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 ‘FLY 2019’ 열린 브루나이에 가다
2020-03-12
글 : 임수연
영화라는 꿈으로 초연결
FLY 2019 11일째에 접어든, 11월 23일에 진행된 졸업생 라운드테이블 현장. 2012년부터 FLY를 거친 이들이 모여 근황을 나눈 후 젊은 영화인으로서 산업에 대해 가진 생각을 공유했다. 5개국 12명의 졸업생은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아트하우스영화가 예산과 타깃 관객, 영화 만들기의 목표에 있어 어떻게 다른지, 아시아 각국의 영화산업이 현재 어떤 상황에 부닺혀 있는지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줬다.

최근 송중기•장동건 주연의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일부 장면을 브루나이에서 촬영했다. 드라마 관계자는 “극중 배경이 상고원시시대이기 때문에 브루나이 특유의 대자연 풍광이 촬영 장소로 적합했다”고 전했다.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배주형 부산영상위원회 국제사업팀장은 영화 촬영지로서의 브루나이를 “브루나이 하면 떠오르는 부유한 이미지에 걸맞은 깔끔하고 좋은 건물도 많지만 수상가옥도 있는 나라다. 다양한 로케이션이 가능한 나라”라고 소개했다. <아스달 연대기> 같은 판타지 드라마가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그림을 얻기 위해 브루나이 현지 로케이션을 결정한 이유다.

FLY 2019에 참여한 학생들은 브루나이 현지에서 촬영, 편집, 사운드믹싱 등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위). 올해 브루나이를 찾은 FLY 출신 졸업생들은 3명씩 네 그룹으로 나뉘어 단편영화 아이템을 기획·개발했다. 심사를 거쳐 선정된 두편의 작품은 FLY 2020 참가자들이 제작할 단편영화로 채택될 수 있다.
“워크숍에 적합한, 보다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진행이 좀더 수월할 것 같다”(전지희 감독)는 내부 의견은 졸업생 프로그램을 통해 보완될 예정이다(위).

영화산업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잠재성을 주목할 만한 브루나이에서 흥미로운 영화제작 워크숍이 열렸다. 영화인을 꿈꾸는 아시아 11개국 22명의 교육생들이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에 모였다. 11월 13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영화 제작 워크숍 한-아세안 차세대 영화인재 육성사업(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FLY 2019, 이하 FLY 2019)은 직접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부산영상위원회의 2개년 사업 ‘2018-2019 한-아세안 영화공동체 프로그램’의 마지막 행사이기도 하다. 아세안 10개국 중 하나로 결정되는 개최지는 매해 바뀐다. 필리핀, 타이, 미얀마,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이어 8회째를 맞는 올해 개최 국가는 브루나이로 선정됐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모집 공고를 통해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총 11개국에서 나라별 2명씩 총 22명의 참가자를 선발한다. 그들이 제출한 단편 시나리오 중 강사들이 영화화할 만한 두 작품을 뽑은 후, 11명씩 두조로 나뉜 학생들이 자신의 그룹에 할당된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9월 9일부터 11월 8일까지 9주 동안 진행된 온라인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대체로 시나리오 디벨롭을 위한 것이다. 소품•로케이션•캐스팅 등의 사전작업은 현지 프로젝트 매니저들이 후보를 추린 후 교육생들이 최종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브루나이에 모여 영화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을 직접 경험한다. 촬영 강사로 참여한 이두만 촬영감독은 “다른 프로그램은 2주간 교육을 하지 단편을 찍지는 못한다. 2주 만에 촬영•후반작업을 마치고 스크리닝까지 한다는 건 굉장히 텐션이 강한 거다. 결과물이 있다는 게 학생들에게 큰 경험이 된다. 배움에 목마른 이들이 열정적으로 임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강사들의 서포트도 큰 몫을 한다. 올해까지 4회나 FLY 학생들의 음악 작업을 도운 김준석 음악감독은 “강사들이 너무 나서면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최대한 학생들이 직접 작업하게 한다. 다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교육생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생기는 어색한 연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음악 작업을 돕는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마스터클래스의 주인공은 예능 프로그램 <히든싱어> 시리즈를 연출한 JTBC 제작3국(예능국) 조승욱 국장이었다. 드라마와 예능, 영화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지는 전세계적인 경향을 읽을 수 있는 초청자였다.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만큼 학생 중에는 완벽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하며 질문을 던지는 이도 있었다. 조승욱 국장은 다소 지루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히든싱어>의 ‘진짜 가수 찾기’ 게임에 시청자가 집중할 수 있게끔 유도한 편집 방식이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들려주었고, 이는 예비 영화인들에게도 귀중한 조언이 됐다.
브루나이를 대표하는 명소, 엠파이어 호텔 내 엠파이어 시네마에서 졸업 시사 및 졸업식이 열렸다. 2주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졸업식에서 '촬영상'에 해당하는 아퓨처상을 받은 말레이시아의 이자크 유자이니 빈 이즈마일은 기자와 따로 만난 자리에서 “2주 동안 새로 만난 친구들과 단편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다. 영화 만들기에 있어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한 소중한 기회였다”라며 FLY측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장학생으로 선발된 베트남의 팸 꿕 쫑은 “감독 역할을 한 학생에게 상을 줄 줄 알았는데 조감독인 나에게 줘서 놀랐다. 영화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는 매체라는 것을 배웠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후 장소를 옮겨 진행된 환송회 자리에서는 많은 학생이 눈물을 흘리며 “각자 찍은 영화로 꼭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만나자”는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미래 아시아 영화인들의 관계 맺기

