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메기> 이옥섭 감독, 배우 이주영·구교환·문소리, " 내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마음 편하게 영화를 할 수 있다"
2019-09-26
글 : 임수연
사진 : 백종헌
이주영, 문소리, 이옥섭, 구교환(왼쪽부터).

“너희는 왜 박찬욱이나 봉준호, 홍상수 감독과 달라?”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됐던 <메기>는 1여년간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났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반응을 묻자 구교환 배우가 들려준 일화가 귀에 꽂혔다. 해외 영화기자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계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메기>의 개성에 주목했다. 단편 <4학년 보경이>(2014), <플라이 투 더 스카이>(2015), <걸스 온 탑>(2017) 등에서 증명된 바 있던 이옥섭 감독·구교환 배우의 독보적인 스타일이 장편영화 호흡에서도 온전히 빛을 발한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공간도 이상한 곳으로 만드는”(문소리) 이옥섭 감독의 독특한 화면 구성은 불법촬영이나 데이트 폭력 같은 동시대 이슈를 흡수하고, 절묘한 캐스팅을 더하며 진화했다. <춘몽>(2016), <꿈의 제인>(2016), <누에치던 방>(2016) 등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이주영 배우가 원래 ‘이옥섭 장르’에 함께했던 것처럼 잘 스며들었다면, <메기>의 짜릿한 한수는 문소리 배우에 있다.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메기>의 스토리텔링에 적시 등장하며 영화의 적정 온도를 잡아준다. 그렇게 탄생한 <메기>는 “좋은 동료를 만난 계기”가 됐다며 언론배급시사회 직전 만난 감독과 배우들은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작업도 기대하고 있다고 서로에게 러브콜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던 화기애애한 현장을 전한다.

-<메기>의 캐스팅 면면을 보면 독립영화계의 블록버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웃음) 원래 상당한 팬을 보유하고 있던 이옥섭·구교환 조합에, 마찬가지로 마니아층이 확고한 이주영이 함께했다. 여기에 <여배우는 오늘도>(2017)로 감독 재능까지 증명한 연기 장인 문소리가 합류했다. 이 드림팀은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나.

=이옥섭_20대 때부터 문소리 선배님의 팬이었다. <슬픈 연극>이나 <거기> 같은 연극도 맨 앞줄에서 봤다. <하하하>(2009)에서 바람을 피운 애인에게 빨리 업히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사랑스러우면서 지적이고, 왠지 기대고 싶은 매력을 보여주시지 않나. <메기>의 이경진 부원장은 비록 병원에서 부조리한 일을 하지만 사랑스러운 면도 갖고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부터 문소리 선배님을 떠올렸고, 안 해주신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글을 썼다. 이주영 배우는 <꿈의 제인>에서, 이민지 배우와 함께 대화하는 신에서 너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구교환 선배를 통해서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만나보니 이 배우라면 이경진 부원장을 리드하는 장면이 많은 간호사 윤영을 충분히 연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구교환 선배는 함께 작업을 많이 했고, 시나리오도 초반에 같이 썼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 캐릭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이야기하려고 하니 말을 버벅거리게 되는 거다. (웃음)

=구교환_저게 다 이유가 있다. 지금 이옥섭 감독은 구교환이란 배우에게 권태기를 느끼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시나리오에서 “이건 내가 연기하면 재밌겠다”고 해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안 준다. (웃음)

=이주영_말은 저렇게 해도 한국영화 100년 기념 영화를 같이 찍지 않았나. (웃음)

