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리안 감독의 <제미니 맨>이 서사를 단순화하고 액션을 추가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2019-10-30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고강도 액션으로도 달래지지 않는 중년의 공허감

리안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중년 남자들은 늘 쓸쓸해 보였다. <색, 계>(2007)의 마지막 장면, 정보부 대장 이(양조위)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는 국가, 정치, 신념, 권력이라는 거대 가치 속에 가까스로 고독한 자아를 감춰오다 왕치아즈(탕웨이)를 만난다. 진짜 자기를 알아본 유일한 타자, 그녀를 숙청함으로써 그는 “유일한 동지이자 적”을 잃는다. 이 영화의 길고 처절한 섹스 신은 에로틱한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욕망 투쟁처럼 보였다.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인정하는 데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려버린 <브로크백 마운틴>의 애니스(히스 레저)도 마찬가지다. 그는 욕망의 대상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품었던 감정의 근원과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자아와 자아 사이

리안의 영화에서 사회적으로 보이는 자아와 내적으로 감춰진 자아 사이의 간극이 빚어내는 존재론적 고독은 기본적으로 깔린 배경 같다. 쉴 새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날카로운 칼날로 서로의 목숨을 겨누는 <와호장룡>(2000)의 무림고수들조차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강호 최강의 무사 리무바이(주윤발)는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자기 욕망에 더 충실해지기로 하며 은퇴를 선언한다. 리무바이와 오랫동안 마음속 연정만 간직했던 수련(양자경) 역시 강호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용(장쯔이)을 보며 자기의 내적 갈등을 투사한다. 수련은 무술의 경지에 올라갈수록 허망해지며, 자신의 공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무엇을 통해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용에게 알려주려고 마지막까지 애쓴다. 철부지 같던 용은 리무바이의 죽음을 목도하고서야 스승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얼핏 보기에 이런 동양적 정서와 상관없어 보이는 리안의 신작 <제미니 맨> 역시 이러한 정서적 배경과 깨달음을 기반으로 한다. 최고의 암살요원 헨리(윌 스미스)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수록 자기 존재를 견딜 수 없게 되어가는 딜레마에 직면하고 은퇴를 결심한다. 헨리를 능가하는 능력을 지닌 요원이 없는 정보국은 그의 은퇴가 가져올 손실 때문에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에 요새처럼 지어진 집에서 은퇴 후 삶을 즐기려던 헨리의 계획은, 그가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고 암살한 이가 실제로는 과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틀어진다. 자신이 전쟁을 부추기는 군수산업체들의 이익에 이용됐다는 것을 알게 된 헨리는 실수를 되돌리기 위해 잘못된 명령의 발원지를 찾아가던 중 ‘자기 자신’을 만난다.

<제미니 맨>은 바로 리안의 이전 영화들이 집중했던 진정한 자아 혹은 그런 자아를 알아봐주는 타자에 대한 갈구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작품 속의 ‘자아’ 찾기가 상징적인 의미의 층위에 있었다면 이 영화는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층위에서 그것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택한 삶 전체를 부정하고 싶은 중년의 헨리에게 젊은 날의 자아가 복제되어 찾아온다. 둘의 조우는 극강의 액션을 선사한다. 최고의 특수요원인 헨리와 그의 클론인 주니어는 서로를 어떻게 공격하고 방어할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트레일러가 관객을 가장 강력하게 유혹하는 요소는 바로 이 지점이다. 은퇴를 결심한 중년 특수요원과 그의 전성기 시절 체력을 가지고 있는 주니어, 그 둘의 대결은 어떻게 결론에 이를까? 물리적인 신체조건에서 압도적일 20대 클론을 중년의 진짜는 제압할 수 있을까? 당연히 중년의 진짜에게 체력을 넘어서는 지력과 연륜을 통한 갈등의 해결을 기대했고, 용호상박의 결투는 당연히 따라오는 재미라고 믿었다. 그 매력에 끌려 영화를 보고 난 뒤, 지인들과 나눈 농담은 이랬다. “왜 제미니맨이 재미가 없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안은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그 지점을 너무 쉽게 무시한다. <제미니 맨>이 통 ‘재미’가 안 나는 이유다. 헨리는 지력이나 연륜으로 젊은 클론을 압도하기보다 윤리의식과 애정(클론에 대한 애정이라 자기애에 가깝지만 나이 차 때문에 부성애로 보인다)으로 보듬어 안는다. <와호장룡>에서 용의 스승이자 원수가 된 ‘푸른 여우’는 죽기 전 용을 이렇게 부른다. “나의 유일한 가족이자 나의 유일한 적.” 헨리와 주니어의 대결도 초반에는 동일한 종류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래서 리무바이와 용의 결투처럼 주니어가 헨리에게 좀 더 격렬하게 저항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니어가 자신을 만들고 길러준 아버지 클레이(클라이브 오언)를 버리고 헨리를 따르게 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명료해서 맥이 빠진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일까?

