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72세 맞으세요?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변천사
2019-11-08
글 : 김진우 (온라인뉴스2팀 기자)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린다 해밀턴과 함께 그가 돌아왔다. 탄탄한 근육으로 1980~199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아놀드 슈왈제네거다. <터미네이터 2>를 그대로 잇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그는 다시금 T-800을 연기, 만 72세의 나이가 무색한 액션을 선보였다. 지나온 세월만큼 주름이 늘었지만 터질 듯한 팔, 어깨 등은 여전히 일반인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듯하다.

배우 활동 이전부터 보디빌딩 선수로 이름을 떨치고, 세계적인 스타가 된 뒤에는 정치인으로도 변모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 덕분에 그는 배우라는 수식어만으론 설명이 부족한 인물이 됐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개봉과 함께, 십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변천사를 알아봤다.

청소년기

유년기, 청소년기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과연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언제부터 근육남이었을까. 정답은 청소년기를 관통하는 15세 무렵이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14살 때까지만 해도 운동에 크게 흥미가 없는 학생이었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만 매진했다고. 그러나 학교에서 개최했던 축구 시합에 출전한 뒤 운동에 눈을 떴다. 원래는 마른 체형이었지만 점점 근육이 붙는 것을 즐기며 15세부터 본격적으로 보디빌딩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이를 반대했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꿈을 접지 않았고 하루에 5~6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덕분에 16살 때부터 남다른 체격을 완성했다.

흔들린다면 지방이다

군 복무 시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의 못 말리는 근육 사랑은 군대에서도 계속됐다. 만 18세 때 1년간 군 복무를 이행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일부러 연병장을 돌며 유산소 운동을 했고, 주위 사물들을 이용해 근력 운동을 했다. 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1시간씩 일찍 일어났다고. 심지어 보디빌딩 대회인 ‘주니어 미스터 유럽’에 참가하기 위해 탈영을 강행해 우승을 차지했다. 트로피를 가지고 돌아온 그는 1주일 간의 영창에 갇혔지만 1등 소식을 확인한 장교들은 그 열정에 감명받아 오히려 여유 시간을 주고, 그를 조리병으로 배치해 고단백 식단을 섭취할 수 있게 도와줬다.

전역 후에는 본격적인 선수 활동을 시작했다. 미스터 유니버스 아마추어 부분 등에 참가했으며 만 20세 미스터 유니버스 프로 부문을 최연소로 석권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최대의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6년 연속 1등을 거머쥐며 최고의 보디빌더로 거듭났다. 효율적은 근력 증대를 위한 피라미드 훈련법을 체계화해 전파했으며, ‘아놀드 프레스’라는 운동법을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흔들린다면 지방이다”는 어록도 있다. 그 결과 단순히 유명했던 보디빌더가 아니라, 당대에는 생소했던 ‘보디빌딩’을 세계적으로 알린 전설적인 선수로 남았다.

보디빌더 시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액션 스타

<코난 더 바바리안>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도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롤 모델이었던 레그 파크(보디빌더 출신 배우)처럼 영화에 출연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렇게 첫 미스터 올림피아 우승해인 1970년, B급 코미디 영화 <뉴욕의 헤라클레스>에서 주연을 맡으며 데뷔했다. 1977년에는 본인의 보디빌딩 다큐멘터리 <펌핑 아이언>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열어준 작품이 1982년~1985년 제작된 <코난> 시리즈. 로버트 E. 하워드가 쓴 동명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적들에게 노예로 끌려간 소년이 용사로 거듭나게 되는 이야기다. <코난> 시리즈를 통해 액션 연기의 초석을 닦은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곧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의 주연으로 낙점되며 액션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 <코만도> <프레데터> <터미네이터 2> <토탈 리콜> 등의 액션 명작에 줄줄이 출연하며 입지를 굳혔다.

<코만도>
<터미네이터 2>

코미디 연기

<쥬니어>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액션 연기를 펼쳤지만,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어눌한 영어 발음과 딱딱한 표정 연기로 혹평을 받았다. 때문에 들어오는 배역도 액션을 중심으로 감정 연기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캐릭터들이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코미디. 1988년 제작된 <레드 히트>를 시작으로 <트윈스> <유치원에 간 사나이> 등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화장실 유머가 아닌, 가족애를 중심으로 한 가족 코미디 영화. 남성의 임신을 소재로 한 <쥬니어>에서는 실험으로 아이를 임신하게 된 산부인과 의사를 연기, <솔드 아웃>에서는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맡으며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다.

<솔드 아웃>

거버네이터, 불륜 스캔들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정계 입문. 오스트리아 국적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1983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 공화당 후보로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다. 당시 생긴 별명이 터미네이터(Terminator)와 주시사(Governor)를 합친 ‘거버네이터(Gorvernator)’. 2006년에도 재선에 성공해 총 7년 2개월 동안 주지사로 부임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공화당 출신이지만 당선 후 중립을 유지한 점, 환경 문제와 빈민 구제를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한 점 등에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폭력 게임 규제, 감세 정책으로 인한 경제 불황 등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임기 후반에 캘리포니아 경제가 눈에 띄게 악화되며 씁쓸하게 정치 생활을 마무리했다. 더군다나 주지사에서 은퇴한 2011년 자신의 과거 불륜 사실을 인정, 숨겨진 아들이 있다고 밝히며 명예가 크게 실추했다. 14년 전 자신의 집 가정부와 불륜을 저질렀으며 그 사이 낳은 아들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I'm Back

<익스펜더블 2>

주지사 활동 당시에도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단역, 특별 출연으로 스크린에서 종종 모습을 비췄다. 대표적으로 과거 라이벌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부탁으로 잠깐 등장했던 <익스펜더블>. 주지사 은퇴 후 배우로 복귀했을 때도 그 인연을 이어 <익스펜더블 2>에 출연했다. 특별 출연이었던 전 편과 달리 아예 주연으로 나와 여러 액션 스타들과 호흡을 맞췄다. 작품 속에서 브루스 윌리스에게 “I’ll be back”을 직접 말하기도.

연기 생활을 재개하며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 실베스터 스탤론과 다시 호흡을 맞춘 <이스케이프 플랜> 등으로 활약했지만 흥행에 실패하며 옛날 같은 티켓 파워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도 제작비 대비 부진한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으니, 아직 제2의 전성기는 이루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과거 대표작이었던 <코난> 시리즈 속편과 <트윈스>의 속편도 앞두고 있다. 이미 70세를 넘긴 그의 노익장 투혼이 확실하게 빛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라스트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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