=문소리_새로운 매력을 어필해봐. 다른 감독과 멋진 작품을 찍으면 나중에 마음이 바뀐다. (웃음) 난 <여배우는 오늘도>로 영화제를 다닐 때 이옥섭 감독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GV)를 몇번 한 적 있다. 그때 연락처도 주고받게 됐다. <연애다큐>(2015)가 너무 재미있어서 “도대체 쟤네 누구니?” 하고 물어보면서 그동안 만든 작품도 다 찾아봤다. 그런데 이옥섭 감독에게 조금만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온 거다. 잠깐만 하면 되는 줄 알고 했는데, 10회차나 촬영하다니. (웃음) 사실 영화 찍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10회차든 20회차든 상관 없었다. 다만 내가 갈 때마다 스탭들이 너무 어려워해서…. 원래 난 현장에서 모니터 뒤에 누구보다도 오래 붙어 있고, 현장 정리할 때까지 쭉 남아있는 배우다. 그런데 후배들이 어려워해서 돌아다니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현장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일동 폭소) 구석에서 할매처럼 햇빛 받으며 책을 읽어야 애들이 “여기 앉으세요”, “뭐 좀 드셨나요” 하는 식의 말을 안 거니까.

감독 이옥섭.

이옥섭_사실, 그 모습도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웃음)

문소리_심지어 내가 모니터 본다고 가까이 가면 스크립터가 갑자기 모니터를 때린다. “얘는 선배님이 왔는데 왜 작동이 안 돼!” 그럼 나는 내가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며 당황하는 거고…. (웃음) 아마 촬영장소가 병원이라 그랬던 것 같다.

이주영_그런데 같은 병원 신이어도 내가 볼 땐 안 그랬다. (웃음) 정말 선배님이 모니터를 보려고 할 때만 갑자기 모니터가 안 나오고!

구교환_한번 더 작업하면 훨씬 편해질 거다. 선배님 오시면 “오셨어요? 샌드위치 드실래요? 아님 말고” 이런 느낌으로. (웃음)

문소리_꼭 해주세요. 모니터는 고장 잘 안 나는 걸로 직접 대여해올게요. (웃음)

구교환_제3자의 경솔한 말일 수 있지만, 난 <메기>가 이옥섭 감독과 문소리 선배님이 처음 밥 한끼 먹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와 이옥섭 감독과는 달리 전혀 권태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 관계다. 내가 요즘 피해의식과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서….(웃음)

문소리_누군가가 인스타그램에 “이주영 배우가 문소리를 데리고 다니며 리드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 썼던데, 너무 반가웠다. 많은 후배들이 “밥 먹었어?”라고 묻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는데, 주영이는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최근 배우들에게 보기 어려운 힘이 있다. 목소리도 그렇고. 화면에 잡히면 보는 사람이 빨려들어간다.

이주영_모두가 선배님을 챙겨드리는 상황에서 나까지 너무 잘해드리려고 의식하면 부담스러워하실까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언제 또 선배님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나. 그래서 촬영 끝나고 아쉬움이 좀 남았다. 내가 선배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좀더 앵길걸. 끝날 때 속마음을 고백한 편지를 써서 드렸다.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배우야 독립영화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콤비이지만, 이주영·문소리 배우는 이번이 첫 작업이었다. 어땠나.

이주영_현장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배우에게 열어주고, 무언가 도전하는 것에 있어 배우가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함께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기>라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하는 데 있어 이옥섭 감독님의 이런 태도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해봐도 되고 저렇게 해봐도 되겠다는 것을 계속 연구하며 작업할 수 있는, 아주 복받은 현장이었다.

문소리_감독님도 이게 첫 장편이니까 얼마나 불안하셨겠나. 그러니 내색은 안 하고 그냥 잘 알고 연기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은 답을 빨리 찾기 어려웠다. 현장에서 모든 육감과 온갖 정보를 조합해서 분위기를 가늠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하루이틀 찍다보니, 뭔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철컥 맞아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 표정에서도 뭔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감정을 읽었고. 거기에서 자신감을 얻고 연기했다. <메기> 시나리오는 전통적인 내러티브 방식과 다르다. 이야기를 산행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래서 나도 <여배우>(2014)에서 산에 오르는 에피소드를 만든거다. 그런데 <메기>는 산에 오르다가 냇가가 나오면 물놀이를 하고, 토끼가 나오면 토끼와 놀다가, 아무 이유 없이 땅을 파는 영화다. 우리가 어떤 산을 넘었는지 과연 알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처음에 했다. 기우였다. 그렇게 산을 즐기면서도 이 산이 어떤 산인지 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다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도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품을 아우르는 ‘믿음’과 ‘의심’이란 테마는 사실 영화 만들기에도 적용 가능하다. 감독과 배우 사이에서도, 그리고 각자의 내면에서도 의심하다가도 믿는 변화가 있었을 듯하다.