<씨네21>은 올해 프로그램 중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FLY 2019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4박5일 일정을 함께했다. 현장에서 목격한 참가자들은 수년간 알아온 사이처럼 단단한 신뢰를 쌓고 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는데 학생들간 차이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너무 잘 논다. (웃음)”(FLY 2019 연출 강사를 맡은 전지희 감독) “아는 영화도 비슷하고 좋아하는 노래도 공유한다. 정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이두만 촬영감독) FLY 2019는 교육뿐만 아니라 타국의 영화 친구를 만드는 면에서도 밀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단기간에 굵은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참가자들이 크게 생각한다”는 배주형 국제사업팀장의 말처럼, 이는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의지에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앞으로 영화계 커리어를 쌓을 때 중요한 자산이 된다. 김준석 음악감독은 “다른 나라에서 영화를 찍을 때 FLY에서 사귄 친구의 도움을 받는 졸업생이 많다”고 전했다. 졸업생 수가 늘어나면서 지난해부터 FLY측이 졸업생 홈커밍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는 졸업생 12명이 브루나이를 찾았고, 일부 졸업생은 국제공동제작 옴니버스영화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하기도 했다. FLY 2016 졸업생인 말레이시아의 푸트리 푸르나마 빈티 수구아는 “졸업생들끼리 비즈니스적으로도 사적으로도 꾸준히 교류한다. 지난해에는 베트남에서 다 같이 모여 놀기도 했다. 졸업생들끼리 공동 제작한 영화로 영화제도 함께 간다”고 졸업생 근황을 전했다. 아시아 영화인들의 조기 네트워크 형성의 중요성은 FLY 2019 준비 과정 비하인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브루나이는 나라 전체에서 영화 일을 하는 인력이 50명이 채 되지 않을 만큼 영화산업이 발전한 국가는 아니다. 필름커미션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브루나이의 첫 장편영화는 1968년에 나왔고, 그다음 작품은 2013년 개봉한 코미디영화 <리나>다. 지금까지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어로 제작된 장편영화는 12편에 불과하다.-편집자). <리나>를 제작한 ‘리갈 블루 프로덕션’의 누라인 압둘라 대표는 2017년 부산아시아영화학교 출신으로 부산영상위원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FLY 2019를 공동 주최할 현지 기관을 찾고 촬영 장비나 스튜디오를 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더불어 브루나이의 로컬 크루들은 FLY 2019에 참여하면서 “그들 역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배주형 국제사업팀장)를 얻기도 했다.

물론 종교도 언어도 문화도 다른 팀원들이 한데 모이면서 문화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만들기에 있어 이는 단점이라기보다 장점에 가깝다. 올해 FLY 2019에 참여한 한국인 김수로 교육생은 “한국 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학교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FLY 2019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배우의 감정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매우 존중했다”며 이번에 새로 배운 바를 전했다. 생소한 브루나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실전에서의 유연함을 기르는 데 기여했다. 이두만 촬영감독은 “브루나이는 일조량이나 기온이나 촬영 조건이 좋은 편이지만 모슬렘 국가다 보니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옷차림을 조심해야 하고 중간중간 기도시간에는 촬영을 멈춰야 한다”라며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의 특성을 설명했다. 학생들이 다양한 파트를 경험해보며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것도 FLY 2019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김수로 교육생은 “사실 1지망으로 연출을 썼다. 사운드를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파트를 양보했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예전에는 사운드는 후반작업 때 열심히 하면 되는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얼마나 중요한 파트인지 알게 됐다. 영화 만들기에 작은 역할이라는 건 없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두만 촬영감독은 “아직 진로를 찾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연출을 하다가 촬영으로 방향을 튼 친구도 있었고, 감독보다는 이론 공부가 적성에 맞다고 깨달은 학생도 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걸 찾아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내년과 내후년, FLY는 베트남과 라오스에서 또 다른 학생들의 연결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10년간 아시아 국경을 넘나들며 촘촘하게 이어진 관계성이 세계 영화제를 통해, 다국의 극장을 통해 만개할 순간이 기다려진다.

