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영화진흥위원회의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 토론회
2019-10-18
글 : 이나경 (객원기자)
사진 : 오계옥
공급자와 수요자, 산업과 문화간 균형 잡힌 정책 필요
‘영화진흥위원회의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 토론회 현장.

“8~10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다. 피해를 회복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안을 세우며 해결해가는 과정이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 현황과 과제’ 토론회가 10월 16일 오후 2시 대한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열렸다. 토론회를 진행한 전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 전문위원 박채은 프로듀서의 말대로, 열띤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정윤희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블랙위원회 위원장이 블랙리스트 실행의 특징, 문제점, 제도적 원인 등을 짚으며 블랙리스트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로 토론회의 포문을 열었다. ‘블랙리스트 후속조치-제도개선 과제 이행의 쟁점 그리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운동의 현재’라는 주제 발제에서 그는 “블랙리스트는 정책을 가장한 국가범죄다. 제도개선의 주요 과제로 문화정책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역사 속에서 지속해서 복기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 진상규명과 권리보장을 위한 기구가 필요하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조종국 영진위 사무국장은 ‘영진위 블랙리스트 후속조치 및 제도개선 과제 이행 현황’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제도개선의 주요한 과제 중 하나인 심사제도를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편했음을 알렸다.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부, 국가정보원 등에서 ‘어느 감독을 배제해라, 어떤 작품을 넣어라’ 등과 같은 지시가 영진위 직원에게 전달되고 그 직원이 심사위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큰 맥락이었다. 심사의 공정성, 투명성, 전문성 제고를 위해 아직 남은 숙제가 많지만 심사제도를 일차적으로 개편했다. 1천여명의 심사위원 풀이 새롭게 만들어졌고, 기존에 문제가 있었던 이들은 심사 풀에서 배제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 사무국장은 “피해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보상해야 한다. 이런 지점에서 영진위가 소흘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주유신 영진위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과거사특위) 위원장은 과거사특위 활동 경과를 설명했다. 과거사특위의 운영목적 및 성격, 기능, 구성 현황, 회의 개최 현황, 운영 경과 등의 활동 전반에 대한 설명과 함께 “2017년 12월에 준비위원회를 발족했고,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이러한 토론회 자리를 2차례밖에 가지지 못한 것 자체에 책임을 느낀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내년 초까지 과거사 특위 백서 발간이 목표라고 전했다. 김성훈 영진위 과거사특위 책임조사위원 겸 <씨네21> 기자는 ‘영진위 과거사특위 조사 경과’를 발표했다. 그는 “조사위원으로서 아쉬운 점은 과거사특위가 수사기관이 아닌 까닭에 조사에 대한 강제성을 갖지 않아 조사가 필요한 사람들을 제대로 조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계 블랙리스트 실행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조사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발제가 끝난 뒤 이어진 토론회는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관장의 영진위 블랙리스트 후속작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로 시작됐다. 원 관장은 “영진위에서 블랙리스트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접근하고 해결 중인지 피드백이 필요하다. 개선안이 나왔을 때 영화인들의 입장과 생각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피해자들에게 발언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진상규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제도개선의 방향을 잡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영진위 조직 문화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영화인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블랙리스트 피해자 중 한명으로, <불온한 당신>(2015)을 연출한 이영 감독은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프로세스’라는 주제로 토론을 이어갔다. 박근혜 정권 당시 여러 차례 지원에서 배제됐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창작자이자 피해당사자로서의 의견을 냈다. 그는 “이 자리에 와서야 영진위 지원사업의 심사위원 풀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여러 단체와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나, 이를 통해서만 의견을 수렴한다면 개별적으로 창작하는 이들은 배제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영진위가 창작자 개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을 만들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표현의 자유 침해 행위 발생 시 해결 방안과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윤리경영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뒤이어 한철희 예술영화전용관 안동중앙시네마 대표는 지난 정권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가 안동중앙시네마에 어떤 피해를 남겼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2014년 안동중앙시네마를 포함해 총 5개 극장이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서 배제됐다. 이를 초래한 근본 원인은 영진위의 일방적인 블랙리스트 시행이었으며, 검열기준은 당시 집권 정부가 불편하게 여긴 작품인 <천안함 프로젝트>(2013)를 상영했다는 것”이라면서 2016년 영진위가 대안으로 제시한 예술영화전용관 유통배급지원사업의 맹점을 지적하며, 이런 비이성적인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은경 미디액트 사무국장은 블랙리스트 후유증 검열기제의 작용에서부터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과제, 적극적 치유를 위한 지원정책의 방향 제언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정 사무국장은 “정보 접근이 용이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블랙리스트 작동 과정에 개입한 가담자가 문화예술 행정에 다시는 발들일 수 없도록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재발방지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안전’하게 다양한 소재의 영화가 제작과 배급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주유신 과거사특위 위원장은 “영진위의 자율성 및 전문성을 확보하고, 영화계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하며, 한국영화의 비판성 회복과 다양성 확대 지원을 해야 하고, 진상규명과 피해자 관련 후속 조치들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위원장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공급자와 수요자, 산업과 문화간 균형 잡힌 정책이 중요하다. 지역 영상문화 생태계 조성 역시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정 토론이 끝난 뒤 진행된 자유토론에서는 토론회를 지켜본 영화인들이 “블랙리스트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영진위의 보다 적극적인 태도와 개선이 필요하고, 피해자 중심의 재발 방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 영진위 부위원장이자 제작자인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영진위는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이하 영비법)을 따르는 조직이다. 영비법 16조에 모든 회의는 기록 후 공개되어야 함이 기본 원칙이라 써 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어떤가. 2009년 <시>(2010)를 영진위 지원사업에 신청한 당사자지만,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지금도 원인 불명의 탈락으로만 알고 있었을 거다.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적법한 처벌기준이 전혀 없다는 것도 문제다. 소통하겠다, 교육하겠다는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며 영진위 내부에서도 다방면으로 개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도 제도를 바꿔가며 또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게 가장 걱정이다. 영진위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몇몇 위원 선에서 문제를 제기한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영화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며 “특히 재발 방지의 주체는 피해당사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일련의 과정이 건강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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