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미드90> 속 특정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를 숙고하다
2019-10-17
글 : 홍은애 (영화평론가)
“옆에 누가 있는 건 정말 좋더라”

배우 조나 힐의 감독 데뷔작 <미드90>은 90년대 중반 미국 LA를 배경으로 한 13살 소년 스티비(서니 설직)의 성장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같은 시기 뉴욕 빈민가 10대 청소년들의 방황과 갈등을 그린 래리 클라크 감독의 <키즈>(1995)와 맥을 같이한다. 또한 그 이후에 만들어진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2003)와 <파라노이드 파크>(2007)를 떠올리게 한다. <미드90>이 흥미로운 것은 90년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비디오테이프의 4:3 화면비로 촬영했다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인물을 집중해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카메라는 주인공 스티비가 스케이트보드에 입문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영화는 방에서 뛰쳐나오는 스티비가 그의 형 이안(루카스 헤지스)에게 붙잡혀 일방적으로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독은 왜 느닷없이 스티비가 맞는 장면에서 시작하는가? 이는 감독이 형 이안의 폭력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과도 관련있지 않을까. 또한 이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앞서 보여준 장면과 뒤에 나오는 장면이 서로 대구를 이룬다는 것이다. 감독은 왜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형, 동생 그리고 동생의 친구들

우선 스티비와 형 이안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부터 살펴보자. 영화의 첫 장면에서 스티비는 형에게 붙잡혀 발버둥치지만 힘에 눌려(스티비보다 5살 위인 이안은 체격이 좋다) 일방적으로 맞는다. 영화에는 이안의 폭력 장면이 세번 등장한다. 처음 이안에게 맞은 스티비는 거울 앞에 서서 가슴의 상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런 스티비에게도 변화가 온다. 스티비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네 형들을 만나면서 담배, 술, 여자 등등 미성년인 스티비에게 금지된 것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째로 스티비가 맞는 장면을 보자. 그는 스케이트보드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형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오히려 형의 요구로 엄마의 돈을 훔치게 된다. 이 사실이 탄로나고 스티비의 엄마는 스티비에게 진실을 알고자 하지만 그는 형 혼자 한 일이라고 거짓말하는 용기를 낸다. 형은 잠든 스티비의 방에 들어와 그를 때리고 스티비는 억울해서 벽을 친다. 마지막으로 스티비가 파티에서 여자와 즐기고 집에 늦게 들어온 날(오후 8시가 통금시간이다) 그는 마당의 화초에 소변을 본다. 카메라는 거실 안에서 유리문을 통해 소변을 보는 스티비를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 스티비가 스케이트보드 가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의기소침한 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스티비를 본 형이 그를 붙잡으려 하자 스티비는 주방으로 달려가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낸다. 감독은 화면 중앙에 위치한 냉장고를 중심으로 쫓고 쫓기는 두 형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스티비는 이안에게 붙잡히지만 이번엔 일방적으로 맞는 것이 아니라 들고 있던 물통으로 이안의 얼굴을 가격하고 도망친다. 형은 맞은 얼굴을 붙잡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운다. 이 장면에서 스티비는 처음으로 이안에게 반격하게 된다. 반면에 감독은 스티비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이안이 거리에서 스케이트보드 친구 중 한명인 존나네(올란 프레나트)와 부딪혀 시비가 붙자 그와 맞서 싸우기는커녕 대꾸도 못하고 그냥 가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스티비와 스케이트보드 친구들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을 보자. 영화의 초반 스케이트보드 가게 밖에서 안을 살피던 스티비는 조심스럽게 들어와 물건을 고르는 척하면서 루벤(지오 갈리시아)과 형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다. 이야기의 중심엔 레이(나켈 스미스, 이들의 우상)가 있고 그 주변으로 친구들이 둘러앉아 있다. 이후 스티비(이전엔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는 스케이트보드를 가지고 와서 이들이 스케이트보드 타는 모습을 지켜보다 이들 중 막내 루벤과 먼저 말을 튼다. 스티비는 루벤이 귀찮아하는 물통에 물을 채우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형들의 대화를 참관하게 된다. 이 장면에서 스티비는 형들이 앉아 있는 소파 앞 바닥에 앉아 대화를 듣는다. “흑인이 땡볕(햇볕)에 타냐?”는 대화 중에 레이가 스티비에게 의견을 묻자 스티비는 머뭇거리다 “흑인이 뭐예요?”라는 엉뚱한 대답으로 ‘땡볕’이란 별명을 얻고 그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탈 기회를 얻는다. 이후 옥상에 뚫린 공간을 가로지르는 스케이트보드 타기에서 스티비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간을 가로지르다 아래로 떨어져 머리를 다치면서 이들의 멤버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스티비의 사고로 스티비 엄마는 스케이트보드 가게에 찾아와 레이와 친구들에게 자기 아들과 만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엄마의 간섭에 화가 난 스티비는 “이런 거 못 참겠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때 레이가 스티비 옆에 와서 그를 달래준다.

이번에는 스티비와 레이의 대화 장면을 보자. 레이는 스티비에게 “자신의 상황이 가장 힘들게 생각되지만 다른 사람의 상황도 알고 보면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이라”며 친구들의 이야기(가난, 알코올중독, 가정폭력에 시달리는)와 자신의 이야기(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힘들었을 때 존나네가 와서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됐다)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옆에 누가 있는 건 정말 좋더라. 스케이트보드 타러 가자”고 말한다. 이 장면은 스티비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형 이안이 동생 스티비를 바라보다 깨워 동생에게 오렌지주스 뚜껑을 따서 건네주는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이 장면에서 스티비와 레이가 나눈 대화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도 스티비의 형은 레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제 스티비가 중심에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중반 스티비와 형이 거실 소파에서 게임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 장면은 앞에서 언급한 스티비와 레이의 대화 장면과 대구를 이루면서 다시 영화의 마지막에 스티비의 병실에서 형이 스티비에게 오렌지주스를 건네는 장면과 만나게 된다. 또한 스티비 엄마가 스티비의 교통사고 후 병원 로비의 소파에 잠들어 있는 스티비 친구들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스티비 엄마는 레이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 후 “들어가볼래?”라고 권유한다. 이 장면은 스케이트보드 가게를 찾아가서 소리치던 엄마의 모습과 대비된다. 이후 병실에서 친구들이 스티비가 누워 있는 침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둘러앉아 있는 장면은 스티비가 스케이트보드 가게를 찾아와 그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장면이나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방관자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이처럼 감독이 같은 상황을 여러 번 반복(형의 폭력 장면, 형/레이의 대화 장면, 친구들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해서 보여준 것은 영화의 초반 동네 형의 주변에 머물던 스티비가 스케이트보드를 통해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에 감독이 선택한 4:3의 화면비는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주인공 스티비의 성장 과정을 더 심도 있게 보여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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