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이상근 감독의 <백 투 더 퓨처2>
2019-10-08
글 : 이상근 (감독)
경이로운 상상력에 경의를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 출연 마이클 J. 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 리 톰슨, 토머스 F. 윌슨, 엘리자베스 슈 / 제작연도 1989년

영화 <엑시트>는 미래영화다. 2019년 7월 31일에 개봉했지만 영화 속 유독가스 테러사건이 벌어지는 날은 2019년 9월 7일이다. 근미래지만 미래, 의도치 않게 데뷔작으로 미래영화를 찍게 된 셈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모든 것이 과거가 돼버렸지만.

슬프지만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백 투 더 퓨처2>가 개봉하자 막내 삼촌은 나와 누나를 데리고 시내에 있는 극장으로 향했다. 친구 집에서 비디오로 본 1편이 충격적으로 재밌었던지라 몇 정거장만 더 가면 2편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날 굉장히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도 오는 데다가 어린애 둘을 데리고 가는 여정이 쉽지는 않았을 터, 우린 결국 상영시간에 늦게 도착했고 영화 초반 10분을 놓친 뒤 좌석에 앉게 됐다. 얼마나 기다렸던 2편인데 10분이나 못 보게 되다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던 난 기껏 시간을 내 우리를 데려온 막내삼촌에게 울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이내 영화에 빠져들어 금세 멈추긴 했지만.

그렇게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른이 돼 야심차게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불투명한 미래로 나아가며 버티던 중 2015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해 5월, 나는 <엑시트>의 초고 시나리오를 절박한 마음을 담아 제작사에 전달했고 몇번의 피 말리는 수정과 회의를 거친 뒤 다행히 같이 개발해보자는 계약을 맺게 되었다. 출구를 찾을 수 없어 헤매던 내 인생에 드디어 방향을 가리키는 비상등 하나가 켜지게 된셈이었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와중에 10월이 되었고 극장에선 <백 투 더 퓨처2>의 미래 설정일인 2015년 10월 21일을 기념해 리마스터 재개봉이 이뤄지고 있었다.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영화 속 2015년 미래가 현재가 되었고 영화에 등장했던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호버보드는 없었지만 나는 어른으로 변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묘한 흥분과 기대 그리고 빠르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약간의 서글픔을 안고 극장을 찾았다. 상영관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 뭔가 다르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인물의 동선, 카메라워킹, 미술, 음악 여러 가지 요소들이 분석되고 카메라 뒤 현장의 모습들이 상상된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소위 ‘업자’의 눈으로 본 영화는 어릴적 감상과는 분명 달랐다. 경이롭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상상력 가득하고 창의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창작자의 입장에서 진심으로 부럽고 존경하는 감정이 추가된다. 어릴 땐 몰랐지만 ‘미래로 돌아간다’는 뜻의 제목이 얼마나 역설적이고도 창의적인 것이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면서 두손 두발 다 들게 된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짜 데뷔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2018년 8월 <엑시트> 촬영 현장.

“정석씨, <백 투 더 퓨처> 좋아해요?”

“완전 좋아하죠! 제 인생 영환데요!”

“아 진짜요! 그럼 이번 장면에선요 마티가 곤경에 처했다가 빠져나올 때처럼 용남이가….”

잠시 후 촬영에 들어가자 모니터에서 나오는 용남에게서 마티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컷!… 오케이입니다!”

●이상근 영화감독. 단편 <베이베를 원하세요?> <명환이 셀카> <간만에 나온 종각이>를 만들었다. <엑시트>는 그의 첫 장편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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