스 영화가 초청됐다. 그중 <더 런드로맷>은 큰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결혼 이야기>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가 부부로 출연한 <결혼 이야기>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부부가 쉽사리 헤어지지 못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를 관람한 50명 이상의 평단 전원이 호평을 하며 이미 수작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따듯하지만 현실적이게 공감을 자아낸다고. 국내에서는 10월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12월6일 넷플릭스에 공개될 예정이다.
섀넌 머피 감독 <베이비티스>
마르첼로 마스트로안니 상 / 로튼토마토 신선도 100%마지막은 시작부터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수상까지 거머쥔 번뜩이는 신예 감독의 작품이다. 그 주인공은 단편영화, TV 드라마 등으로 경험을 쌓은 호주의 섀넌 머피 감독이다. 그녀의 장편 데뷔작 <베이비티스>는 중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10대 소녀 밀라(일라이자 스캔런)가 마약상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러나 달달한 둘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밀라가 욕망을 깨닫고, 이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에 집중했다. 발랄하지만 강렬한 캐릭터를 자랑, 모든 면에서 진부함을 떨쳐냈다. 그 결과 <결혼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호평 세례를 받았다. 또한 마약상 소년을 연기한 토비 월레스는 배우 특별상 격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안티 상까지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