이주영_<메기>를 다시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믿거나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믿기로 선택하거나 믿지 않기로 선택하는 게 아닐까. 나도 어느 순간 <메기>라는 작품을, 함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믿기로 선택을 한 것 같다. 예전엔 내가 뭔가를 다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영화라는 작업이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내가 못하는 부분은 누군가가 충분히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문소리_못하는 게 있으면 감추지 말고 빨리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빨리 극복하게 되고 주변에서도 빨리 도와준다. 그것도 더 나이들면 더 무섭다. (웃음) 어릴 땐 괜찮으니까 그냥 들어가면 된다.

구교환_<메기> 촬영을 하다 장소를 이동할 때 식탁에 있는 화분이 쏟아졌는데, 이옥섭 감독이 그대로 놔두라고 하더라. 그래서 지진의 징후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활용됐다. 감독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어떤 생각이 있어서라고 믿게 된다. 콘티에서 벗어난 상황인데도 부담이 아닌 믿음을 준다.

-<4학년 보경이>는 이옥섭 감독이 연출하고, 구교환 배우가 주연과 편집을 맡았다. <연애다큐>는 두 사람이 함께 각본을 쓰고 공동 연출을 했다. 이번 <메기>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결정됐나.

이옥섭_우리는 함께 단편 작업을 할 때 타협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거 하나 양보했으니까 내가 밀고 싶은 거 하나만 선택해줘, 이런 게 없었다. 서로 설득이 되어야 하는 건데, 첫 장편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자꾸 서로 타협을 하게 됐다. <메기> 시나리오를 원래 같이 썼는데, 초고가 나왔을 때 선배가 “네가 혼자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이러다보면 돌연변이가 나올 거 같다고. 그러니 네가 혼자 선택하고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절대 말 바꾸지 말라고 각서까지 썼다. (웃음)

구교환_장편 감독 데뷔는 혼자 하겠다고 말이지. 너무 좋아해서 월드컵 보는 줄 알았다. (일동 폭소)

배우 문소리.

문소리_구교환 배우는 현장에서 프로듀서 역할도 함께했다. 저쪽에서 프로듀서로 일을 하다가 때 되면 이쪽으로 와서 연기를 하고. 그러다 저기가서 편집하고 데이터 보내고 영수증 처리까지 하고. 저 사람은 도대체 뭐지? (웃음) 저런 존재가 이 사람에게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영화 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지 않나. 작품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면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두 사람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다. 나와 남편 역시 지금보다 많은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될 수 있겠다는.

구교환_누군가는 봐줄 거라 생각했는데, 선배님이 봐주셨다니. 사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누가 봐주나 의식하고 있었다.(웃음) 난 스스로를 잘 안 믿는다. 내 감각대로 편집을 해서 붙여놓아도, 이옥섭 감독이 살짝살짝 바꾸는 지점들이 항상 더 좋았다. 둘이 같이하면 뭔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오히려 홀로서기는 내쪽에서 해야 한다. 어느 순간 내가 이 친구에게 의지를 많이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옥섭 감독이 나보다 더 감각이 좋다. 이게 열등감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도 잘난 부분이 많으니까. (일동 폭소)

-섹스를 하는 남녀를 ‘불법촬영’한 엑스레이 사진이 윤영과 이경진 부원장이 일하는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윤영은 자신의 애인 성원(구교환)이 과거 여자친구에게 ‘데이트 폭력’을 저질렀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 태생적으로 품는 두려움이 반영돼 있다.

