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원종식 감독의 <아이언 자이언트>
2019-10-15
글 : 원종식 (감독)
뒤늦게 찾아온 끌림

감독 브래드 버드 / 목소리 출연 제니퍼 애니스턴, 빈 디젤, 엘리 마리엔탈, 크리스토퍼 맥도널드, 존 마호니 / 제작연도 1999년

첫돌 사진 속의 나는 양손에 연필을 한 다발 쥐고, 돌상 위에 놓인 책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돌잡이 때 아이에게 쥐어주는 0순위가 노골적으로 현금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책과 연필이 현금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라 여겼던 듯하다. 어린 시절의 돌잡이 사진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 같은 주술적인 부담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20대가 되고,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서야 돌잔치의 내가 바라보던 책이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전집이었고, 연필의 쓰임새는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999년, 나는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갔고, <아이언 자이언트>가 개봉했다. 난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비하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 당시엔 가리지 않고 작품을 폭식했다. 재미도, 의미도, 취향도, 방향도 가리지 않고 극장과 비디오숍을 돌아다니며 눈과 귀와 머릿속에 영상물을 주입했다. 아무리 그래도 끌리지 않는 것은 끌리지 않는 법이다. <아이언 자이언트>가 그랬다. 영화는 당시 내가 보고 싶지 않을 만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매력적이지 않은 포스터가 그랬고, “너 날 수 있었어?”라는 대사로 구성된 진부해 보이는 예고편이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체가 문제였다. 유치원 다니던 7살 무렵 세종문화회관에 가서 만화영화를 본 적 있다. 더빙도 아니었고, 자막도 없었고, 그저 고통스러웠다. <아이언 자이언트>의 작화와 움직임은 정확히 그 어린 시절의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내 마음과 상관없이, <아이언 자이언트>는 알아서 흥행에 실패했고, 새천년이 밝았다. 나는 습관처럼 주말이 되면 가장 큰 레코드 가게에 비디오테이프를 고르러 갔고, 중앙에 자리 잡은 큰 TV 화면에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아이슬란드의 눈 덮인 배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난 이 작품을 스포일러부터 접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날 <아이언 자이언트> 테이프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나의 인생 영화가 되었다. 작품 자체의 훌륭함이야,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아이디어와 상상력에만 의지하려 한, 경험 없고 오만한 20대 예비 창작자였던 나에게 거친 생각들을 잘 정돈된 관습의 그릇에 담아내고자 하는 열망을 선사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작품들 곳곳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이 작품에 대한 소심한 존경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올여름 나는 장편애니메이션 한편을 개봉했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그 결과가 달콤하지는 않았다. 냉정하고 차분한 사고의 시간에 뇌가 지칠 때면 어김없이 또 주술적인 생각이 훅 끼어들어온다. ‘내 인생 영화가 <아이언 자이언트>인 게 문제였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이끌려, 20세기에 구입한 비디오테이프로 <아이언 자이언트>를 또 봤다. 역시 좋다. <아이언 자이언트>가 20년 만에 극장에서 재개봉한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고 보니 난 이 영화를 극장에서 한번도 보지 못했다. 돌아온 <아이언 자이언트>를 기쁘게 맞으며 혼자 되뇌게 된다. I CAN FIX MYSELF.

●원종식 아슈비아만화영화푸로덕션 대표. 오리지널 장편 극장 애니메이션 <별의 정원>(2019)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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