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외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조커>. 그러나 영화의 흥행과 함께 미국에서는 ‘모방 범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주 경찰국은 <조커> 개봉에 맞춰 극장 근처 순찰을 강화했으며, 극장 체인 ‘랜드마크 시어터’는 극장 내 조커 가면 착용을 금지시켰다. 일부 극장에서는 관람 전 검문검색이 행해지기도 했다.
이렇듯 미국이 <조커> 모방 범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2012년 발생했던 ‘오로라 극장 총기난사 사건’ 때문이다. 제임스 이건 홈스(당시 만 24세)라는 청년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 관람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소총과 최루탄을 발사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12명이 숨졌으며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체포된 제임스는 경찰에게 “나는 조커다”를 되뇌었다고 한다. 명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제임스는 연인에게 차인 후 조현병을 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법원은 그에게 최종적으로 종신형을 선고, 현재 그는 감옥에 복역 중이다.
모방 범죄를 영화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작품이 아닌 범인에게 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이 아직 존재하고, 그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있는 이상 ‘영화가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파급력’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조커>에게 쏟아지는 우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며 영화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처럼 모방 범죄의 계기가 됐던 영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부디 참담한 사건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 전례를 알아봤다.
<주유소 습격사건>
한국영화로는 청년들의 주유소 습격담을 그린 <주유소 습격사건>이 있다. 아웃사이더들이 돈을 위해 주요소를 털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아낸 영화다. <주유소 습격사건>은 가감 없는 코미디로 크게 흥행했지만 여러 모방 범죄도 야기했다. 심지어 범인들은 대부분 십대. 전북에서는 중학생을 포함한 십대들이 문을 닫은 틈을 타 여러 주요소에서 금품을 훔쳤다. 경기도에서는 고등학생 세 명이 단지 ‘영화 속 인물들이 멋있었다’는 이유로 주유소를 침입해 직원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약 10건의 모방 범죄가 발생했다. 이처럼 ‘청소년 비행’을 소재로 삼은 영화 중에는 <친구>, <비트>도 캐릭터의 행태를 따라 한 학교폭력과 오토바이 위험 운전 등에 영향을 끼쳤다.
<그 놈 목소리>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그 놈 목소리>는 실제 범인의 몽타주까지 공개하며 사건을 환기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의도와는 반대로 영화 속 범행 수법과 유사한 범죄가 발생했다.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에서는 한 초등학생의 납치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인터뷰를 통해 “영화 <그 놈 목소리>와 거의 모든 것이 일치했다. 영화 속 범인이 다시 나타난 것 아닌지도 의심했다”고 밝혔다. 아이의 목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등 영화 속 방법과 똑같았다는 것. 이후 붙잡힌 범인은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여러 의심점에서 <그 놈 목소리>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계 태엽 오렌지>
이제부터는 해외 사례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문제작 <시계 태엽 오렌지>. 시민들에게 잔혹한 범죄를 일삼는 소년들의 이야기로 ‘폭력을 금지시키기 위한 폭력’을 보여주며 철학적 메시지 전달한 작품이다. 오락성을 위해 폭력을 담진 않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극중 인물들을 따라 하는 유사 범죄가 종종 발생했다. 10대 갱단이 캐릭터의 복장을 그대로 입고 주제곡인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어린아이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직접 영국 정부에 상영 금지를 요청, <시계 태엽 오렌지>는 20년 넘게 영국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택시 드라이버>
<조커>에게 영감을 준 작품 중 하나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도 범죄의 계기가 됐었다. 영화의 주역인 아이리스(조디 포스터)에게 너무 빠진 청년 존 헝클리 주니어(당시 25세). 그는 조디 포스터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는 스토킹을 일삼았다. 그러나 아무런 회신이 없자 ‘자신이 주인공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가 되면 되겠다’는 망상에 빠졌다. 그리고 극중 트래비스의 행동이었던 정치인 암살 소동을 따라 했다. 심지어 그 대상은 레이건 대통령. 작전은 실패했으나 그가 쏜 총알에 맞은 백악관 대변인 제임스 브래디는 큰 부상을 입었다. 존은 정신이상으로 34년간 정신병원에 수감된 후 2016년 석방됐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을 장식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1994년 대니얼 스탈링이라는 남성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여자친구와 관람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여자친구에게 “오늘 밤 너를 죽여서 피를 마실 거야”라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이를 장난으로 넘겼지만 그는 실제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까지 마셨다. 경찰에게 붙잡힌 그는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100% 영화 탓은 아니다”고 전했다. 또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후속편인 <퀸 오브 뱀파이어>가 개봉한 뒤에는 알란 맨지스라는 남성이 불가능한 판타지를 실행에 옮김 사례도 있다. 그는 자신이 뱀파이어라 믿어 오랜 친구를 살해, 뱀파이어로 환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후 알란은 교도소에서 자살을 택했다.
<아메리칸 사이코>
범죄자 혹은 살인마를 멋지게 그려낸 숱한 영화들이 있다. ‘교양 살인마’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아메리칸 사이코>는 그 부정적인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2004년 미국에서는 겨우 만 14세가 된 마이클이 동급생을 흉기로 40차례나 찔러 살해한 범죄가 발생했다. 그가 이렇듯 참혹한 일을 저지른 것은 2000년 제작된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고 크게 감명받았기 때문. 겉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주인공 패트릭(크리스찬 베일)의 이중성이 멋있어 보였다는 것. 이후 마이클은 살인을 미화하는 듯한 그림, 음악들을 끊임없이 보고 들으며 연쇄살인마가 되겠다 다짐했다. 현재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쏘우>
고어영화의 정석처럼 자리 잡은 <쏘우> 시리즈. 영화의 설정을 생각했을 때 매우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을 듯하지만 <쏘우> 모방 범죄는 다행히 발생 전 저지됐다. 미국의 한 학생이 친구와 <쏘우>를 재현하는 범죄를 계획, 그의 어머니가 이를 우연히 엿듣고 경찰에 신고한 것. 처음에는 장난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들은 이미 범행 공간, 대상까지 설정해놨으며 직쏘처럼 피해자들을 지켜보기 위한 카메라도 구비한 상태였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DC 인사이드’에서 한 유저가 사람이 아닌 고양이를 대상으로 <쏘우> 속 고문을 행하고, 그 과정을 사진으로 게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찰 조사가 들어갔지만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