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영화사 대표, 영화제 집행위원장, 성소수자인권운동가 등 김조광수 대표(청년필름)를 수식하는 직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모든 걸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아마도 지치지 않는 활동가가 아닐까 싶다. 김조광수는 학생운동부터 소수자인권운동까지 36년간 꾸준히 목소리를 내며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가 얼마 전 정의당에 입당해 차별금지법추진위원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영화에 반하고 영화를 꿈꿨던 14살 소년은 결국에 영화인이 되었다. 성정체성을 감추고 혼란을 겪던 청년은 결국 커밍아웃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이후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온 그는 이제 현실 정치의 영역에 새롭게 발을 디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제9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를 만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물었다.
-지난 9월 25일, 정의당 차별금지법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됐다. 주변에서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걷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던데.
=이전에도 녹색당에서 소수자위원회를 맡아서 일했었는데 새삼스럽다. 아무래도 정의당이 현실 정치에서 좀더 영향력이 있어서 이제야 정치활동을 한다고들 보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이미 정치의 일부다. 물론 이번에 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차별금지법추진위원회에서 좀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는 건 맞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추진위원회를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배우자인 김승환씨가 정의당원이었는데 이정미 정의당 전 대표와도 친분이 있었다. 내가 녹색당 활동을 정리하고 쉬고 있을 무렵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한 적 있다.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탈당했다는 걸 알고 이 전 대표가 눈을 반짝이더라. (웃음) 얼마 뒤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전화가 왔는데 처음엔 뭔가 일을 시킬 것 같아 전화를 피했다. 그런데 하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집행위원이라 결국 만나서 차별금지법추진위원장 제안을 받았다. 만약 소수자 인권 관련이었다면 거절했을 거다. 약간의 피로감도 있었고 녹색당에서 하던 일을 다른 당에서 한다는 게 도의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 하지만 차별금지법은 내가 목표로 하는 일 중 하나였고 필요한 일이기에 받아들였다.
-학생운동, 문화운동, 동성애인권운동까지 36년간 운동가로 활동해왔다. 새삼 지금 정의당에 입당해 정치 영역에서 활동을 결심한 이유가 있나.
=나는 작은 목표를 성취하면서 조금씩 나아간 사람이다. 큰 맥락에서 보면 방향성이 분명하다.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성소수자의 인권이 인정받는 세상을 보고 싶다. 내게 주어진 여러 역할 중 성소수자라는 게 가장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화하고 싶은 건 넓은 의미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의 법제화다. 현실 정치에서 이걸 실현하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40살 넘어 뒤늦게 커밍아웃을 한 뒤 개인적으론 행복해졌다. 그때 제도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녹색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당의 정치활동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제도를 바꾸는 활동이 필요하다. 48살 때 서울 청계천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리고, 서대문구청에 혼인신고서도 제출하면서 존재를 드러내는 걸 넘어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의 중요함을 자각했다. 삶이 바뀌려면 결국 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정당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건 사회운동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라는 걸 느꼈다. 이번에 정의당에 입당한 건 바꿀 수 있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절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17대부터 19대 국회까지 오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었다. 통과가 안될지언정 지속적인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발의조차 안된 건 20대 국회가 처음이다.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한 한 크게 후퇴한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차별에 관한 공론화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게 사실이다.
=심상정 대표도 그런 점을 지적하며 나를 설득했다. 10명을 확보해야 법안 발의가 가능한데 설득을 위해 다른 의원들을 만날 때마다 “시급한 사안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데 시간을 허비하냐?”는 말을 들었다는 거다.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그때 차별의 당사자가 이야기를 해도 이렇게 거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의당이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첫 번째 법안으로 발의할 테니 전면에 나서서 힘을 보태달라고 말이다. 사회적인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것부터 한분 한분 설득하는 것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볼 생각이다.
-정의당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대략 3개월이 지났다. 피부로 느낀 변화가 있나.
=차별금지법에 대한 구상이 당내에서 얼마나 공감을 얻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처음엔 당원들에게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지 걱정했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지지를 얻고 있고 사안에 대한 이해도 깊었다. 적어도 당직자나 출마를 고민하는 분들 사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내년 총선까지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볼 생각이다. 크게는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 중인데, 우선 유튜브를 통해 대중적으로 소통하고 전국을 돌면서 토크쇼도 열 계획이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재미있게 작업 중이다.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인 만큼 유튜브는 좋은 통로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의당 유튜브를 열심히 챙겨 봤는데, 안타깝게도 재미가 없다. 정의당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중년의 운동권 정당의 이미지랄까. 그걸 벗어나지 못한 내용과 형식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건대 영화인들 중에서도 꽤 발랄한 캐릭터니까 이 부분을 살려보려 한다. 정의당이 미처 포괄하지 못한, 이를테면 관심은 있으나 지지까지는 끌어내지 못한 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려고 한다. 박창진 정의당 국민의노동조합특별위원회 위원장과 둘이서 진행할 예정이다. 박창진 위원장이 스튜어드 출신이니 그 부분도 살려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향으로 기획 중이다. 블루마블 게임처럼 사람들 사이를 여행하는 콘텐츠라고 보면 된다. 진정성이 담긴 사람들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니 내용은 충분하다. 그걸 끌어내는 방식이 문제인데 낯설게 느끼는 분들도 아우를 수 있는 구성이 되도록 노력 중이다.
-정치는 개인의 희생이 동반되는 일이기도 하다. 총선 출마도 생각 중인가.
