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주요 배우들이 그대로 합류, 의리로 똘똘 뭉쳐 10년 만에 탄생한 <좀비랜드: 더블 탭>. 여러 B급 코미디 좀비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며 1편에 버금가는 호평을 기록 중이다. 많은 부분을 답습해 진부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으나 이를 뒤엎고 더 화려해진 액션, 짙어진 유머로 돌아왔다. 확실히 21세기 등장한 수많은 좀비영화들 중 명작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듯하다.
처음에는 마니악한 컬트영화로 시작했지만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필두로 점점 팬층을 넓혀간 좀비 장르는 21세기에 들어서며 경쟁력 있는 소재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좀비랜드>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회자될만한, 21세기 좀비 명작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 작품들 중 의의가 있는 네 작품을 돌아봤다.
뛰는 좀비의 충격 <28일 후...>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는 엄밀히 따지자면 좀비영화라고 보기 힘들다. 시체가 아니라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기 때문. 그러나 제대로 된 사고와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점, 비감염자를 습격해 감염시킨 다는 점 등의 유사점으로 좀비영화의 범주에 포함된 사례다. <28일 후...>가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뛰는 좀비’를 본격화했다는 점. 느릿느릿 걸으며 ‘수적 공포’를 선사했던 기존의 좀비들과 달리 영화 속 감염자들은 미친 듯이 달리며 공포를 극대화했다. 처음 접하는 광경에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이런 특성을 위해 대니 보일 감독은 장기라 할 수 있는 속도감 넘치는 촬영을 활용했다. 약 800만 달러(우리 돈 약 93억 원, 11월15일 환율 기준)을 들인 저예산 영화지만 좀비 장르의 스릴은 끌어올리고, 기존의 클리셰를 거부하는 참신한 연출로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속편인 <28주 후>도 제작됐다. <28일 후...>와 함께 달리는 좀비를 확립시킨 작품으로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데뷔작 <새벽의 저주>도 있다.
좀비영화는 원래 호러 장르야! <REC>
좀비영화는 원래 슬래셔, 고어 등과 함께 호러의 하위 장르로 시작했다. 그 목적을 가장 충실히 이행, 살 떨리는 공포를 자랑한 작품은 스페인 영화 <REC>인 듯하다. 공포를 중시한 <REC>가 추구한 것은 리얼리티. 이를 위해 <블레어 윗치>에서 본격화된 파운드 푸티지(‘발견된 영상’이라는 콘셉트로, 1인칭 캠코더 촬영을 통해 다큐멘터리 같은 현장감을 부여하는 것) 기법을 사용했다. 영화는 소방관들의 밀착 취재를 하는 기자가 그들과 함께 한 건물에 진입,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았다. 그런데 그 건물은 사실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된 건물. 이를 안 정부는 건물을 폐쇄, 그 속의 인물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날 것 같은 화면과 분위기를 내세운 <REC>는 주인공 안젤라(마누엘라 벨라스코)가 느끼는 패닉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이입시켜 극강의 공포를 자아냈다. 덕분에 자국에서 세 편의 속편을 배출, 할리우드에서 <쿼런틴>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됐다.
거대한 스케일의 정점 <월드워Z>
앞서 언급한 <새벽의 저주>를 시작으로, 주로 저예산으로 제작됐던 좀비 장르는 메이저 제작사의 눈에 띄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가 된다. 덕분에 독일에서 제작됐던 <레지던트 이블>은 2편을 기점으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로 변신했으며, 윌 스미스가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도 폐허가 된 광활한 도시를 높은 완성도로 구현했다. 이런 블록버스터 스케일의 정점을 찍은 작품은 2013년 제작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Z>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월드워Z>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든 좀비들과의 ‘세계 전쟁’이 콘셉트. 덕분에 여러 국가를 오가며 촬영이 진행됐으며 재난영화급 스펙터클을 자랑했다. 전쟁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대규모 폭발 신은 덤이다. 또한 달리는 것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밟고 거대한 성벽을 오르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확실히 ‘보는 맛’이 가장 뛰어냈던 좀비영화다.
B급 코미디와의 결합 <새벽의 황당한 저주>
<좀비랜드>가 있기 전에 이 영화가 있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작품(국내에는 리메이크작인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를 패러디한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니다)을 패러디한 <새벽의 황당한 저주>다. 좀비와 B급 코미디의 결합은 피터 잭슨 감독의 초기작 <데드 얼라이브> 등 20세기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유명작을 차용, 그러면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 영화는 처음이었다. <새벽의 저주>를 패러디했지만 이 영화가 패러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닌 '클리셰'. 생존영화에서 가장 먼저 죽을법한 캐릭터들만 모아놓았으며, 타 영화 속에선 전혀 힘을 쓰지 못했던 군인들이 좀비들을 쓸어버리는 등 클리셰를 역으로 이용해 웃음을 선사했다. 등장하는 좀비들은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불쌍할 정도. 동시에 고전 컬트영화의 핵심인 잔인하지만 우스꽝스럽게 연출한 고어 요소 등은 가져왔다.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사실 패러디 영화가 아니었으며 원작 영화 자체를 몰랐다”고 전했지만 사실 이 말도 그저 장난. 하나부터 열까지 웃음만을 노린 영화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