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2019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시나리오 쇼케이스 현장에 가다
2019-10-03
글 : 이나경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미래의 콘텐츠를 책임진다

새로운 시나리오들과 만났다. 지난 9월 24일 오후 2시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2019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사업 시나리오 쇼케이스가 열렸다. 경기콘텐츠진흥원과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감독조합)은 ‘2019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공모’에 지원한 273편 중 15편을 엄선해 기획개발을 도왔다. 감독조합의 공동대표인 윤제균 감독을 비롯해 김용균·부지영·안상훈·이호재·정윤철·홍지영 감독이 멘토로 참여해 3개월간 멘토링에 나섰다. ‘시나리오 쇼케이스 행사’에서 영화화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15편의 작품을 산업 종사자들에게 최초로 공개했다. 1, 2부로 나눠 진행된 피칭 이후 비즈니스 미팅, 수상작 발표 및 시상이 이어졌다. 감독조합 공동대표인 민규동 감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작가님들이 피칭 수업까지 들으며 이번 행사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멘토로 나선 감독님들은 본인이 먼저 겪었던 경험담을 나누고, 시나리오 개발 단계를 도우며 길잡이 역할을 해주셨다. 서랍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었을 프로젝트가 이런 인연으로 피어나며 작가님들에게는 창작의 기회가, 제작자들에게는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할 기회의 장이 되길 바란다”며 시나리오 쇼케이스의 시작을 알렸다. 봉만대 감독은 유쾌한 입담을 뽐내며 행사 전반의 진행을 맡았다. 작가들이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멘토로 나선 감독들이 소감을 덧붙이는 형태로 이어진 현장의 이야기를 피칭 순서대로 전한다.

기존에 없었던,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

<엄마가 또 사랑에 빠졌어요> 유혜진 작가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김희경 작가
<무진> 임욱 작가
<범인> 김용훈 작가

<엄마가 또 사랑에 빠졌어요>의 유혜진 작가가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섬망증에 걸린 엄마는 요양원을 옮길 때마다 사랑을 쏟는 대상이 달라진다. “피할 수 없다면 조금 더 발칙하게 상상해보기로 했다. 유쾌한 상상으로 가득한 이별기를 통해 ‘지금’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 느끼길 바란다”며 본 시나리오의 재기발랄함을 어필했다. “같은 컨셉이었지만 남편의 시선에서 그린 시나리오로 당선된 작품이었다. 글 전반의 톤이 엄마와 딸의 이별기에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멘토링 과정 중 제안했고, 작가님이 3개월 만에 다시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좋은 휴먼드라마도 발전할 것 같다”는 멘토 김용균 감독의 애정 가득한 지지가 이어졌다. 두 번째로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의 김희경 작가가 피칭에 나섰다. “첫사랑 하면 대부분이 순수한 설렘을 떠올린다. 첫사랑의 판타지를 전복시키는 날것의 사랑 이야기를 썼다”며 30년 만에 첫사랑을 만난 40대 비혼여성 박세련이 중심이 되는 본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주인공 박세련 역의 스타일, 레트로 감성, 명품 O.S.T를 강점으로 꼽고 싶다”며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영화의 매력 포인트 세 가지를 짚었다. 멘토 정윤철 감독은 “첫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첫사랑을 배반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재밌었다. 장 자크 아노의 <연인>(1992)이나 루이 말의 <데미지>(1992)를 생각나게 만드는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드문 시도가 아닌가 싶다”며 ‘끝까지 가는’ 첫사랑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이어 15년 간격으로 일어난 두 실종사건을 바탕으로 마주하게 되는 마을의 비밀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물 <무진>을 소개하기 위해 임욱 작가가 무대에 올랐다. 김승옥이 쓴 소설 <무진기행>을 차용하며 시작된 피칭에서 임욱 작가는 “전반부가 범인을 쫓는 수사극이라면 후반부는 형사가 마주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집중한다.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것에 익숙한 젊은 관객층에 특히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멘토 안상훈 감독은 “단순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아니다. 오컬트와 좀비물도 섞여 있다. 장르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아버지가 자식을 찾으려는 보편적인 이야기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범인>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犯人)과 평범한 사람(凡人) 두 가지의 뜻을 가진다. 제목에 모든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고 전하며 피칭을 시작한 <범인>의 김용훈 작가.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 살인 용의자가 된다면’이라는 중심 질문을 가지고 쓰게 된 시나리오로 ‘가족’을 중심으로 그려낸 미스터리 스릴러다. 멘토 이호재 감독은 “이 작품이 가진 딜레마가 인상적이었다”며 “남편이 진짜 범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고민을 끝까지 했다. 작가님은 열려 있는 분이니 이후 미팅에서 함께 의견을 제시해주셔도 좋을 것 같다”며 이어지는 비즈니스 미팅 참석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스탠바이미> 송연수 작가
<생존자들> 김태일 작가
<어제, 오늘, 내일의 당신> 박고은 작가
<영자이모> 정재인 작가