=아직은 고민 중이다. 당분간은 정의당을 알리는 일과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작업에 매진할 생각이다. 밖에서 걱정했던 것보다 이 과정이 꽤 재미있다. (웃음) 12월, 내년 1월까지 찬찬히 겪어본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정말 필요한 일이 있다면 생각해보겠다. 주변에선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지지하는 분들과 절대 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분이 반반이다. 나와 개인적으로 가까울수록 말리는 것 같다. (웃음) 나도 충분히 그 무게를 느끼고 있다. 나는 평생 영화를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인 만큼 정치활동을 하는 것과 직업 정치인이 되는 건 완전 다른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뭔가를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안 하면 안 했지 기왕 할 거라면 준비된 정치인이 되고 싶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 이외에도 여러 사안에 대한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는 걸 안다. 지금은 차근차근 살펴보고 공부 중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경험치가 쌓이면 그때 행동할 것이다.
-원래 유튜브 방송의 첫 번째 꼭지로 홍콩 민주화운동가 조슈아 웡과의 인터뷰를 준비했었다고 들었다.
=여러 사정으로 아쉽게 유튜브 방송으로 진행하진 못하고 박창진 위원장이 홍콩으로 가서 따로 인터뷰만 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은 마치 우리의 80년대를 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나도 학생운동을 했던지라 공감되는 지점이나 깊이가 남다르다. 정의당이 홍콩 시위에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던지길 바랐다. 이런 부분이 더불어민주당과 다르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그리고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꽤 많았지만 이번에는 활용하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11월 19일 심상정 대표가 “시위대와 비무장 시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인권을 유린하는 무력진압이 이뤄진다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란 공식 입장을 냈다. 이걸 시작으로 홍콩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더 활발히 논의되길 바란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집행위원장을 맡아 꾸려온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가 올해로 9회를 맞이했다. 게다가 올해는 규모를 한층 늘려 국제영화제로 변모했다.
=2011년 시작할 땐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다. (웃음) 첫해에 23편의 영화, 1개관에서 시작했는데 올해는 100편 넘는 영화를 상영하고 상영관도 3개로 늘었다. 이에 맞춰서 프로그램 구성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무엇보다 경쟁부문을 도입한 게 가장 큰 변화다. 숫자가 많진 않지만 해외 게스트도 초청해서 관객과의 접점을 넓혔다. 첫 번째 경쟁 심사위원이 중요했는데, 토니 레인즈 평론가에게 부탁했다. 한국의 퀴어영화를 알리는 데 앞장선 분이고 지난 20, 30년간 퀴어영화의 흐름을 이 분만큼 잘 꿰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다. 아시아 퀴어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영화제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그 길로 한 걸음씩 성실히 다가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찾아준 관객의 만족도도 대체로 높다. 나중에 토니 레인즈가 봉준호 감독에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 대한 칭찬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이렇게 돌고 돌아 내 귀에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니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 말처럼 국내 크고 작은 영화제 중에서도 이렇게 성실하게 자기 길을 가고 성장해온 영화제도 드물다. 집행위원장의 노고가 느껴진다.
=단순히 규모로 따진다면 1회 때 예산이 2천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0배 정도 커졌다. 처음엔 기업 후원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이 상당히 지원해주고 있고 서울시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도 이끌어냈다. 늘어난 규모보다 뿌듯한 건 프로그램 내용의 알찬 구성이다.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한국 퀴어영화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섹션을 준비했다. 한국 퀴어영화사 자료집을 발간해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도 뿌듯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안 하면 안 했지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다. 되짚어보니 그 고집으로 9년을 버텨왔다. 다행히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온 것 같아 감사하다. 내년이 10년 되는 해인데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계획이 있지만 이제 막 끝낸 터라 스탭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좀더 고민해보고 정리되는 대로 다시 1년 농사를 준비할 생각이다.
-청년필름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무려 20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등 제작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연출을 맡은 건 2014년 <마이 페어 웨딩>이 마지막이었는데.
=<완월>(가제)이란 정치 멜로물을 준비 중이다. 영조의 젊은 시절을 배경으로 영조와 여류 소설가의 애틋한 사연을 다룬다. 현재 캐스팅이 진행 중인데 사극이니만큼 예산이 꽤 필요한 프로젝트다. 만약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쪽에 매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제작자로서 박철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출장수사>란 작품을 진행 중인데 배성우, 정가람, 이솜 배우가 나오는 코믹 수사극이다. 얼마 전 현장을 다녀왔는데 새삼 나도 빨리 카메라를 잡고 싶어졌다. (웃음) 내년은 여러 가지로 많은 일들이 생길 것 같다. 미리 정해두지 않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할 생각이다.
-영화 제작에, 인권운동에, 정치활동까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다. 하나같이 쉬운 일이 없는데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밝고 즐거워 보인다.
=행복하다고 마인트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진짜 즐겁다. 선언적 의미라기보다는 솔직한 고백이랄까. 그게 아마 내가 이 일들을 동시에, 그리고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성과가 당장에 나는 싸움이 아니다. 승리하는 싸움을 하려면 오래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그 일을 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목적을 정해두고 성과를 내려고하면 빨리 지친다. 나는 항상 작은 성과에 만족하는 편이다. 당장의 작은 성과를 내고, 그다음의 작은 성과를 위해 매진한다. 그 작업을 무한반복하는거다. 매번 두렵지만 그걸 매번 이겨낼 정도의 용기는 있다. 그렇게 밀알 같은 오늘이 쌓여서 내일의 나를 향해 나아간다. 조금씩,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