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영화 속 명대사 “I’ll be back” 이후 잊을 만하면 돌아오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새 영화가 첫 영화로부터 35년이 지난 2019년, 다시 한번 돌아온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터미네이터>(1984)와 <터미네이터2>(1991)로부터 직접 이어지는 속편으로 인정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로 말이다. <터미네이터2>로부터 27년 뒤를 시간적 배경으로 정한 새 영화는 프랜차이즈를 통틀어 여섯 번째 영화이며, 여전사 사라 코너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던 린다 해밀턴이 60대가 된 사라를 다시금 연기하는, 팬들이 기다려온 속편이기도 하다. 특히 닉 스탈(<터미네이터3: 라이즈 오브 더 머신>(2003)), 크리스천 베일(<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 제이슨 클라크(<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등 당대의 남성미 넘치는 배우들을 거친 존 코너를 에드워드 펄롱이 다시 연기한다고 알려져 큰 환영을 받기도 했다.
지난 7월 17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의 메가폰을 잡은 팀 밀러 감독(<데드풀>)이 새 영화 속 영상 몇편을 해외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1편에서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 알몸으로 지구에 도착하는 장면을 패러디해 새로운 여전사 그레이스(매켄지 데이비스)를 소개하는 도입부 장면과 인류의 새로운 희망인 대니(나탈리아 레예스)와 대니의 오빠 디에고(디에고 보네타)가 미래에서 온 업그레이드된 터미네이터 레브나인(Rev-9, 가브리엘 루나)의 공격을 받고 쫓기는 고속도로 액션 장면, 60대 중년이 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가 등장해서는 팬서비스로 “I’ll be back”을 외치는 장면, 그리고 터미네이터로서의 임무를 거부하고 인간인 척 살아가는 칼(아놀드 슈워제네거)과 사라 코너가 대면하는 장면 등 인상적이고 즐길 거리가 충분한 영상들이었다.
“나는 제임스 카메론이 아니다. 고작 두 번째 영화를 만든 초보감독일 뿐이다.” 겸손하게 자신을 소개한 팀 밀러 감독은 재차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자신이 다름을 강조하며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기존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와는 스타일이 다른 영화임을 암시했다. 그러면서도 밀러 감독이 카메론 감독을 따랐다고 인정한 부분은 영화의 페이스다. 관객에게 캐릭터를 충분히 소개한 뒤 거대한 액션 장면으로 영화가 달려갈 수 있게 이야기의 순서와 속도를 조절했는데, 그 부분에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편과 2편에서 보여준 속도를 되도록 따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지내온 여느 팬보이들과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1, 2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자랐다는 밀러 감독에 따르면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2>에서 사라 코너가 내린 어떤 결정이 27년 뒤 어떻게 인류의 미래를 바꾸었는지를 상상한 이야기다.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라 코너의 암울한 내레이션이 영화의 결말을 열어둔 덕분에 여러 속편으로 이어졌으나 흡족하지 못했던 <터미네이터> 프랜차이즈가 28년 만에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배우 린다 해밀턴 인터뷰
"강한 여자가 되기 위해 남자가 될 필요는 없다"
린다 해밀턴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 코너’였다. 주름진 얼굴과 짧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한 린다 해밀턴은 인터뷰 자리에 모인 기자들과 일일이 손을 잡고 포옹을 나눈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28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 역할의 주인을 되찾은 사라 코너를 현실에서 보는 듯 감회가 깊은 시간이었다.
-사라 코너 역할을 다시 맡는 걸 계속 거절하다가 20년 이상 지나 수락한 이유가 있나.
=사라는 지옥에 있는 여자였다. 그 여자를 다시 연기하는 건 내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제임스(카메론)가 내게 직접 다시 사라 코너 역을 제안했을 때는 달랐다.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27년이 지난 뒤 사라는 더이상 같은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흥미로웠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안에서 나이 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는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런 시점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내게 축복이었다. 진짜 나이 든 여자를 나이 든 역할로 캐스팅했다. 한 캐릭터의 인생을 연기해볼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축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7년 동안 사라 코너는 뭘 하고 지냈겠나.
=그녀는 잠들기 위해 술을 마셨을 거다. 나라가 없는 여자이고, 임무가 없는 군인이며, 아웃사이더이다. 사회보장번호(미국의 주민등록번호.-편집자)가 말소됐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시선에서 1편의 사라 코너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인류를 구원할 남자의 어머니다.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이해해달라. 2편에서 사라 코너는 세례자 요한이다. 야만스럽고 과격하게 사람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언한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사라 코너는 죽음에서 돌아온 나사로다.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 돌아와 다시 전투에 임한다.
-다시금 사라 코너가 되는 건 어떤 경험이었나.
=상당히 신경 쓰이는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결과에 집착하며 연기한 적이 없었다. 이 영화는 내가 최초로 결과를 걱정하며 연기한 영화다. 왜냐하면 나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고, 사라 코너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관객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사라 코너 역할이 그 뒤로 이어진 강한 여성 캐릭터들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내가 비슷한 역할을 15년 앞서 연기했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필이면 그때 사라 코너를 연기했고, 어떤 세상이 열렸던 거다. 내가 했던 한 가지는 긴 머리카락을 고수한 거다. 제임스는 머리를 짧게 자르기 원했지만 나는 여성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니테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강인한 여성성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됐다. 강한 여자가 되기 위해 남자가 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게 된 거다. 우연한 타이밍에.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 인터뷰
"관객이 발견할 수 있는 멋진 반전이 숨어 있다"
“나는 기계다. T-800이다.” 죽어도 되살아나 돌아오는 자신의 캐릭터를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이렇게 설명했다. 연기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질문에 노련한 이 노배우는 “그 질문은 제임스 카메론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팀 밀러에게 어울릴 것”이라고 일축했다.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영화 속 역할을 다시 연기한 70대의 슈워제네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한 모습이었다.
