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복길 칼럼니스트의 <비밀은 없다>
2019-12-24
글 : 복길 (칼럼니스트)
울음과 비명

감독 이경미 / 출연 손예진, 김주혁, 김소희, 최유화, 신지훈 / 제작연도 2015년

중학생 때 친구들과 싸우고 도저히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조퇴를 했다. 낮 시간에 학교 밖을 나가는 일탈은 항상 좋았었는데 그날은 교문을 나가기도 전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결국 엉엉 울면서 실내화를 신고 집까지 걸었다. 그런데 막상 집 앞에 도착하니까 들어가기가 싫었다. 이대로 방에 들어가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끼는 절박한 외로움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며 한참을 서성였다.

<비밀은 없다>는 살면서 무수히 겪었던 그런 의문스러운 감정들을 다시 상기시켜준 영화다. <비밀은 없다>는 “연홍(손예진)이 사라진 딸을 추적하며 사건에 얽힌 비밀을 밝혀 처절하게 복수하는 모성 스릴러”라고 요약할 수 있지만, 이런 사건의 서술만으로는 이 영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저 여자는 왜 비명을 지르는가’,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이를 꽉 깨무는가’처럼 인물의 사소한 행동과 원초적인 반응에서 메시지를 찾아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비밀은 없다>는 엄마와 딸, 교사와 학생 관계를 그리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 타이틀이 가진 고유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은 없다. 도리어 엄마, 딸, 교사, 학생으로서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절규하듯이 묻는다. 딸인 민진은 연홍을 지켜줘야 할 친구로 삼고, 친구인 미옥은 딸처럼 여긴다. 인물들이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도 이 영화가 모성과 우정,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을 견고한 수직으로 존재하는 남성 사회로 삼아, 여성들의 수평적인 관계를 대안으로 보이게 만든다.

사실 이 영화를 두고 이렇게 침착하게 말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내 인생의 영화’로 <비밀은 없다>를 말하기 위해 몇번이나 글을 고치고 다시쓰는 동안 울기도 하고 폭발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연홍부터 조연인 조소연 학생까지, 나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 인물에 나 자신을 이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만큼 살면서 가진 모든 종류의 태도와 마음이 이 영화 속 여성 인물들로 구현되어 있다. 영화는 생소한 음악과 긴 비명이 영화 내내 흐르고, 여자들은 모두 미친 것처럼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본인을 보호하려는 신성한 의식같이 느껴진다.

내가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일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영화가 표현하는 울음과 비명을 지지하고 싶다. 외로운 마음, 기대고 싶은 마음, 약한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거나 다른 것으로부터 경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복길 칼럼니스트. <아무튼, 예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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