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강한나 배우의 <500일의 썸머>
2019-10-01
글 : 강한나 (배우)

감독 마크 웹 / 출연 조셉 고든 레빗, 주이 디샤넬 / 제작연도 2009년

23살 때였던가. <500일의 썸머>를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 나이가. 당시 23살의 나는 여느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내 앞에 놓인 여러 과제들을 버겁게 해내고 있었고 불투명한 미래에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었다. 한편 그때의 난 매일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활기찬 에너지가 넘쳤으며, 또 영원할 것만 같은 20대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여러 의미로 나에겐 역동적인 시기였다.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내레이션으로 아주 경쾌하게 시작된다. 각기 다른 환경과 가치관으로 자라난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임을 알려줄 그들의 성장배경이 짧은 필름으로 지나간다. 칙칙한 사무실에서 자신의 꿈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던 톰(조셉 고든 레빗)의 인생에 파란색 나비를 달고 나타난 썸머(주이 디샤넬)의 해맑은 웃음은, 그녀가 그에게 앞으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사랑을 가져다줄 것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모두가 그렇듯 꿈꾸는 이상적인 사랑(그 혹은 그녀)과 함께하기에 비로소 온전해지고,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며, 행복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매 순간들이 꿈과 환상의 나라에 온 것과도 같은) 그런 마법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 말이다. 현실에 순응해살며 사랑이라는 이상을 꿈꾸는 톰과 달리 이상적인 삶을 살며 사랑과 관계의 영원성을 믿지 않는 현실적인 썸머의 만남은 시작부터 어긋나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고작 몇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어떠한 끌림으로 인해 사랑을 시작한다. 관계란 게 그런 것 같다. 고작 몇 가지의 공통점과 끌림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이 관계를 시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바로 고작 몇 가지의 차이점들이 그 좋았던 모든 것들을 끝나게 만들기도 한다. 둘은 분명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만남을 시작했고, 그 모든 과정은 톰은 물론 썸머에게도 험난했을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이상과 현실은 매번 크게 부딪히기 마련이니까. 결국 둘의 관계는 끝나게 되는데,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았던 점은 두 사람의 이별 후의 모습이다. 두 남녀는 이 만남과 사랑, 이별을 통해 가치 있는 변화를 한다. 아니,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건 변화를 한 것이라기보다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있던 자신의 또 다른 어떤 모습이 ‘찾아내어졌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자신의 반쪽을 찾으려고 만났던 관계에서 내 안의 어떤 큰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것이다. 남좋은 일(축하카드의 문구를 만드는)을 하며 현실에 발붙이고 살던 톰은 이별의 고통 후에서야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건축을 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으며, 사랑과 인연, 우연과 같은 것들을 믿지 않았던 썸머는 운명적 상대와의 사랑을 믿게 되고 그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둘은 서로 상대가 맞지 않았던 거지 누가 옳거나 틀렸던 게 아니었다.

어느 날 두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가장 보통의 연애 과정을 다룬 영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이 영화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볼 때마다 나에게 조금씩 다른 생각을 던져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번의 여름이 끝나갈 무렵 다시 보고 싶어질 이 영화, 그때의 난 톰과 썸머 중 누구에게 공감하며 이 영화를 보게 될까? 궁금하다.

●강한나 배우. 영화 <순수의 시대>와 <그냥 사랑하는 사이> <아는 와이프> <60일, 지정생존자> 등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