영화에서 헨리 자아상의 훼손과 회복은 ‘거울’ 비유를 통해 제시된다. 헨리는 은퇴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로 거울을 피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거울 자아’는 라캉에 의하면 주체가 실제 자신보다 이상화된 형태로 인지하게 되는 자아를 의미한다. 헨리 내면의 자아상이 얼마나 훼손되었는지 간명하게 보여주는 대사다. 헨리는 주니어에게 자기와 다른 길을 걷도록 조언한다. 무엇보다 주니어가 자신을 만들고 길러준 클레이를 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즉 ‘살부(殺父) 의식’을 치르고 독립된 자아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비로소 헨리는 거울을 피하지 않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선과 악은 지나치게 분명하고, 죽어야할 생명과 그렇지 않는 것이 선을 그은 듯 나뉜다.

프레시 프린스와 주니어 사이

리안의 전작에서는 주인공들의 감정선이 깊이 있는 대사와 무거운 정적 속에 간절한 몸짓을 통해 매혹적으로 드러났다. <제미니 맨>은 그것을 기술적 경이로 채워 넣었다. 리안은 클론인 주니어의 얼굴을 윌 스미스의 10대 모습으로 재현하지 않고, 특수요원 헨리의 10대로 재현했다. 덕분에 살인기계로 태어난 운명과 그것을 거스르게 되는 비장한 청년 주니어를 볼 수 있다. 재기발랄했던 청년 ‘프레시 프린스’(래퍼로 활동했던 윌 스미스의 예명)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프레시 프린스와 주니어 사이의 간극은 독립적인 인격을 부여받은 클론의 현신을 보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윌 스미스의 눈부신 액션은 초당 120프레임의 고밀도로 촬영되었다. 아쉽게도 이런 촬영의 결과물을 정확하게 전달해줄 영사 시스템을 갖춘 극장이 많지 않아 대부분의 액션 신들이 생경하고 오히려 덜 선명하게 다가온다. 늘어난 프레임 수만큼 액션은 정교하게 관객의 눈앞에 전시된다. 하지만 거기서 파생된 느림은 <와호장룡>의 느림이 유려함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던 것과 달리 ‘지체’라는 단어와 환유된다. 리안 감독은 가장 뛰어난 시각장치들을 고안해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디지털 시대의 ‘셰에라자드’ 같았다. 그러나 <제미니 맨>에서는 요술을 펼치는 ‘지니’만 보인다. 이 영화는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중년의 요원 헨리의 내적 고뇌를 주니어를 통해 너무 쉽게 해결해버렸다. 그리고 극도로 단순화된 서사에서 인물의 내면이 빠져나간 자리를 액션으로 채웠다. 내적 갈등의 깊이가 결여된 액션은 아름답지만 지루하고, 단순화된 갈등을 풀기 위한 결투에 속도감은 있지만 긴장감은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든 것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스스로에 대해서조차 자신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헨리가 주니어에게 들려주는 단호한 조언보다는 “사실은 같을지라도,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라고 묻던, <라이프 오브 파이>(2012) 속 파이의 신중한 목소리에 더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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