이옥섭_<메기>는 늦은 밤, 병원에서 어항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자의 이미지로부터 시작됐다. 그에겐 어떤 걱정이 있을까, 지금 문제되고 있고 나도 느끼고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게 아닐까. 당시의 난 화장실에 가면서도, 관계를 맺으면서도 카메라에 찍힐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 그것이 <메기>의 윤영에게도 스며들어갔다. 그런데 불법촬영 이슈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실제 피해를 입은 분들의 고통을 건드릴 것 같았다. 그래서 엑스레이라는 장치로 거리를 두고 풀어낸 거다. 그리고 지금도 세상에는 애인에게 맞거나 죽임을 당하는 여자들이 많지 않나. 윤영이 성원에게 품는 의심과 불안감 역시 여기에서 시작됐다.

-최근 이주영 배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봤다. <벌새> GV에서 박지후 배우에게 담배 피우는 장면을 어떻게 찍었냐고 묻는 관객의 질문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꼬집은 내용이었다. 그렇게 할 말은 하는 모습이 멋져 보이더라. 그리고 문소리 배우는 십수년 전부터 꾸준히, 영화계 안팎으로 목소리를 내던 배우였다. 영화에서도 잘 어울렸던 두분이지만, 실제 모습에서도 공통점이 읽힌다.

이주영_사실 칭찬을 받으려거나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으려고 그런 발언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다. 성격에 불같은 면이 있어서 너무 나서지 말아야지, 하면서 자주 참는다. 하지만 다른 관객을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를 깨뜨리는 무례함이, 여성감독들의 좋은 영화가 쏟아져나오는 시기에 그 흐름을 깨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올린 것도 있다.

문소리_아름답지. 날씨도 아름다운데, 좋은 영화가 계속 나와서…. 정말 천국 같다. 주영이의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 아까도 조만간 들어갈 작품에서 맡은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는데, 남들이 보기에 연기하기 힘들다고 할 법한 캐릭터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표정이 참 좋았다. 속으로 “어머, 나도 예전에 그랬는데” 라는 생각도 했고. (웃음)

-말씀하신 대로 여성감독의 좋은 작품을 연이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기다. <우리집> <벌새>가 연달아 화제가 됐고, <메기>와 <아워 바디>가 함께 개봉한다.

문소리_너무 좋은 건 감독의 색깔이 다 다르다는거다. 예전에는 여성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그냥 감독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슈가 됐다. 그 작품이 여성의 시각을, 여성의 삶을 다루었는지를 더 따지지 않아도 의미가 컸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작품들은 그 안에 다양한 여성의 시각을 담고 있다.

이옥섭_한국영화아카데미 시절 동기들의 성비가 반반이었고, 이전 기수 여자 선배들의 영화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왜 영화계에는 여성감독이 많지 않냐고 어느 감독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네가 30대가 될 때쯤 아주 많이 쏟아질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자들은 작업을 하지 않고 있던 게 아니다. 어디선가 조용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런 기류가 눈에 보이는 시기가 됐다.

-독립영화계 여성감독의 활약이 상업영화로도 이어진다면 최상일 텐데, 상업영화에서는 아직 그만한 변화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옥섭_지금 여성감독의 좋은 독립영화가 계속 나오는 분위기고 관객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좀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나 또한 이 기세를 몰아 지금 쓰는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빨리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에겐 <메기>를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기적이었다. 순진한 말일 수 있지만, 두려워하기보다는 우선 계속 해보고 싶다.

문소리_사실 난 상업영화 진출이 최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에는 반기를 들고 싶다. 상업영화를 꼭 해야 한다는 목표를 만들어 감독들에게 좌절감을 주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자기 것을 창작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거다. 꼭 상업영화 시장이 아니더라도, 넷플릭스나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도 온다고 하고. (웃음) 우리가 아직 모르는 플랫폼이 더 생길 수 있다. 우리 말이야, 너무 CGV, 롯데, 메가박스에만 목숨 걸면 안돼. (웃음) 더 넓게 보고 날아다녀야 해.

배우 이주영.

