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임필성 감독의 '디렉터스픽' 메가폰코리아 오디션 현장을 가다
2019-12-12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연기 힘빼기의 기술
실제를 방불케 하는 모의 오디션 ‘디렉터스 PICK’이 열리는 현장.

“모든 반찬과 잘 어울리는 동치미 같은 배우 000입니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임필성 감독을 향해 오디션 참가자가 소리 높여 자기소개를 한다. 준비해온 자유연기를 펼쳐놓을 시간. 그는 길 위에서 기거하는 노숙인으로 분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노숙인을 보며 그의 말과 행동을 직접 구상했다고 하는데, 대사가 수준급이다. 여행작가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에게 연기는 지금 자신이 가장 열정을 쏟고 이루어야 할 목표다. “오늘 오디션 끝나자마자 단역 연기로 현장에 간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보고 발음을 연습하는 것과 단역 출연은 그에게 일상이다. 임필성 감독은 “기본기는 아직 부족하지만, 본인만의 톤과 개성이 충분히 있다”며 배우의 매력을 돋보이게 할 방법을 분석한다. 오늘 임필성 감독의 ‘심사’ 대상은 연기에 대한 지원자의 자질뿐만 아니라 프로필 사진의 적합성 여부, 오디션에서 어필할 방법 등 다양한 지점이다. 바텐더, 디자이너, 군 전역 후 지원한 참가자 등 연기 이전 그들이 하던 일은 다종다양하다. 하지만 이들 모두에겐 연기가 자신들의 최종 목표이며 그런 만큼 오늘, 이 시간에 열정을 다한다.

신인배우들을 위한 공정하고 투명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틀을 다지려는 김철원 메가폰코리아 대표.

지난 11월 29일. 강남구 역삼동 메가폰코리아의 스튜디오. 오디션 조명과 장비가 잘 갖춰진 이곳은 연기를 꿈꾸는 신인을 대상으로 모의 진행하는 ‘디렉터스 PICK’ 오디션 현장이다. ‘디렉터스 PICK’은 제작자와 배우, 즉 아티스트의 연결고리가 되는 플랫폼 메가폰코리아의 중점 프로그램 중 하나로 앞서 이종석(<협상>), 윤재호(<뷰티풀 데이즈>), 문현성(<임금님의 사건수첩>), 이광국(<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돈구(<가시꽃>) 감독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임필성 감독이 13번째다. 모의 오디션을 통해 최종 선발된 5명의 배우는 각 감독이 선정한 배우로 메가폰코리아에 ‘임필성 감독의 PICK’으로 등록되고, 캐스팅을 원하는 제작자들, 감독에게 선발의 가이드가 된다.

“준비한 다른 연기를 보여드려도 될까요?” 지정된 시간 안에 더 많은 매력을 보여주기 위한 참가자들의 열의로 뜨거운 현장.

특정 작품의 배역을 선발하기 위한 실제 오디션 현장에서는 당락 여부만 제공될 뿐 탈락의 이유나 보완해야 할 지점들을 전달받는 건 불가능하다. 어떤 지점을 보완해야 할지 모른 채, 피드백 없는 오디션 현장을 무수하게 거치며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상당수 신인배우, 배우 지망생들이 캐스팅의 문턱에서 접하는 현실이다. ‘디렉터스 PICK’은 이들 신인배우, 지망생들이 감독들과 직접 만나는 오디션 자리를 마련해, 현장실습뿐만 아니라 현직 감독의 조언까지 들을 만남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실전에서 성과를 얻게 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사실 ‘모의’라는 말이 붙었을 뿐 이곳 현장은 실전을 방불케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각각 할당된 20분의 시간을 부여받고 차례로 대기 중인 면접 대상자는 50여명. 사전 1천여명의 서류 접수자 중 선발된 인원이다. 일반적으로 작은 역할의 배우가 감독을 직접 만나 캐스팅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 기회인 만큼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었는데 취소하고 왔다”며 자신을 어필하는 참가자도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가자 모두 잔뜩 긴장한 상태. 임필성 감독은 직언하는 가운데에도 참가자들이 긴장을 풀 수 있게 유도한다. 참가자 중 한명은 급기야 눈물을 터뜨리며, “그동안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해소되었다”는 감사의 말을 전하고 문을 나선다.

