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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의 십자가> 반태경 감독 - 조선 민족의 혼을 지키는 모습 담았다
2019-10-31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100년 전 고향을 떠나 머나먼 북간도로 건너와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인들이 있었다. 한손에는 십자가를, 또 한손에는 총을 든 그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워 많은 조선인 아이들을 교육시켰고, 독립군으로 길러냈으며,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다.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CBS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는 문동환·문익환·김약연 목사, 윤동주 시인 등 북간도의 꺼지지 않은 별들을 그려낸 작품이다. 올해 초 2부작으로 CBS에서 방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지난 10월 17일 극장 개봉했다. 반태경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종교로서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북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한 기독교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3·1운동의 의미를 잘 모르지 않나. 나 또한 3·1운동 하면 유관순 열사의 만세운동 정도밖에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전작 <다시 쓰는 루터 로드>가 끝날 때쯤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영화를 준비했다. 기독교방송이니 민족 대표 33인 중에서 기독교인들이 16명이라는 단순한 역사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너무 뻔했다. 3·1운동을 어떻게 다룰까 고민하다 ‘간도 대통령’이라 불렸던 김약연 목사를 알게 됐다. 마침 지난해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이고, 윤동주 시인이 그의 친구이기도 하다. 누구나 잘 아는 그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곳으로 이주해 교회와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교육하고, 독립군으로 양성했던 그들의 사연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그들이 살던 곳에는 유산이 거의 남지 않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중국 정부가 관광지로 관리하고 있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사연을 극장용 다큐멘터리로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의 문동환 목사(그는 올해 3월 별세했다)를 찾아가 대화를 주고받은 설정은 이 영화를 단순한 역사 다큐멘터리로 만들지 않기 위한 목적인가.

=많은 역사 자료를 확보했지만 그걸 그대로 보여주는 건 아니라고 보았다. 기독교방송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서사를 어떻게 전개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 초, 문동환 목사님을 처음 찾아가 뵈었는데 노환 탓에 회고할 만큼 말씀을 잘 꺼내지 못하셨다. 소설가이기도 한 김어흥 작가가 문동환 목사님을 억지로 인터뷰하기보다 그의 말투를 반영한 내레이션을 집필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심용환 작가가 서사를 전부 끌고 갈 수 없기에 심 작가와 문동환 목사가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했다.

-배우 문성근이 작은아버지인 문동환 목사의 내레이션을 직접 했는데 느낌이 되게 묘하더라.

=문성근 선배를 몇 차례 찾아가 목소리 출연을 부탁했지만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게 작품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럼에도 (문성근) 선배가 꼭 해주셔야 한다고 부탁드리자 정말 잘해주셨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여준 목소리일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녹음에 들어가니 문 목사님처럼 누우셔서 똑같은 목소리를 내셨다. 심용환 작가가 문동환 목사님의 빈소에 가자 “그래 자네였군, 올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문 선배의 목소리가 이영화의 첫 내레이션이다.

-북간도를 실제로 가보니 어떤 감흥이 들던가.

=직접 살아보진 못했지만 1970년대 한국의 시골 분위기였다. 그곳에 가기 전에 공부를 열심히 했고, 현재 남아 있는 유산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태극문양, 무궁화, 십자가가 새겨진 막새기와와 어두컴컴한 동굴에 태극기와 이름을 적은 풍경, 두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조선 민족의 혼을 지키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직접 찍은 북간도의 풍경뿐만 아니라 동양화풍의 애니메이션, 역사학자, 목사 등 전문가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형식을 구성해 교육적인 내용인데도 지루할 새가 없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나 <밀정>(2016)의 모티브가 됐던 ‘간도 15만원 탈취 사건’(간도 지역의 반일 무장단체가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의 조선은행 자금을 탈취하려고 했던 사건.-편집자)은 재연해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규모를 갖추지 않은 재연은 격을 떨어뜨릴 거라고 판단했다. 현재 북간도에는 남아 있는 자료가 없어 정흥철 작가를 모셔 영화 속 주요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했다.

-기독교방송이 만든 콘텐츠임에도 종교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보는데 부담이 없었다. 이 영화가 다루는 독립운동의 의미는 종교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기독교든, 천주교든, 불교든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잘 살고 구원받으려고 하는 현실이지 않나. 물론 자신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지만 갈수록 그 수는 줄어들고 있다. 특히 개신교는 과거에는 정치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지금은 정치적 발언과 행동을 많이 하고 있지 않나. 물론 그들 전부를 폄하할 수는 없다. 정말 나라를 걱정해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에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모두가 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100년 전 기독교인들은 왜 총과 십자가를 같이 들었을까.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시편 126편 5절을 얘기했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손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지금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촬영하는 과정에서 문동환 목사가 세상을 떠났는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많이 알게 됐다. 북간도의 정신과 그의 사회적 유언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어 무척 감사했다. 죽어서 천국에 가 그를 만난다면 꼭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다시 쓰는 루터 로드>를 만들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다음에는 무엇을 기념할 거냐’고 물어왔다. (웃음) 역사적 사건을 현대적, 기독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런 배경에서 내년에 도전해야 할 아이템이 몇 있다. 시도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5·18민주화운동도, 전태일 열사도 그중 하나다. 특히 민주열사 묘역이 조성된 마석 모란공원묘지에서 문동환 목사님을 보내드린 뒤 내려와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씨를 만났다.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전태일을 다루라’는 계시인가보다 싶었다. 김약연, 문동환, 문익환, 윤동주 등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당대에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역사에 남았으니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을 계속 기록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기독교방송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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