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 만인가. 세기의 라이벌이었던 두 배우가 함께 극장가를 찾았다. <람보 : 라스트 워>로 돌아온 실베스터 스탤론과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로 돌아온 아놀드 슈왈제네거다. 심지어 자신들을 스타덤에 올려줬던 대표 캐릭터로 복귀했다. 이미 승패는 결정 난 듯하지만 같은 시기에 람보와 터미네이터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는 것 자체로 감회가 새롭다.
<록키> 시리즈와 <람보>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와 <코만도>. 엄청난 피지컬로 1980~9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 액션 스타로 군림했던 두 배우. 실제로 당시 그들은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이 있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서로를 인정하며 지금은 절친한 친구가 됐다. 2012년에는 각각 다른 영화 촬영 중 부상을 입은 두 사람이 한 병원에 입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처럼 전성기를 함께 했던 할리우드의 라이벌 배우들에는 누가 있을까. 고전 배우들부터 지금까지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까지. 서로가 라이벌임을 의식하거나 팬덤이 나뉘었던 여섯 쌍의 배우들을 알아봤다.
존 웨인 VS 게리 쿠퍼
배우에서 명감독이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중저음이 매력적인 헨리 폰다 등 당대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서부극은 필수 요소였다. 그러나 서부극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은 이들은 역시 존 웨인과 게리 쿠퍼. 먼저 데뷔한 존 웨인은 서부극의 대가 존 포드 감독의 첫 유성 서부극 <역마차>로 스타덤에 올라 <말 없는 사나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등으로 활약했다. 게리 쿠퍼는 <버지니아>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서부의 사나이>, <평원의 사나이> <하이 눈> 등 쟁쟁한 작품들로 함께 서부극 전성기를 이끌었다. 두 사람은 실제로 경쟁의식도 가지고 있었는데 존 웨인이 게리 쿠퍼의 <하이 눈>을 폄하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195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존 웨인은 “<하이 눈>의 캐스팅이 자신에게 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직접 말하며 <하이 눈>이 명작임을 인정했다.
마릴린 먼로 VS 오드리 헵번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할리우드 고전 여성 배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을 선정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7년만의 외출> <뜨거운 것이 좋아> 등으로 할리우드를 주름잡은 마릴린 먼로. 스크린 속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는 여성, 유색인종 등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현명한 배우였다. 같은 시기를 장식한 오드리 헵번 역시 <로마의 휴일> <파계>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의 명작을 남겼으며, 유니세프 대사로 활동하는 등의 선행으로도 유명했다.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은 없었으나 현시대를 살아가는 신세대들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영화사의 이름을 남긴 이들이다. 마릴린 먼로는 흰색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반대로 오드리 헵번은 검은색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로 불리기도 했다.
스티브 맥퀸 VS 폴 뉴먼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과 함께 ‘반항아’ 이미지의 전형을 구축한 스티브 맥퀸. 반대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폴 뉴먼. 두 사람은 서로 신경전을 벌일 만큼 강한 라이벌 구도를 띄었다. 데뷔 초 폴 뉴먼 주연의 <상처뿐인 영광>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스티브 맥퀸. 당시 폴 뉴먼의 차에 잘못 탑승했던 그는 경호원들에게 핀잔을 받으며 무시를 당했고, 그때부터 “폴 뉴먼을 넘는 배우로 성장하겠다”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각각 <내일을 향해 쏴라> <불리트> 등으로 활약하며 명성을 쌓았다. 1974년에는 재난 영화 <타워링>에서 공동 주연을 맡기도 했는데 크래딧에 등장하는 이름 순서 등으로 자존심 싸움이 일기도 했다. 결국 두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등장했다.
시고니 위버 VS 린다 해밀턴
지금부터는 아직까지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액션 연기는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 편견을 부수는데 크게 이바지했던 두 캐릭터가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시고니 위버)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 여성 액션 캐릭터를 주연으로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함께 가지는 작품들이다. 또한 두 역할 모두 1편에서는 로봇, 괴물에게 쫓기는 느낌이었지만 2편에서는 상대를 사냥하는 모습으로 변신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로 복귀한 린다 해밀턴처럼 새로운 <에이리언> 영화에서 시고니 위버가 출연하기를 염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멕 라이언 VS 줄리아 로버츠
1990년대에 접어들며 ‘로맨틱 코미디’ 전성기를 맞이한 할리우드. 그 중심에서 ‘로코 퀸’으로 군림했던 배우들이 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으로 활약한 멕 라이언과 <귀여운 여인> <노팅 힐> 등으로 활약한 줄리아 로버츠다. 그들과 함께 산드라 블록, 앤디 맥도웰 등이 스크린을 수놓았지만 작품의 인지도, 흥행 면에서는 두 사람이 우세했다. 멕 라이언은 감성 세포를 자극하는 훈훈한 로맨스로, 줄리아 로버츠는 보다 유쾌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또한 원래 <귀여운 여인>은 멕 라이언이 주연으로 먼저 캐스팅된 작품. 그녀가 이를 고사하며 줄리아 로버츠가 낙점돼 스타덤에 올랐다. 작품 거절이 쟁쟁한 라이벌을 만들어 낸 셈이다.
브래드 피트 V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지막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할리우드 최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다. 두 배우 모두 데뷔 초 빛나는 외모로 먼저 주목받은 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한 사례다. 반전 매력을 통해 놀라움을 샀던 공통점도 있다. 초창기 <로미오와 줄리엣> <토탈 이클립스> 등으로 미소년 이미지를 굳혔던 레오나르도는 <타이타닉>을 거쳐 <아이언 마스크>에서 폭군을 연기, 악역으로 변모했다. 반대로 <델마와 루이스> <가을의 전설> 등에서 섹슈얼한 매력을 자랑했던 브래드 피트는 <조 블랙의 사랑>으로 세상 달달한 로맨티시스트로 변신했다. 현재는 두 사람 모두 한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최근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첫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