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는 프랑스 르망에서 열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1923년 시작된 내구 레이스로, 24시간 동안 한 차량을 여러 명의 레이서가 교체하며 경주함. 빠르고 내구성 좋은 차를 가려내는 레이스로 알려져 있음.-편집자)에 1965년 첫 도전해 이듬해인 1966년 매년 우승하던 페라리를 밀어낸 포드의 영광 뒤에 가려져 있던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의 실화에 기반한 영화다.
레이서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캐롤이 르망 24시간 레이스 중 칠흑 같은 어둠 속 트랙을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캐롤이 심장약을 삼키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등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자동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시키는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 판매량을 증진시킬 기막힌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만 자신을 찾아오고 나머지는 집에 가라는 초강수를 던지는데, 마케팅 중역이었던 리 이아코카(존 번탈)는 제임스 본드가 탈 것 같은 차,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스포츠카를 만드는 페라리를 인수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헨리 포드의 제안은 거절당하고, 민망해진 헨리 포드는 레이스카를 만들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페라리를 물리치기로 결심한다. 이때 고용되는 인물이 은퇴한 카레이서 캐롤 셸비이고, 그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이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는 영국 출신의 켄 마일스다. 두 남자는 포드의 GT40을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테스트를 하고, 외부로부터 테스트를 거치는 등 드라마를 함께하게 된다. 실화에 기반했기에 승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긴장을 쌓을 수 없는 영화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도전하는 캐롤과 켄의 열정과 장애물에 주목한다. <A.V.클럽>과 <시카고 트리뷴>이 언급한 것처럼 제목인 <포드 v 페라리>는 영화 속 주인공과 악당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는데, 실제로 캐롤과 켄의 프로젝트에서 그들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페라리가 아닌 포드 내부의 적이다. 특히 영국 출신이며 루저 같은 이미지의 켄에 대해 헨리 포드는 “포드스럽지 않다”라며 프로젝트를 시작한 첫해에 르망 출전에서 배제하는 등 걸림돌 역할을 톡톡히 한다.
15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포드 v 페라리>는 레이싱을 “차들이 빨리 달리는 경기”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오랜만에 영국식 억양의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가 좋은데, 눈에 띄게 체중을 늘리거나 줄이는 등 몸준비부터 철저하게 캐릭터에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보통 사람, 그래서 외압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하는 편을 택하는 언더도 그를 연기하는 것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2017년 <로건>으로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굳힌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이번에도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클래식한 느낌도 있어서 공식대로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만족감도 선사한다. 지난 11월 6일, 베벌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포드 v 페라리>의 배우 맷 데이먼과 크리스천 베일, 제임스 맨골드 감독을 만나 나눈 인터뷰를 정리해 전한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 인터뷰 - 스피드라는 속성과 교감하는 법을 고민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알게 됐나.
=우연히 각본을 읽었다. 샘플 정도로 짧은 내용이었는데,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누군가 이미 시작한 프로젝트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이미 다른 감독이 영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내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게 2011년이었다. <로건>을 만든 뒤 다시 한번 찾아봤는데 오픈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
-헨리 포드가 엄청난 부를 이루도록 두 언더도그가 도와준다는 설정이 재밌다.
=캐롤과 켄이 헨리 포드를 도와줬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헨리 포드는 엄청난 부자이기도 하지만 GT40을 만드는 건 헨리 포드가 아니라 그가 이끄는 포드라는 기업이다. 기업은 개인과 달리 함께 일하기 어렵고, 이 둘이 하는 일을 함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 마음을 주는 쪽은 헨리 포드가 아니라 캐롤과 켄이고, 이들이 경주에 나가기를 바란다. 영화는 이 둘이 헨리 포드를 돕는 이야기가 아니라, 경주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헨리 포드를 이용하는 이야기다. 엄청난 부자의 꿈이 캐롤과 켄에게 기회를 준 거다.
-실화와 관련된 인물을 만나보았나.
=영화를 만들기로 한 뒤에 켄 마일스의 아들 피터 마일스와 만났다. 그리고 각본을 쓴 작가들이 캐롤 셸비를 생전에 만났다(캐롤 셸비는 2012년 사망했다.-편집자). 영화 속 캐릭터 중에 찰리 아가푸가 있는데, 현재 60대이며 베벌리힐스의 벤틀리 딜러다. 아가푸가 1966년 르망에 있었고 영화를 위한 리서치에 큰 도움을 줬다. 비교적 남아 있는 기록이 많았고 참고할 만한 자료가 많은 이야기였다.
-맷 데이먼과 크리스천 베일 중 누가 먼저 캐스팅됐나.
