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우리 시대에 더이상 존재하기 힘든 예술·예술가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2019-12-04
글 : 김소미

“나쁜 엄마, 나쁜 친구여도 좋은 배우인 편이 나아.” 언제나 직업적 정체성이 최우선이었던 엄마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와 자란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는 세월이 흐른 후 엄마를 질책해보지만 파비안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심지어 파비안느가 출간을 앞두고 있는 회고록에선 그녀가 다정한 엄마로 묘사돼 있어 울화가 치민다. 대배우 파비안느와 이기적인 엄마에게 받은 상처로부터 회복되지 못해 여전히 고투하는 뤼미르. 오랜만에 재회한 두 여자의 동거는 해소되지 않은 과거의 잔해들이 삶에 불쑥 비수로 꽂히는 광경을 비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주의를 기울이는 가족의 화두는 프랑스로, 그리고 연예계로 옮겨간 뒤에도 내밀하고 유효하다. 영화의 존재를 빌려 진실의 정의를 질문하고, 예술가의 재능과 생활인의 미덕이 이율배반을 이루는 흥미로운 지점을 탐구한다. 감독 최초의 외국어영화인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그래서 어쩌면 현재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과 가장 맞닿은 주제에 약간의 거리를 두기 위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영화는 시적인 면이 없다고 일갈하고, 연기를 위해 자기 삶을 제한할 정도로 엄격한 파비안느는 우리 시대에 더이상 존재하기 힘든 예술·예술가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전보다 밝고 위트 있는 연출 속에서 끊임없이 기억과 진실,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질문하는 영화는 어느새 모녀를 작은 화해로 이끈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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