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영화 <아이리시맨>과 역사 속 국제트럭기사노조, 마피아, 그리고 미국 대통령의 상관관계
2019-12-19
글 : 손세호 (평택대학교 교수)
호파가 존 F. 케네디를 싫어했던 까닭은

3시간30분에 달하는 <아이리시맨>의 기나긴 상영시간에서, 주요 인물인 지미 호파(알 파치노)는 영화 시작 45분 뒤에야 등장한다. 그는 영화가 언급하는 것처럼 실제 미국의 역사에서 “1950년대의 엘비스보다 1960년대의 비틀스보다 유명하고 심지어 대통령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호파는 일찍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기는 했지만 1932년 디트로이트의 트럭기사노조 299지부에 노동조직가로 초대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03년에 창설된 국제트럭기사노조(International Brotherhood of Teamster, 이하 IBT)는 1933년에 7만5천명의 노조원을 보유한 데 지나지 않았지만 호파가 이 노조에 들어와 맹활약하면서 1951년에는 100만명의 노조원을 거느리는 미국 최대 노조 중 하나가 되었다. ‘팀스터’란 일반적으로 트럭기사를 뜻하지만, IBT에는 일반 차량 기사뿐 아니라 창고업자와 그 밖의 운송 관련 노동자들까지 가입할 수 있었다.

“망할, 케네디”

본래 IBT는 대니얼 토빈이 회장을 맡던 1907년부터 45년 동안 마피아로 대표되는 조직범죄 집단과 관련된 광범위한 부패에 연루되어 있었다. 당시 부패한 일부 지부들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뇌물공여, 횡령, 강탈, 공갈 등의 부정한 방법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IBT 내의 부정과 부패는 호파가 1957년 대니얼 토빈의 후임이었던 데이브 벡을 몰아내고 IBT 부회장에서 회장으로 당선된 1950년대에 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이 일은 급기야 법무부와 상원 소위원회의 조사를 불러왔다. 그중 일부는 호파가 자초한 일이었다. 호파는 1957년 IBT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자신을 지지하는 대의원 수를 늘리기 위해 1956년 뉴욕 조직폭력배인 조니 디오를 만나 15개의 유령 지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유령 지부를 정식 지부로 만들고자 하는 호파의 행동은 반대파의 반발을 불러왔고 이것은 결국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의회는 상원의원 존 매클레런을 의장으로 하는 상원 노동 및 경영에서의 부적절한 행위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매클레런은 특별위원회의 조사관으로 로버트 케네디를 임명했다.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로버트 케네디가 자주 언급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아이리시맨>에서 호파는 로버트 케네디의 형인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뉴스를 보며 “망할, 케네디”라고 외친다. 하지만 러셀(조 페시)을 비롯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피아는 호파의 해결사였던 프랭크(로버트 드니로)에게 자신들이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음을 밝힌다. 이 시기의 미국 마피아들은 쿠바에서 1959년 12월 카스트로의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하기 전 자신들이 아바나에 투자해두었던 카지노와 호텔을 비롯한 각종 경제적 이권을 되찾기를 바랐다. 그들은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에서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적인 자본주의 정권을 다시 세울 것을 기대했다.

비록 전임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기 중에 계획된 일이지만, 실제로 케네디 대통령은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앙정보국(CIA) 주도로 미국에 있는 쿠바인 망명자 2천여명을 훈련시켜 이들을 미군의 지원하에 극비리에 쿠바에 상륙시킬 작전 계획을 승인했다. 이와 관련해 영화에서는 프랭크가 러셀의 지시로 볼티모어에서 트럭을 몰고 플로리다주 잭슨빌 외곽에 있는 개 경주장으로 가서 ‘거인 귀 헌트’를 만나 자신이 싣고 온 물건을 전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물건은 다름 아닌 기관총이었다. 뒤이어 영화 속 TV에서는 ‘피그스만 침공’에 관한 뉴스가 이어진다. 1961년 4월 17일 1400여명의 쿠바인 망명자들을 동원한 카스트로 정권 붕괴를 위한 상륙 작전인 피그스만 침공은 카스트로 군대의 반격으로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영화는 마피아들이 프랭크를 이용해 이 침공 작전을 은밀히 지원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친형의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법무장관이 된 로버트 케네디는 조직범죄에 철퇴를 가하기로 결심한다. 특히 호파를 타깃으로 검사와 수사관들로 구성된 이른바 ‘호파 잡기’(Get Hoffa) 수사반을 꾸렸다. 결국 호파는 1964년 테네시주 채터누가에서 배심원에게 뇌물을 주려 했다는 혐의로 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트럭기사노조의 연금 기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혐의의 사기죄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호파가 두 번째 유죄판결을 받은 후 로버트 케네디는 법무장관에서 물러나 상원의원에 선출되었다.

호파는 이 판결에 대해 연방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기각된 후 1967년 3월부터 펜실베이니아주 루이스버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수감되기 전 IBT의 의장 대행으로 자신을 지원해주리라 믿었던 프랭크 피츠시먼스를 임명했다. 하지만 <아이리시맨>에서 보듯 호파는 오히려 그로부터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호파는 앞서 두건의 유죄선고로 13년을 복역해야 했지만 그가 영화에서 50만달러를 주었다고 호언한 닉슨 대통령이 감형, 5년 뒤인 1971년 12월에 석방되었다. IBT는 196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닉슨을, 그다음 대선에서는 민주당을, 그다음인 1972년 대선에서는 다시 닉슨을 지지했다. 호파는 자신의 감형 조건이 1980년 3월까지 노동조합 활동 관여 금지였기 때문에 이를 풀기 위해 닉슨 행정부의 주요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소송까지 제기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현실에서 호파를 죽인 사람은?

호파는 IBT에서 자신의 지위를 되찾고자 모든 방법을 동원하지만 오히려 엄청난 저항에 직면한다. 호파는 지지 기반이라고 굳게 믿었던 디트로이트조차 자신에게 등을 돌렸음을 알게 된다. 영화 속 프랭크의 시상식 장면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토니 프로벤자노는 호파가 러셀이 연관된 뉴올리언스 대출건을 막으려 하고 예전의 대출마저 회수하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러셀에게 전한다. 러셀은 호파에게 노조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하지만 호파는 오히려 IBT가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호파의 강경한 태도에 러셀은 이 모든 것이 고위층의 뜻임을 밝힌다. 이 장면에서 러셀은 “대통령도 제거하는 자들인데 노조위원장이 대수겠어?”라고 말하는데, 이는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에 마피아가 연관되어 있다는 암시로 읽힌다. 러셀이 프랭크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 역시 주목할 만하다. 러셀의 말에 따르면 단 세개뿐인 이 반지를 가진 사람은 이탈리아계인 자신과 안젤로, 그리고 아이리시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그 반지를 끼워주며 말한다. “자넨 내 사람이야.” 프랭크에게 호파를 제거하라는 암시를 담은 말이다.

<아이리시맨>에서는 프랭크가 호파의 머리에 권총을 쏴서 살해한다. 영화의 원작이 된 책 <아이리시맨>을 쓴 작가 찰스 브랜트는 예전에 변호한 적이 있었던 프랭크 시런이 죽기 전 5년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책 <아이리시맨>을 썼다. 이 책에 따르면, 프랭크가 호파를 죽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호파를 누가 죽였는지, 호파가 죽었다면 그의 시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미제사건인 채다. 호파는 1972년 7월 말에 실종되었고, 1982년 법적으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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