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포드 V 페라리> 제임스 맨골드 감독, 이 작품도 만들었다고?
2019-12-15
글 : 심미성 (온라인뉴스2팀 기자)

<겨울왕국2>의 꺾이지 않는 기세와 <쥬만지: 넥스트 레벨>의 진입에도 불구하고, <포드 V 페라리>는 건재하게 버티는 중이다. 제목만으로 두 저명한 자동차 회사의 레이싱 경쟁을 떠올리지만 뚜껑을 열면 그게 다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포드 V 페라리>는 페라리를 넘어서기 위한 포드사의 도전에 합류한 이들 캐롤 셸비(맷 데이먼)와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의 내밀한 열정에 더욱 관심 쏟는다. "152분의 긴 러닝타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질 수가 있느냐"고 말하는 숱한 관객평이 말해주고 있다. <로건>의 감독으로도 잘 알려진 제임스 맨골드의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훑어봤다.

처음 만나는 자유, 1999

감독의 작가성을 보여준 데뷔작 <헤비>와 실베스터 스탤론과 함께한 범죄 영화 <캅 랜드> 이후, 제임스 맨골드는 정신 요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를 발표했다. 당대의 청춘스타 위노나 라이더의 주연작이자, 신인 안젤리나 졸리가 돋보인 작품이다. 자살 기도로 '인격경계 혼란장애' 진단을 받아 입원하게 된 수잔나(위노나 라이더). 수잔나의 시선으로 서로 다른 아픔과 상처를 견디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는다. 누구보다 강해 보이지만 병원으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리사(안젤리나 졸리)와 수잔나가 쌓아가는 우정이 주를 이룬다. 멀리서 보면 너무도 달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별다르지 않은 평범한 영혼들의 이야기로 위로를 건네는 영화.

케이트 앤 레오폴드, 2001

필모그래피 중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 멕 라이언과 휴 잭맨 주연의 <케이트 앤 레오폴드>는 한때 인기 있던 타임머신 소재를 빌려 로맨스를 진행시킨다. 로맨틱 코미디의 단골 캐스트이던 멕 라이언은 물론, 배우 휴 잭맨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로도 알려진 작품.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을 사는 여자 케이트(멕 라이언) 앞에 어느 날 19세기 남자 레오폴드(휴 잭맨)가 당도한다. 이름하여 레오폴드 알렉시스 엘리야 월커 가레스 토마스 마운트 공작이 21세기의 그녀를 유혹한다. 19세기 귀족 사회의 매너와 젠틀함에 케이트도 매료돼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알고 보니 레오폴드는 케이트의 조상이었다(!) 관습적인 스토리 라인임에도 휴 잭맨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평.

아이덴티티, 2003

<식스 센스>와 쌍벽을 이루는 반전 영화의 대명사 <아이덴티티>가 제임스 맨골드의 작품이었다니. '영화가 끝나는 순간 새로운 공포가 시작된다'는 카피를 내건 영화는, 폭풍우가 퍼붓던 어느 밤에 허름한 모텔로 사람들을 데려와 한바탕 게임을 시작한다. 각기 다른 사연들로 모인 인물들은 총 11명. 한정된 공간에서 한 명씩 살해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살해 용의자로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를 한 번에 뒤집는 반전 요소가 등장하면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들만이 포스터에 등장한 의미심장한 손바닥 모양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앙코르, 2005

이번엔 뮤지션의 전기 영화다. 호아킨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이라는 두 주연의 이름만으로 연기의 질은 이미 보장돼 있다. <앙코르>는 1950년대 컨트리 음악계의 전설적 아티스트인 조니 캐쉬의 굴곡진 삶을 좇아간다. 불우한 어린 시절, 친형의 죽음, 결혼 생활의 실패, 마약 중독 등을 경유하면서도 그가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사람은 준 카터였다. 실화를 얼마나 반영했는지를 알기 힘들지만 <앙코르>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연기한 존 카터라는 인물이 매우 인상적이다. 갈수록 평정을 잃어가며 형편 없어지는 조니 캐쉬를 매몰차게 외면하다가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그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든든한 울림을 준다. 리즈 위더스푼은 이 영화로 제78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나잇 & 데이, 2010



<케이트 앤 레오폴드>를 맨골드의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로 소개했지만, <나잇 & 데이>도 액션의 탈을 쓴 로맨틱 코미디라 말할 수 있다.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는 카메론 크로우의 <바닐라 스카이>에서 이미 연인을 연기한 바 있다. 제임스 맨골드의 <나잇 & 데이>로 재회한 두 사람은, 비행기에서의 로맨틱한 첫 만남에 비해 너무도 과격한 전개로 나아간다. 첨단 에너지원 개발자 사이먼(폴 다노)을 보호하던 첩보요원 로이(톰 크루즈)가 기술을 팔아넘기려 했다는 누명으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얼결에 그의 도망길에 동승하게 된 평범한 여자 준(카메론 디아즈)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심플한 이음새마저 코믹하게 그려졌다.

더 울버린, 2013

제임스 맨골드를 현재 반열에 올린 작품은 누가 뭐래도 <로건>이다. 울버린(휴 잭맨)의 최후를 다룬 <로건>을 만들기 전, 일본을 배경으로 한 <더 울버린> 역시 그가 연출한 작품이었다. 당초 <더 울버린>의 메가폰을 잡기로 한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중도 하차하고,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새로 완성했다. 하지만 <더 울버린>에 쏟아진 평가는 매정했다. 왜색이 짙은 묘사에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는 한국 관객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울버린 캐릭터가 쌓아온 진정성을 깎아내린 졸작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로건, 2017

하지만 놀랍게도 이어진 작품 <로건>을 통해 맨골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됐다. 히어로 영화의 한계를 깨고 <로건>을 통해 보여준 맨골드의 야심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할리우드 서부극 장르를 끌어들인 진중한 서사가 노쇠해가는 울버린의 고뇌를 무게감 있게 담아냈고, 작별을 고한 영웅의 마지막은 객석의 울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2017년의 베스트 영화 목록에 <로건>은 심심치 않게 등장했으며, 이는 히어로 영화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편, <앙코르>를 통해 보여준 가수 조니 캐쉬의 음악 'Hurt'를 활용한 예고편이 굉장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 <로건>의 쓸쓸한 정서와 캐쉬의 음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상업영화감독으로 다져온 노련함과, 초창기 보여주던 작가성이 조화롭게 녹아든 결과로서도 흥미로운 <로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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