-영화 속 사라 코너는 머리가 희끗한 중년으로 등장한다. T-800 역시 세월이 흐르며 나이 든 모습이다.
=린다(해밀턴)는 62살이다.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와 다른 머리색을 갖는 건 당연하다. T-800도 마찬가지다. 메탈 소재의 뼈대를 가진 사이보그지만 인간의 살과 피로 덮여 있으니 껍데기가 노화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로봇이기 때문에 나이 들어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이전과 같은 힘과 기술로 움직일 수 있다.
-지난해 심장수술을 받았는데 영화를 위해 다시 몸을 만들어야 했다.
=수술 뒤 일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았고 회복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심장수술은 누군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었다. 작은 수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했는데 18시간 뒤 깨어나보니 가슴을 열어 심장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 수술은 올림픽 선수가 훈련하는 것 같은 운동량을 요구했고, 그를 통해 영화에 맞는 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터미네이터를 미래에서 현재로 보내는 아이디어가 이번에도 반복된다.
=대신에 이번에는 그 아이디어에 여러 변화를 준다.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타임라인과 관련된 것으로, 나 역시 영화를 준비하며 타임라인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 영화에서 관객이 발견할 수 있는 멋진 반전이 숨어 있으며, 제임스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제임스는 터미네이터라는 세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캐릭터와 시간여행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그런 요소들에 대해 사람들이 다시금 이야기하는 영화가 될 거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현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 영화가 멕시코와 미국에 대한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영화가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특정한 정치적 성향으로 관객을 이끌려고 하지 않는다. 좌파건 우파건 모두 영화를 보게 만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멕시코와 미국의 관계도 물론 담겨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넌 정말 운좋은 놈이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15살의 나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훌륭한 보디빌더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 와서 영화배우가 됐고,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됐다. 모든 과정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매켄지 데이비스, 나탈리아 레예스, 가브리엘 루나 인터뷰
"계산된 움직임이 필요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만났다. 1편과 2편의 사라 코너를 각각 떠올리게 하는 두 여성 캐릭터, 그레이스와 대니를 연기한 매켄지 데이비스와 나탈리아 레예스, 그리고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터미네이터 레브나인을 연기한 가브리엘 루나와 나눈 인터뷰를 짧게 정리해 전한다.
-그레이스는 어떤 캐릭터인가.
=매켄지 데이비스_팀(밀러 감독)은 그레이스에 대해 극도로 직관적이고 최대의 능력치를 가진 전사인 동시에 동정심 많은 감정적인 존재라고 설명해줬다. (그레이스는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하던데?) 맞다. 그레이스는 사람이다. 사이보그와 유사한 수준으로 신체능력을 증강시키는 과정을 거친 업그레이드된 인간이다. 그래서 몸에 기계인 부분이 있고, 인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레이스는 터미네이터처럼 알몸으로 현재에 도착한다. 각본을 읽었을 때 놀랐나.
매켄지 데이비스_놀랐다기보다 신이 났다. 이 영화를 전편들과 연결시켜주는 세련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터미네이터>의 도착 장면에 대한 오마주라서 더욱 특별했는데, 마치 어려서 보던 영화 속으로 내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촬영은 무척 힘들었지만 그 장면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니는 어떤 캐릭터인가.
=나탈리아 레예스_멕시코시티 출신의 평범한 여자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고,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가장이나 다름없다. 그런 대니 앞에 터미네이터가 갑자기 나타나 죽이려고 하는데, 또 갑자기 사라 코너와 그레이스가 나타나 대니를 보호하고, 대니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고자 하는 로드트립이 시작된다.
-터미네이터가 대니를 쫓는 이유가 있나.
나탈리아 레예스_영화에서 사라가 대니를 이해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라와 대니의 처지가 같기 때문이다. 사라가 미래에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대니 역시 미래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다. 그래서 터미네이터가 대니를 죽이려고 미래에서 온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로부터 새로운 터미네이터에 대한 조언을 들었나.
=가브리엘 루나_아놀드와 트레이닝을 위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누구를 따라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의 터미네이터를 만들어내라며 말을 아꼈다. 대신 터미네이터로서의 모든 움직임이 계산된 움직임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끄럽고 신속한 움직임으로 비인간성을 표현하려면 미리 설계하지 않고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고 이 말이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레브나인은 어떤 터미네이터인가? T-1200쯤 된다고 생각하면 되나.
가브리엘 루나_과거의 캐릭터들이 걱정했던 미래는 다가온다. 애써 막으려고 하지만 인간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그 실수로 인해 어두운 미래가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면서 미래는 과거의 미래와 달라지게 되고 터미네이터의 모델에 이름 짓는 방식도 바뀌게 된다. 레브나인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모델명이다. 알로이 메탈 소재의 로봇이며 이전의 어떤 모델보다 강하고, 가볍고, 유연하다. T-1000처럼 액체화가 가능한 동시에 액체와 뼈대를 분리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