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을 장식했던 <언더 더 실버레이크>가 9월19일 국내 개봉했다. 백수 샘(앤드류 가필드)이 실종된 이웃집 여성 사라(라일리 코프)의 행방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줄거리만 봐서는 단순한 추적 스럴러로 생각될 수 있지만 <언더 더 실버레이크>는 반쯤(?) 정신을 놓게 되는 영화. 정신착란을 겪는 샘의 모습,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어려운 공간, 온갖 장르의 혼합, 양파 껍질처럼 등장하는 음모론 등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확실히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나뉠 작품이다.
그렇다면 <언더 더 실버레이크>처럼 독특한 스토리, 전개 등으로 관객들을 '멘붕'에 빠뜨렸던 작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근 5년 사이,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던 화제작 7편을 소개한다. 섬세한 드라마보다 '판타스틱'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 장르영화를 좋아한다면 도전해봐도 좋을 영화들이다.
<테일 오브 테일즈>(2015)
판타지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동화'. 이탈리아의 차세대 거장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테일 오브 테일즈>는 이에 딱 부합하는 영화다. 다만 성인들을 위한 핏빛 잔혹 동화다. 세 가지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아들을 낳기 위해 괴물의 심장을 먹는 왕비, 아버지의 실수로 거인과 결혼하는 공주, 하룻밤 사이 젊음을 되찾은 노인 등이 등장한다. 모두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들로 그들의 말로를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전개다. 중세 유럽의 아름다운 전경을 아름답지만 괴기한 비주얼로 구현했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와 이미지로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다.
<더 위치>(2015)
지금은 할리우드의 대세 배우가 된 안야 테일러 조이. 그녀의 시작을 장식한 작품은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더 위치>다. 1692년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에서 발생한 세일럼 마녀재판을 모티브로 한 영화. 죄 없는 소녀 토마신(안야 테일러 조이)이 마녀로 몰리며 겪게 되는 고통, 분노 등을 담았다. 게다가 실제 세일럼 마녀재판은 마을 주민들의 집단 광기가 원인이었다면, <더 위치> 속 주동자들은 토마신의 가족들. 누구보다 가깝던 이들에게 몰리게 되는 토마신의 압박감은 배로 힘들어 보였다. 거기에 산속 외딴집의 스산한 공기, 노이로제를 유발하는 괴상한 토끼, 여러 섬뜩한 오컬트 장면 등은 숨죽이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스위스 아미 맨>(2016)
다음 영화 역시 <더 위치>를 이어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폴 다노,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의 <스위스 아미 맨>이다. 스틸컷 속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그렇다. 그는 시체다. 영화는 무인도에 표류된 행크(폴 다노)와 파도에 휩쓸려 온 시체 매니(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모험을 그렸다. 시체인 매니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보트, 망치 등 다양한 도구를 대신한다. 제목인 <스위 아미 맨>도 만능 칼(일명 맥가이버 칼)인 '스위스 아미 나이프'에서 착안한 것. 거부감을 부를 수 있는 기상천외한 장면들이 코믹한 톤으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스위스 아미 맨>은 독특한 소재, 메시지 등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극장을 퇴장해버린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안티포르노>(2016)
일본을 대표하는 개성파 감독 중 한 명인 소노 시온 감독. 그의 작품 중 유독 도전정신이 돋보였던 영화는 2016년 제작된 <안티포르노>다. 흥행을 위해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던 1970~1980년대 일본의 '로망 포르노' 부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다. 그러나 <안티포르노>는 그 속에 성의 소비, 억압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설정부터 대사까지,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도 적잖게 등장하며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기도 했다. 연극 요소를 활용한 반전, 비비드한 색감, 빠른 편집 등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지만 크래딧이 올라간 뒤 사색을 부르는 작품이다.
<로우>(2017)
식인을 뜻하는 단어 '카니발리즘(Carnibalism)'은 어원은 다르지만 유사한 발음의 단어가 떠올린다. 축제를 의미하는 '카니발(Cannival)'이다. 이 두 단어는 식인을 소재로 한 영화 <로우>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주인공은 수의학과에 진학한 채식주의자 저스틴(가렌스 마릴러). 광란의 연속인 대학생활 속에서 그녀가 내재돼있던 식인 본능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자연스럽게 <로우>는 고어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 본능을 참지 못해 미쳐가는 저스틴의 모습이 강렬하게 그려졌다. 속에는 성장영화의 결을 품고 있지만, 이를 가장 과격하게 풀어낸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
유일하게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인 듯하다. 일본의 신예 감독 우에다 신이치로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다. 내용은 단순하다. 호러영화를 촬영장에서 진짜 좀비가 출몰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다만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명백한 코미디 영화. 엉성함의 끝을 달리는 인물들과 좀비들은 실소에서 시작해 결국 '빅재미'를 유발했다. 심지어 난장판이 시작되는 모든 과정은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빌려 원테이크로 진행, 이게 영화인지 메이킹필름인지 구분하기 힘든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 발랄함으로 똘똘 뭉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기분 좋은(?) '멘붕'을 안겨줬다.
<살인마 잭의 집>(2018)
마지막은 유럽의 이단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최근작 <살인마 잭의 집>이다. 파격을 따지자면, 앞선 작품들을 모두 애교 수준으로 만드는 영화. '살인은 예술이자 자신을 구축하는 건축'이라고 믿는 잭(맷 딜런)의 행각을 담았다. 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 역시나 수많은 관객들을 퇴장시켰다. 잔인한 것으로 따지자면 여러 고어영화들이 더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살인마 잭의 집>의 중점은 살해 대상과 잭의 태도. 도덕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장면이 계속 등장, 그 과정을 느린 화면과 적은 컷으로 덤덤히 보여줘 더 큰 충격을 일으켰다. 온갖 은유와 상징, 철학적인 대사도 더해져 가뜩이나 이해하기 힘든 폰 트리에의 정신세계를 더 어렵게 꼬아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