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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이> 질발로디스 긴츠 감독, "단순할수록 깊어진다"
2019-10-03
글 : 송경원
사진 : 백종헌

2019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콩트르샹을 수상한 <어웨이>는 여러모로 애니메이션의 본질과 미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각본부터 음악까지 모든 과정을 홀로 작업한 이 창조적인 작품은 한 소년이 작은 새와 함께 이상한 섬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일체의 대사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마치 무성영화를 연상시키지만 동시에 3D 실시간 랜더링 엔진을 활용하는 등 어드벤처 게임을 닮은 부분도 있다. 미니멀한 연출과 풍성한 레퍼런스가 돋보이는 <어웨이>는 기본의 힘과 고전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란 형식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다. 2019년 인디애니페스트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한국을 찾은 질발로디스 긴츠 감독을 만나 그 창조적인 작업 과정에 대해 물었다.

-<어웨이>가 인디애니페스트2019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43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상을 시작으로 29회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등 이른바 애니메이션 4대 영화제를 순회 중이다.

=한국 방문은 두 번째다. 3년 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2016에 단편 <우선순위>로 초대된 적 있다. 아직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많지만 환영해주셔서 안심이 된다. 개막식 상영을 마쳤는데 상영환경이 좋고 찾아주신 분들도 많아 기뻤다. 솔직히 <어웨이>를 막 공개했을 땐 이렇게 반응이 좋을지 몰랐다. 처음 몇 군데 출품했을 때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웃음) 희망을 잃어가고 있을 즈음 안시에서 콩트르샹 상을 받았고 이후 여러 영화제에서 소개 중이다. 인디애니페스트가 끝나면 바로 이어지는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로 넘어갈 예정이다.

-라트비아의 영화 제작자이자 애니메이터로 활약하며 그동안 7편의 단편을 제작했다. 이번이 첫 장편애니메이션인데 작업방식이 범상치 않다.

=7편의 단편 중 2편은 핸드드로잉 작업한 애니메이션이고 1편은 실사영화다. 그리고 4편은 3D 작업으로 완성했다. <어웨이>는 그 모든 작업들의 조합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실사영화에서 배운 기법도 동원했고 컷을 자르지 않고 최대한 길게 롱테이크 장면도 넣었다. 핸드헬드 촬영도 있다. 3D는 기본적으로 그런 방식들을 활용하기에 적합한 포맷이다. 사실 장편으로 한번에 투자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4편의 짧은 단편이라고 구상하고 접근했다. 4개의 챕터로 나누고 펀딩도 따로 받아서 작업을 시작했으며 스토리에 그에 맞춰서 구상했다.

-무려 3년 반을 투자해 각본부터 디자인, 작화, 연출, 편집, 작곡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 도맡아 온전한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 장점이라면 작품 전반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는 거다. 온전히 내가 내 작업의 주인이 된다는 점이 좋다. 주변에서 어려운 일이라고 하지만 작업을 즐기는 편이라 압박은 그다지 크지 않다. 굳이 꼽자면 쉴 수 없다는 것 정도? 영화 초반, 소년을 쫓는 검은 거인은 내 스트레스의 반영이다. (웃음) 동시에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상징이기도 한데 폭력적인 느낌보다는 자연이 주는 거대한 힘을 표현하고 싶어 천천히 움직이도록 했다.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모든 작업을 혼자 하다보면 전반적인 프로세스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작업은 각본부터 콘티, 캐릭터 구상 등 각 단계가 분리되어 있다. 반면 <어웨이>는 혼자 만들다보니 과정이 정확하게 구분되진 않았고 즉흥적인 부분도 많았다. 예를 들면 공간을 만들면서 동시에 캐릭터도 구상하고 그에 맞춰 카메라 위치나 음악까지 종합적으로 변경되는 식이다. 정해진 전체 그림 아래 하나씩 완성시켜나가는 게 아니라 모든 과정이 한꺼번에 이뤄졌고 수정도 자유로웠다. 거대한 덩어리에서 형태를 빚어나간다고 보면 비슷할 것이다.