송연수 작가가 그리는 <스탠바이미>는 정통 멜로를 지향한다. 2008년 서울 출입국관리소 공무원 현수와 중국인 페이의 만남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여전히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결국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두 사람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멘토링을 맡은 부지영 감독은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라 좋았다. 두 남녀의 위치가 반대 지점에 있다는 것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는 의견을 더했다. 여섯 번째로 김태일 작가의 <생존자들> 피칭이 있었다. “보통 좀비를 피해 생존하는 좀비영화가 많은데, <생존자들>은 좀비가 거의 사라진, 즉 재난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시작된다”며 차별화된 시나리오임을 강조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좀비물을 통해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고등학생 때부터 1년에 한편씩 좀비를 소재로 한 단편을 만들 정도로 좀비영화에 애정이 깊음을 어필했다. 멘토 홍지영 감독은 “굉장히 매력적인 구성과 캐릭터를 가진 시나리오다. 앞서 언급했듯 작가님이 좀비물에 대한 애정이 시나리오에서도 바로 느껴진다”라며 넓은 폭의 아이디어를 가진 김태일 작가의 시선을 높이 샀다. <어제, 오늘, 내일의 당신>의 박고은 작가는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수수께끼지만 오늘은 선물이다”라는 <쿵푸팬더>(2008)의 명대사를 소개하며 본 시나리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은 늘 후회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과거의 나를 만나서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생긴다면? 과거, 현재, 미래의 동일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린 판타지 드라마”라며 소개를 이어갔다. 멘토인 윤제균 감독은 신작 <영웅>의 크랭크인으로 부득이하게 시나리오 쇼케이스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다. 박고은 작가는 “윤제균 감독님이 차기작 촬영을 앞두고 계셨음에도 지난 3개월간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또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애정 어린 마음을 전했다. 피칭 1부의 마지막 순서로 정재인 작가가 <영자이모>를 소개했다. “인생의 계절을 담고 싶어 ‘겨울, 봄, 여름, 가을, 영자’라는 다섯 챕터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우리네 청년의 표상인 주인공 경아가 떠밀리듯 내려간 지방의 부대찌개집에서 영자를 비롯한 이모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 그들을 통해 인생을 배우게 되는 이야기”라고. “자신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내며 이야기되길 기다리던 ‘중장년층 여성 노동자’라는 보편적이지만 우리 모두의 삶으로 귀결될 수 있는 캐릭터”를 시나리오의 강점으로 꼽는다. 이에 부지영 감독은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던 혹은 몰랐던 삶의 비밀을 발견한 기분이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는 대중영화 속에서 이런 영화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심이 담긴 응원을 더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집중력 있는 시나리오들