참가자들에게 ‘디렉터스 PICK’은 오디션 현장이자 배우로서의 고민과 질문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오디션 과정에서 연기의 방법론, 기술 전달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예를들어 자유연기에서 참가자들이 자주 반복하는 과장된 연기도 이번 오디션 현장의 개선사항이다. 임필성 감독이 힘빼기 방법을 제시한다. “지금 준비해온 대사를, 거의 연기를 안 한다는 정도까지 힘을 내려서 표현해보라”는 감독의 주문, “그렇게 한 대사를 상대방과의 호흡을 빼고 지금보다 더 빠른 호흡으로 해보라”는 추가 주문, 이렇게 힘빼기의 몇 단계를 거치자, 다소 과잉이었던 참가자의 연기가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대사 톤으로 점차 바뀌어간다.

이날 심사를 마친 임필성 감독은 “연기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놀랍게 잘하는 배우, 매력 있는 배우들을 발견했다. 심사의 기준도 확실히 적용하되, 연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이드도 함께해나갔다”고 말한다. 더불어 “감독 역시 늘 좋은 배우를 만나는 시간은 기대되고 필요한 일이다”라고 연출자의 관점에서 ‘디렉터스 PICK’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전한다. 임필성 감독은 오디션장에서 연기를 다소 못한다고 느껴져도 그게 캐스팅 당락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따라 하려고만 하는 참가자들은 적나라하게 지적해줬다. 스킬이 부족하더라도 본인이 아는 걸 표현할 때 설득력이 있다. 그런 배우들이 결국 발전의 폭이 넓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 매력을 알고 표현하는 것. ‘오리지널한 배우’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곳. 한국 영화배우의 또 하나의 미래가 되어줄, 소중한 자리에 함께했다.

현장 오디션뿐만 아니라 메가폰코리아 홈페이지에 등록되어있는 배우들의 프로필까지 꼼꼼히 챙겨 가이드해주는 임필성 감독.

●신인배우를 위해 더 나은 환경을!

‘디렉터스 PICK’이 이루어지는 메가폰코리아는 배우들의 오디션을 위한 스튜디오, 프로필 사진, 영상 촬영 스튜디오, 미팅룸, 카페 등 제반시설을 갖춘 곳으로 규모만 총 200평에 달한다. 이곳을 센터로 하여, 신인배우가 오로지 ‘연기’로만 승부할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목적이다. 금융계에 몸담다가 <스카우트> <내사랑> <추격자> 등의 투자 업무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게 된 김철원 대표는 “영화계에 와서 보니, 을이 아니라 ‘울트라을’인 신인배우, 배우 지망생의 어려운 생활이 보이더라”며 메가폰코리아를 시작한 이유를 말한다. “오디션 볼 때 지원자들의 참가지원서가 엄청나게 쌓이지만, 캐스팅이 되고 나면 모두 폐기처분된다. 지원하는 배우들도, 선별하는 제작진도 똑같은 수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배우 캐스팅의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화! 김철원 대표는 필요한 캐릭터와 배우를 연결하는 미국적인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 3년간 달려왔다. 곧 프로필 등록부터, 캐스팅 플랫폼으로 역할하는 것은 물론, 당락 여부, 그 이유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메가폰코리아 홈페이지(megaphonekorea.com)에 등록된 프로필을 각 키워드로 분류, 선별할 수 있는 AI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로 배우들이 진출할 길도 열린다. 신인배우, 그리고 배우 지망생이라면, 이제 프로필을 들고 발품 팔지 말고 먼저 메가폰코리아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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