-대사 한마디 없이 소년의 움직임만으로 모험이 전개된다. 캐릭터 디자인부터 구성까지 전반적으로 미니멀하면서 동시에 아주 섬세한 연출이 흥미를 자아낸다. 마치 동작에 집중하는 무성영화를 보는 듯하다.

=대사를 쓰지 않기로 한 건 내가 좋은 대사를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웃음) 기본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가 훨씬 강력한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애니메이션은 무성영화를 닮았다. 통역 필요 없이 전 세대, 전 지구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애니메이션의 매력과 본질은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섬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캐릭터라는 단순명료한 컨셉으로 출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가령 상황을 보여줘야할 땐 익스트림 롱숏으로 넓은 풍경을 보여주다가 감정의 포착이 필요할 때면 인물에게 클로즈업으로 다가간다. 그걸로 충분했다. 바람이 불면 그에 따라 카메라가 흔들리고, 캐릭터의 외로움을 강조하고 싶으면 카메라를 멀리 빼서 광활한 공간에 홀로 서 있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줬다. 뭔가 대단한 연출을 하려 애쓰지 않았다. 단순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영혼이다. 70분 안에 전달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 이때 이야기 정보와 사건의 양을 줄일수록 반대로 깊이가 생긴다. 동작 하나하나를 파고들어야 하니까. 다만 단순한 것과 쉬운 건 다르다. 구성이 현란하고 복잡하면 부족한 부분을 숨길 수 있는데 단순하게 만들면 사소한 단점도 눈에 확 드러나기 마련이다.

-약간 단순화해서 접근하자면 결국 이야기란 인물이 A에서 B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이 어딘가로 떠나는 이야기는 좋은 아이디어지만 장편으로 제작하기엔 쉽지 않은 프로젝트다. 그런 측면에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75분 동안 지루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감사하다. 뿌듯하다. (웃음) 마찬가지로 캐릭터의 목표가 단순하고 분명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외로운 소년이 집으로 가기 위한 미션이라는 방향성이 분명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관객이 그 여정에 동참하고 소년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다고 본다. 좋아하는 게임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다. <완다와 거상> <라스트 가디언> 같은 게임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캐릭터가 공간을 탐험해나가는 테마로 이뤄져 있다. 기본적으로 리얼타임 랜더링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확인해가며 작업했는데 그런 즉흥성이 게임 플레이와 맞닿아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주인공이 바로 음악이다. 마치 영화 전체가 한편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이전 작업에는 작곡자가 따로 있었는데 좀더 미니멀한 작업을 해보고 싶어 이번에는 곡도 혼자 만들었다. 악기를 전혀 연주하지 못하는데 어쩌면 그게 단순함이라는 측면에선 더 도움이 된 것 같다. 음악과 작화, 공간과 움직임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시적으로 다듬어져나갔다.

-애니메이션만큼 영화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이번 작품에도 다양한 레퍼런스가 녹아 있다.

=나는 느리고 조용한 작업을 선호하는데 애니메이션은 아무래도 현란한 작품들이 많다보니 실사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듀얼>(1971), 월터 살레스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2006) 등 꼽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버스터 키튼과 폴 토머스 앤더슨도 좋아한다. 메시지보다는 경험을 주고 싶다. 당신을 쫓아다니는 두려움이 있겠지만 혼자라는 게 아니며,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남기고 싶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처럼 1인 제작을 하다가 대중적인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독립적인 작업을 이어가는 것과 협업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나가려 한다. 당장은 통제권을 잃고 싶지 않다. 다음에는 5명 정도함께하는 규모로 해보려 한다. 내 단편인 (2012)를 각색해 <Flow>라는 장편을 기획 중이다. 단편을 만들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또 달라졌다. 아마 좀더 명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먼 미래엔 실사 극영화도 한번 해보고 싶다. 그땐 좋은 대사를 쓰는 각본가와 함께해야겠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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