<오달자의 공동묘지> 정우철 작가
<산장> 백광일 작가
<총파업> 김경윤 작가
<타인의 삶> 윤주훈 작가

<오달자의 공동묘지>의 정우철 작가가 2부 피칭의 문을 열었다. “노약자도 임산부도 웃고 즐기며 볼 수 있는 납량물을 기획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충청도의 시골 마을에서 마을회장과 부녀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오달자에게 벌어지는, 결코 우연이 아닌 사고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멘토 홍지영 감독은 “첫 대사부터 크게 웃으면서 글을 읽었다. 정우철 작가는 내 개인적인 작업의 각색 작업도 해주셨다. ‘경기 시나리오 기획개발지원’ 행사는 새로운 작품이 제작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는 길이 되기도 했다”며 본 행사의 긍정적인 영향을 언급했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산장>의 백광일 작가는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고,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죽었다고 말했다. ‘인간은 죽었다’는 본 작품의 원제이자 핵심 키워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비의 노예가 된 인간이 탐욕과 향락에 물들어가면서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뜻이다”며 본 시나리오를 소개했다. “산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이야기가 폭주하는데, <미져리>(1990) 속의 해머와 <링>(1998) 속 우물을 주된 장치로 녹여냈다”고 밝혔다. 멘토링을 맡은 홍지영 감독은 “한동안 보지 못한 쫀쫀한 형태의 심리 스릴러극이다. 피칭 때 언급했듯 철학적 화두를 던져 영화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이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총파업>의 김경윤 작가는 얼마 전 추석 연휴의 가족 풍경을 담은 영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며 피칭을 시작했다. “1년에 10번 넘는 제사를 지내는 배씨 형제 집안의 며느리 셋이 주인공이다. 맏며느리 박말희를 중심으로 파업 선언을 한 어느 추석이 배경이다.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 ‘사이다’와 같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며 ‘명절 탈출 사이다 어드벤처’로 본 시나리오를 정의했다. 정윤철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손댈 것이 거의 없는 로드무비가 그려진다. 특히 며느리 역할로 나오는 세명의 주인공이 각자 특색 있고 개성 넘치게 그려져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총파업>을 설명했다. <타인의 삶>의 윤주훈 작가는 “누구나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 적이 있지 않냐”며 영화 예고편과 같은 영상으로 피칭을 대신했다. “완벽해 보이는 인물의 삶에도 결국 어려움이 있고,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 존재한다. 주변의 누군가를 보며 내 삶과 비교하고,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지만 결국 각자의 삶에도 소중한 것이 있다는 지점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멘토 이호재 감독은 “보디체인지, 도플갱어를 다룬 흔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걸 뛰어넘어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시나리오다. 상황을 타개하는 쫄깃함과 내면의 분열을 동시에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평했다.

<트립> 박남희 작가
<미스터 자이브> 강지영 작가
<DMZ> 정대기 작가

13번째로 <트립>의 박남희 작가가 무대로 나섰다. 재벌 3세이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인 10대 하리와 10년째 가수 지망생인 공항 수화물센터 직원인 30대 재영이 얽히며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자신을 평범하게 여기지만, 누구나 특별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꿈을 키우고 지켜나가는 과정의 소중함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멘토 안상훈 감독은 “요즘 대세는 음악영화라고 생각한다. 극장으로 사람들을 이끌 힘이 있는 시나리오고, 전반적인 톤이 좋았다. 재미와 감동을 한번에 잡을 수 있는, 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작품이 될 것”이라며 <트립>을 추천하는 이유를 밝혔다. 직접 자이브댄스의 스텝을 알려주며 유쾌하게 피칭을 시작한 <미스터 자이브>의 강지영 작가는 화려한 춤사위 영상까지 더해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자이브는 원래 헛소리, 엉뚱한, 터무니없음 등을 뜻하는 단어다. <미스터 자이브>는 자이브를 추는 아저씨 그리고 헛짓거리하는 아저씨라는 뜻을 동시에 지닌다”며 “자이브, 폴댄스, 줌바댄스 등 현란한 춤사위와 90년대로의 추억에 빠지게 하는 뉴트로 감성,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장점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9년차 아르헨티나 탱고 동호회 활동을 한다고 밝힌 안상훈 감독이 “윤제균 감독의 멘토링을 거쳐 혼자 출 수 있는 폴댄스에서 커플댄스인 자이브로 춤의 종류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 커플댄스의 세계에서만 그릴 수 있는 호흡이 있어 영화화한다면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것 같다”는 감상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DMZ>의 정대기 작가가 무대에 올랐다. “평화의 땅, 한반도 최후의 낙원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지대가 DMZ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이 때문에 동물들이 많이 다치기도 하는 위험한 공간이다. 군사분계선이 있는 이 지역을 기준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 만연한 불신을 SF 미스터리물과 접목해봤다”는 게 그의 의견이다. 김용균 감독은 “군대 이야기를 싫어하는 내가 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밀리터리 액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DMZ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밀도 있게 짜여 있는 사건을 그리는데, 아주 매력적인 주요 캐릭터 6명이 등장하는 것과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상상력이 눈에 띈다”고 코멘트했다.

●수상작

대상 <오달자의 공동묘지> 정우철 작가

최우수상 <총파업> 김경윤 작가

우수상 <범인> 김용훈 작가 <스탠바이미> 송연수 작가 <영자이모> 정재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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