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에서 30대 직장여성 서영(천우희)의 불안하고 고독한 마음은 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서영이 겪는 이명은 위태롭게 버티는 그의 처지를 극대화한다. 김필수 사운드슈퍼바이저(리드사운드 실장)는 전계수 감독으로부터 “서영이 일하는 고층빌딩 사무실이 거대한 어항이나 수족관 같았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여성의 심리와 애환이 섬세하게 묘사됐고 앰비언스 사운드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 사운드의 역할이 중요해 보였다. 그래서 어깨가 무거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영화에서 김 슈퍼바이저가 빚어내야 하는 소리는 크게 세 가지다. 세 차례 등장하는 서영의 이명 시퀀스를 포함해 어항처럼 질식할 것 같은 사무실 안, 빌딩 창문을 닦는 관우(정재광)가 일하는 옥상이 그것이다. 이명 시퀀스는 “관습적인 사운드를 최대한 배제”하고 “2년 전, 귀 질환 때문에 지하철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입원한 적 있는데 그때 겪은 경험이 많이 반영”됐다. “재난영화처럼 느낄 수 있어 인위적인 사운드를 부각하기보다는 이명의 먹먹한 느낌은 살리되 직장 동료들의 대사, 서점안 음악 등 주변 소리가 더 명확하게 들리도록 표현”됐다. 서영이 일하는 사무실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그의 사무실에서 나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몰래 녹음”하거나 “회사(리드사운드) 로비에 사람들을 모아 회의실 시퀀스 상황을 연출해 녹음”했다. 빌딩 옥상은 “시퀀스마다 등장하는 바람 소리를 날씨 상황에 맞게 조정”했다. “소리를 더 채워넣어야 했던 전작과 달리 <버티고>는 소리를 빼거나 무음이 많은 작업”이라 “특이했고 좋은 경험”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록 음악을 유독 좋아했던 김필수 사운드슈퍼바이저는 원래 “공연 사운드 일을 하려고 했지만 동아방송대학교에서 사운드를 전공하면서 영화 사운드에 발을 들였”다. <두사부일체>로 사운드슈퍼바이저 및 디자인 경력을 시작해 <알포인트> <주홍글씨> <두근두근 내 인생> <타짜-신의 손> 그리고 최근의 <버티고> 등 많은 영화들에서 소리를 빚어냈다. 앞으로도 “감독과 사운드디자이너 사이에서 아이디어를 잘 조율해 관객에게 자연스러운 소리를 전달하고 싶다”는 게 그의 각오다.
녹음기
“소리를 녹음할 일이 있을 때 항상 소니 PCM-D50을 챙긴다. 다른 녹음기는 너무 커서 주변 사람들이 의식해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기 어려운 반면, 이 녹음기는 작으면서 미세한 소리를 모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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