=내 기억에는 크리스천에게 먼저 연락했는데, 두 사람에게 거의 동시에 제안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하루 차이일 것이다. 크리스천은 “맷이 하면 하겠다”고 답했고, 맷 역시 “크리스천이 하면 하겠다”고 해서 성사됐다.
-<3:10 투유마>(2007) 이후 크리스천 베일과는 두 번째 작업이다. 전에도 그의 연기에 대해 극찬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엔 어땠는지 궁금하다.
=크리스천의 퍼포먼스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즐겁고 흥미로우며 위험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스피드와 긴장, 그리고 레이서가 경험하는 절정의 적막감을 촬영으로 고스란히 전달해야 하는 부담은 없었나.
=정말 많은 테스트를 했다. 스피드라는 속성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움직이는 느낌을 표현할 때 어떻게 촬영해야 가장 빠르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레이싱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스포츠 장르다. 하지만 영화는 좀더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어내는 것 같다.
=액션영화는 부드러운 면을 보여주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친절하면 안될 것 같고, 그저 13살 정도가 즐기기에 적당한 일방적인 면을 강조한다. 나는 어른들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캐롤과 켄이 남성성과 동시에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 맷 데이먼·크리스천 베일 인터뷰 - 관객이 정말 마음을 주는 캐릭터는 켄이다
-배우들은 영화마다 새롭게 배우는 기술이 있지 않나. 액션영화면 총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배운 게 있나.
=크리스천 베일_그동안 배운 것을 잊어야 했다는 게 맞을 거다. 어떻게 싸우는지, 어떻게 운전하는지 등 이제까지 배운 것들을 잊는 것이 먼저였다.
=맷 데이먼_캐롤은 운전하는 장면이 초반에 한번이라 다행이었다. 이야기는 캐롤이 레이싱에서 은퇴한 뒤의 이야기니까.
크리스천 베일_오프닝 장면이 좋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앞에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캐롤이 차에 타고 있다. 내레이션이 들려오고. 그 장면이 좋더라.
-그 장면을 볼 때 좀 어지럽더라. 의도한 건지 궁금하다.
맷 데이먼_아마 캐롤의 심장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 장면은 캐롤의 시점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방향감각을 잡기 어렵고 혼미한 상태가 반영됐으리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시속 230마일(약 370km)을 몸으로 느낄 기회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맷 데이먼_엔진 회전수 7500RPM에 시속 230마일이다. RPM은 기어 1단을 놓고도 7500까지 올릴 수 있지만 시속 230마일은 그렇지 않다.
크리스천 베일_시속 120마일(약 193 km) 정도까지는 체감해봤는데, 그 이상은 보험이 허락하지 않았다.
-캐롤과 켄이 일대일로 붙는 장면도 좋지만, 각자가 조연들과 나오는 장면들도 참 좋다.
맷 데이먼_내 생각도 같다. 크리스천과 함께하는 영화니 그 부분에 대해 기대가 큰 건 당연했는데, 실제로 촬영하고 보니 존 번탈, 조시 루카스, 레이 매키넌처럼 좋은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크리스천도 카트리나 밸프, 노아 주프와의 장면들이 있었다. 캐스트가 좋았다.
크리스천 베일_그런 장면들이 영화의 숨결과 박동이 된다고 생각한다. 켄이 가족을 가장 우선에 두기 때문에 영화에서 스피디한 레이스 장면과 균형을 이루는 거다.
-그런 장면들뿐만 아니라 켄이 영국 사람이기 때문에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설정, 개인 컵을 들고 다니는 디테일한 점도 재밌다.
크리스천 베일_켄은 별명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티백’(Tea Bag)이었다. 그는 늘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한다.
맷 데이먼_그런 디테일이 정말 좋았다. 영화는 캐롤과 켄의 우정을 보여주지만 관객이 정말 마음을 주는 캐릭터는 켄이다. 관객은 켄과 함께 집에 돌아가고 그의 가족을 만나지만 캐롤의 개인사는 절제됐다. 실제로 캐롤은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영화는 그런 가지는 과감하게 쳐냈다. 그 점도 좋았다.
-영화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나.
맷 데이먼_영화 마지막에 켄이 속도를 줄이는 장면이 좋다. 그 장면에는 켄 혼자뿐이고 대사도 없다. 1분인가? 2분인가? 꽤 긴 장면인데 영화의 많은 부분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해준다.
크리스천 베일_그 장면이 그렇게 다 들어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촬영 뒤에 어떻게 완성될지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는데, 제임스는 그런 점에서 놀라운 결과물을 보여주는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