FLY 2019 현장에서 만난 세 청년 – 머리로 배운 영화 실전으로 익혔다

다니, 푸트리, 켐(왼쪽부터).

FLY 2019 졸업식이 열리기 하루 전, 단편영화 시사를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학생들을 만났다. 올해 참가자인 브루나이 출신 모하마드 드줄 이스칸더 빈 샴솔(이하 다니), 라오스 출신 켐 찬타셩(이하 켐)은 스타 라지 브루나이 호텔에서 2주 가까이 동고동락하며 이미 끈끈한 가족이 돼 있었다. 3년 전 FLY와 인연을 맺었던 말레이시아의 푸트리 푸르나마 빈티수구아(이하 푸트리)는 올해 졸업생 홈커밍 프로그램 참석차 브루나이를 찾았다. 아시아영화의 젊은 피가 될, 열정 넘치는 세 청년과의 대화를 옮긴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

=켐_라오스에서 왔다. 2013년부터 독학으로 영화를 배우고 만들고 있다.

=다니_브루나이에서 단편영화, 상업 비디오, 결혼식 사진 및 비디오 등을 찍었다. 지금은 주로 촬영과 편집을 한다.

=푸트리_FLY 2016 덕분에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에 입학할 기회를 얻은 졸업생이다. FLY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졸업생과 협업한 작품으로 이란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한 적 있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개인 제작사를 차려 작업하고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 상업영화 및 다른 비디오 작업물을 계속 만든다.

-FLY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다니_지난해 FLY 졸업생인 아민이라는 친구가 이 프로그램을 추천해줬다. FLY에서 2주 동안 배우는 게 그동안 브루나이에서 배운 걸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을 거라고 했다.

켐_2012년부터 FLY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당시엔 영어 실력도 부족하고 커리어가 없어서 지원하지 못했다. 대신 라오스에서 워크숍이나 온라인 수업을 통해 영화 공부를 했다. FLY 2019 모집 공고를 봤을 때 이제는 도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했다.

푸트리_말레이시아의 영화 만들기 워크숍에서 14명 중 2명에 선정돼 FLY 참여 기회를 얻었다.

-FLY 2016 졸업생인 푸트리는 네트워크를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고 들었다.

푸트리_FLY에 오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다. 졸업생 프로그램 덕분에 같은 기수뿐만 아니라 좀 더 확장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올해 초 단편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FLY에서 만난 한국인 강사들에게 연락했다. 한국에서 3주 동안 한국 최고의 편집자들과 후반작업을 하는 행운을 누렸다. 누군가에게 연락할 때 자신감 있게 시도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올해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무엇을 배웠나.

다니_3명의 촬영감독과 3명의 연출감독이 신을 나누어 찍다보면 커뮤니케이션이 복잡해진다. 각자 생각하는 그림이 다를 때 이를 조정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팀이 소통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후반작업하면서 편집과 색보정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됐다.

켐_제작자 입장에서는 좋았더라도 관객이 봤을 때 어떠한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혼자 영화공부를 하며 기술적인 부분은 익혔지만 실전이 어떤지는 잘 몰랐다. 머리로는 가능할 것 같은데 현장에 나가보면 불가능한 촬영 방식들이 있는데, 멘토들이 이런 차이를 잘 설명해줬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은.

켐_언젠가 장편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여러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FLY 같은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싶다. 라오스에는 마땅한 필름 스쿨이 없어서 영화를 공부하기 너무 어려웠다. 내가 도움을 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싶다.

다니_다큐멘터리영화를 찍으러 필리핀에 갈 예정이다. 그리고 동국대학교 국제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원해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해외에서 제공하는 영화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찾아보고 있다.

푸트리_장편 다큐멘터리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FLY 졸업생들과 옴니버스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다. FLY는 아시아 11개국 학생이 모이는 프로그램이니 국가별로 단편 11편을 만들면 근사할 것 같다.

사진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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