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가 주연하고,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영화 <애드 아스트라>가 9월 19일 개봉했다. 작품마다 존재감은 물론이며 연기력으로도 손색없었던 브래드 피트는 제작사 '플랜 B'(PLAN B Entertainment)의 엄연한 수장이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뷰티풀 보이>, <더 킹: 헨리 5세>도 플랜 B가 제작한 작품. 2001년 설립 이래, 여러 작품을 아카데미 시상식에 불러내며 뛰어난 안목을 자랑했던 플랜 B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한다.
디파티드(2006)
경찰이 된 갱, 갱이 된 경찰. 홍콩영화 <무간도>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인 <디파티드>는 제79회 아카데미의 주인공이었다.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등 총 4개의 트로피를 석권했다. 거장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연출, 게다가 주연 배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 잭 니콜슨이다. 이들의 이름값만으로도 기대가 모이는 <디파티드>는 <무간도>의 언더커버 경찰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를 미국 스타일에 맞게 잘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흥행 면에서도 스코시즈의 영화 중 최고 수준인 약 2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원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관객들은 만족하지 못한 모양새였지만, 정작 마틴 스코시즈는 원작 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고 <디파티드>의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머니볼(2011)
발표된 장편 극영화는 단 3편. 하지만 세 편 모두 비평적 성공을 거둔 감독 베넷 밀러의 두 번째 작품 <머니볼> 역시 플랜 B의 제작으로 태어났다. 브래드 피트는 주인공을 연기하기까지 했다. 방대한 대사로 극도의 집중을 안기는 데 정평이 난 아론 소킨의 각본도 힘을 더한다. 가난한 야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 <머니볼>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스포츠 경기에 수학적 확률을 도입하는 도발적인 실험이 개입되며, 승패에 아주 민감해진 한 남자의 고뇌를 비춘다. 스포츠를 잘 몰라도 <머니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주인공의 불안을 묵묵히 좇는 카메라의 균형감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트리 오브 라이프(2011)
브래드 피트는 영화계의 은둔자 테렌스 맬릭과 <트리 오브 라이프> 작업을 통해 꽤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브래드 피트는 이 작품에서 역시 제작과 주연을 겸했다. 영상으로 쓴 광활한 시와 같은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미려한 카메라로 포착한다. 고요히 휘몰아치는 명상의 감흥을 선물한 <트리 오브 라이프>의 성과엔 거장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의 공이 크다. 자연광을 최대치로 활용한 영상이 장면마다 아름다운 영화는 결국 제6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됐다. 브래드 피트는 칸영화제 인터뷰에서 테렌스 맬릭 감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잠자리채를 들고 서서 진실의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라고.
월드워Z(2013)
웰메이드 좀비물 <월드워Z>는 단발머리의 브래드 피트가 멋진 주연으로의 활약을 보여준 작품인 동시에, 그가 제작한 대표작이기도 하다. 한 유엔 전문가의 좀비 전쟁 보고서를 테마로 한 소설 <세계대전 Z>는 그 방대한 스케일과 상상력 덕분에 판권 경쟁이 치열했다. 판권을 확보한 플랜 B는 <월드워Z>를 성공시키곤 곧바로 속편 제작에 착수했다. 속편에 데이빗 핀처의 연출이 더해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대감은 극에 달했지만,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정상 제작이 불투명해진 상태. 세계 각국의 상황을 반영한 현실감 넘치는 묘사와 시선을 사로잡는 독창적인 연출이 빛났던 <월드워Z>가 한 편으로 그치게 됐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노예 12년(2013)
플랜 B의 감식안이 예사롭지 않다. 감독 스티브 맥퀸은 <헝거>, <셰임>으로 꾸준히 평단의 지지를 받아왔다. 세 번째 작품 <노예 12>년을 플랜 B에서 제작했으며, 어김없이 브래드 피트가 베스 역으로 출연했다. 1841년, 미국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던 바이올리니스트가 돌연 납치돼 노예로 살게 된 12년의 세월을 담았다. 너무도 당연시됐던 차별의 척박한 땅에서, 유일한 노예제 폐지론자로 관객의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이 바로 베스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한 가운데 놓인 흑인 노예들을 비춘 롱테이크 신이 묵직하게 남는 <노예 12년>.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노미네이트됐으며 작품상, 각색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문라이트(2016)
플랜 B와 배리 젠킨스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 작품. 개봉 전부터 걸출한 퀴어 영화의 탄생 소식으로 기대를 불러 모았지만, 정작 <문라이트>는 퀴어(queer)라는 카테고리에 갇히기보다 한 소년의 인생으로 확장된 이야기였다. 1970년대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샤이론(트레반트 로즈)이라는 흑인 소년의 성장을 짚어간다.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세 단락으로 나뉜 샤이론의 인생은 동성애자라며 핍박받던 주변의 시선들, 마약을 파는 갱단의 보스가 된 그의 단출한 관계를 조명한다. <문라이트>는 제89회 아카데미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색상을 휩쓸었다. 섬세한 감정선으로 쌓아 올린 영화는 ‘달빛 아래선 모두가 푸르다’는 사려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잃어버린 도시 Z(2016)
<세계대전 Z>의 원작 소설에 이어, 브래드 피트는 베스트셀러 <잃어버린 도시 Z>에 매료됐다. <애드 아스트라>에서 제작 및 주연을 겸한 브래드 피트는 제임스 그레이와의 연을 <잃어버린 도시 Z>로 쌓았다. 감독의 지난 필모그래피가 증명하듯, <잃어버린 도시 Z>는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모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위대한 실패에 관한 서사이며, 미지의 영역이던 20세기 아마존 유역에서 끝내 무언가를 보고자 했던 탐험가에 대한 기록이다. 제목의 ‘Z’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인 Z의 문명을 추적한다는 의미. 집념의 주인공 퍼시 포셋을 연기한 찰리 허냄의 주변을 로버트 패틴슨, 시에나 밀러, 톰 홀랜드의 단단한 존재감으로 채운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2018)
<문라이트>에 이어 배리 젠킨스의 차기작도 플랜 B가 제작했다. 선명한 눈빛만으로 관람욕을 자극하던 예고편의 인기가 무색하게, 아쉽게도 국내 극장 개봉에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배리 젠킨스의 영향력은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도 여전했다. 각종 시상식에서 호명됐고, 제91회 아카데미에서 레지나 킹은 여우조연상 수상을 거뒀다. 1970년대 할렘가의 흑인 커플, 티시(키키 레인)와 포니(스테판 제임스)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며 동반자가 된다. 신뢰와 확신이 깃든 둘의 사랑 앞에, 돌연 강간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포니의 비극이 펼쳐진다. 백인 경찰에게 지목된 흑인 포니의 결백은 티시의 노력으로도 번번이 좌절된다. 억울한 상황 속에서 견딜 것이라곤 다만 사랑뿐이었던 이야기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 제임스 볼드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