이주영_더 좋아지면 좋겠지만, 이미 너무 좋은 급류를 타고 있는 것 같다. 여성감독이기 때문에 성과가 부각되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데에도 아쉬움이 있다.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해외에서 많은 쾌거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그냥 그 작품이 이룬 성과만을 봐줬으면 한다. 여성들은 연대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주변 또래 20대 배우들만 봐도 네가 하는 것을 내가 못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 그것 자체가 너무…. 갑자기 눈물 날 것 같다. (웃음)

구교환_난 낯선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그런데 굳이 상업영화 화법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까. 원래 감독이 갖고 있는 리듬대로 다가가는게 훨씬 더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낯선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관객도 분명히 있고, 요즘 콘텐츠들을 보면 그럼 바람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각자에게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옥섭 감독은 첫 장편 연출작 <메기>의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구교환 배우는 최근 소속사에 들어갔고, 연상호 감독의 <반도> 촬영을 마쳤다. <메기>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이주영 배우 역시 최근 소속사를 이적했고,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아주 인상적인 캐릭터로 등장할 예정이다. 문소리 배우는 <여배우는 오늘도>로 감독으로서의 재능까지 보여줬고, <리틀 포레스트>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등 일련의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는 ‘어나더 클래스’에 올랐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특별한 시기에 만난 <메기>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나.

구교환_나중에 돌이켰을 때 ‘36살에는 <메기>를 만들었구나. 이렇게 36살의 내가 담겨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작품. 저 영화를 찍을 때 옆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이 작품을 준비하며 이사를 했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각서도 썼고! (웃음) 그렇게 한편의 영화가 일종의 앨범이 돼서 인생의 타임라인이 된다. 그때 있었던 일을 절대 잊어버릴 수 없다.

이주영_어떤 작업을 하게 되면 그 결과물을 보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그사이 내 모습이 많이 바뀌니까.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작품을 보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도, 저땐 왜 저랬지 싶은 나도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메기>는 다섯번 봤다. 그 부끄러운 내 모습마저 계속 보고 싶게 한다.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메기>는 좀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문소리_요즘 주변에서 부러워한다. 내가 구교환·이옥섭이랑 같이 작품을 했다고 말이야. (하며 이옥섭을 바라본다.)

구교환_저쪽을 보고 말씀하시면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웃음) 선배님은 이옥섭 감독에게 무조건 프리패스다.

문소리_나한테 잘해. 그러면 같이 캐스팅될 수 있어. 내가 교환이랑 꼭 같이해야 한다고 하면 되잖아.

배우 구교환.

구교환_아…! 그런 방법이 있었는데 내가 왜 그동안 이옥섭 감독에게만 얘기를 한 거지. 지금 이옥섭 감독이 쓰는 시나리오가 진짜 재밌다. “이 캐릭터는 조금만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으면, 혹시 내가 할까봐 걱정되는 표정으로, 정말 단호하게 거부한다. (웃음)

문소리_지금 보니 교환이가 밀당을 참 못한다. (웃음) 다른 감독이랑 너무 잘 지내는 거 같으면 관심이 다시 돌아온단 말이야. 어머, 쟤가 저런 매력도 있었네, 하면서.

구교환_그런데 내가 딴 데서 잘할 자신이 없다.(일동 폭소)

이옥섭_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가 <메기>라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모여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 기억이 오랫동안 아름답게 남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들 땐 어쩔 수 없이 주변 도움을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내 능력은 아주 작은데 다른 사람들이 나머지를 채워줘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진짜 잘 살아야겠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가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묻어난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어야, 마음 편하게 영화를 할 수 있다.

문소리_스탭들이 오래된 친구처럼 오밀조밀 쪼물딱쪼물딱 영화를 만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현장에서 느낀 좋은 에너지가 참 예뻤다. 이런 건 당연히 작품에 묻어난다. 그래서 영화가 무서운 거다. 좋은 동료들을 만나게 돼서 너무 좋다. 이런 사람들과 더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내가 잘 살아 있어야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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