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거듭할수록 넷플릭스는 관객들과 한 뼘씩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와 영화 아닌 것을 가르던 경계로서의 극장은 희미해진 모습이다. 극장 영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을 것만 같던 감독들도 넷플릭스와 손잡고 일궈낸 걸작들을 발표해왔다. 올해 발견된 넷플릭스 영화들의 리스트를 살피자니, 이듬해 만나게 될 영화들에도 기대를 걸게 된다. 전문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2019년 넷플릭스 영화 7편을 추렸다. (무순)
내 몸이 사라졌다
애니메이션ㅣ제레미 클라핀ㅣ프랑스
최근 넷플릭스는 <로마>나 <아이리시맨>처럼 야심찬 거장들의 드림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꼭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만 반드시 더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2019년 올해 넷플릭스 영화 중 소박하지만 독창적인 에너지를 인정받은 영화가 있다. 제레미 클라핀 감독의 애니메이션 <내 몸이 사라졌다>를 주목하자. 해부학실을 빠져나온 잘린 손 하나가 몸통을 찾아 헤매는 여정을 담은 이 작품. 프랑스 영화답게 정체성 탐구에 관한 철학적인 고찰을 던지는 듯하다. 애니메이션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관객상과 안시 크리스탈상 2관왕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각종 비평가협회상의 후보에 올라 LA와 뉴욕에서 애니메이션상을 차지했다.
결혼 이야기
드라마ㅣ노아 바움백ㅣ미국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일찍이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를 통해 넷플릭스와 연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칸영화제에 초청됐다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함께). 때문에 칸영화제는 이듬해부터 넷플릭스 영화를 거부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바움백에게 넷플릭스는 굴레가 됐을 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란 사실 역시 분명하다. 다시금 넷플릭스와 손을 잡은 감독은 그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 실제로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와의 이혼 경험이 있는 그는 <결혼 이야기>를 통해 이혼의 풍경을 정밀하게 그려낸다. 실감 나는 부부 연기를 보여준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 사이에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개입되면서, 이들의 차이는 화해 불가능의 경지로 나아간다. 로맨스로 착각할 법한 제목에 속지 말 것.
아이리시맨
범죄, 드라마ㅣ마틴 스콜세지ㅣ미국
긴긴 러닝타임을 극복할 의지가 충분하다면 마틴 스콜세지의 역작 <아이리시맨>으로 눈길을 돌려 보자. 장장 209분에 달하는 미니시리즈 스케일의 범죄물 <아이리시맨>. 이 작품은 그간 스콜세지의 갱스터 무비, 이를테면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와 같은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갱스터의 '가책'에 관한 이야기다. 스콜세지의 오랜 파트너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하비 카이텔이 노년의 재결합을 이룸과 동시에 명배우 알 파치노의 합류까지, 그야말로 화려한 라인업으로 눈길을 끈다. 평범한 노동자가 손에 피를 묻히며 살게 되는 과정이 그려지고, 점차 많은 목숨을 스러지게 했던 그에게도 드리워진 노환과 죽음의 그림자가 담긴다. 결말로 향하는 후반 45분에서 상승하는 클라이맥스가 아닌 하강의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틀림없는 마틴 스콜세지의 마스터피스.
두 교황
드라마ㅣ페르난도 메이렐레스ㅣ미국, 영국,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와 더불어 오스카 시상식의 부름을 받기에 충분한 넷플릭스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시티 오브 갓>과 <눈먼 자들의 도시>를 연출한 브라질 출신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긴 공백을 깨고 <두 교황>으로 돌아왔다. <두 교황>은 올해 가장 예상치 못한 기쁨을 안기는 영화이면서, 교황의 모습을 아주 인상적이게끔 묘사한다. 자진 사임의 뜻을 밝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후계자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택하게 되면서 발칵 뒤집힌 교계의 모습이 펼쳐진다. 결코 평범한 결정이 아니었던 이 사건의 연유를 앤서니 맥카텐의 시나리오는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따뜻함과 재치가 반짝이는 독특한 버디무비. 명망 있는 두 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호연으로 완성됐다.
애틀란틱스
드라마ㅣ마티 디옵ㅣ 세네갈, 프랑스, 벨기에
칸영화제와 넷플릭스의 관계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지만, 넷플릭스가 칸의 찬사를 얻은 작품을 사는 것까지 막진 못한다. 마티 디옵 감독의 <애틀란틱스>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작품 대열에 있었다. 1등 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의 트로피는 봉준호 감독에게 돌아갔지만, 2등 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의 주인공은 <애틀란틱스>였다. 아프리카계 여성 감독 최초로 이룬 마티 디옵의 성과를 발 빠르게 알아챈 넷플릭스가 이 작품을 들여왔다. 이 선택은 어쩌면 소수의 극장에서 반짝하고 사라질 뻔한 영화를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난민 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애틀란틱스>는 10년 전에 만든 감독의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장편 극영화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길을 잃은 청년들의 모습을 유령에 시달리는 공동체로 묘사했다.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
코미디, 드라마ㅣ크레이그 브로워ㅣ미국
저속한 이야기라고 해서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이름은 돌러마이트>를 보면 체감할 수 있다. 코미디언이자 가수이고, 배우이자 다시 영화 제작자였던 루디 레이 무어. 그의 일대기를 <드림걸즈>와 <슈렉> 시리즈로 알려진 코미디 스타 에디 머피가 직접 연기한다. 1970년대의 LA, 루디 레이 무어는 레코드사의 부매니저와 클럽 사회자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의 꿈은 코미디언이었다. 하지만 변변한 무대조차 허락되지 않던 그의 인생이 '돌러마이트'의 창조와 함께 완벽히 탈바꿈한다. 그는 음란한 가상 캐릭터 돌러마이트를 창조해 노숙인들 앞에서 희극 연기를 했다. 돌러마이트는 하위문화 속에서 입지를 굳혀갔고 루디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성공한 그는 다시 그 지점에서 <돌러마이트> 영화 만들기에 착수한다. 황금기에서 시작된 도전은 나락의 길을 선물할 것인가, 두 번의 성공을 가져다줄 것인가.
높이 나는 새
드라마ㅣ스티븐 소더버그ㅣ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넷플릭스에서 올해 두 편의 영화를 공개했다. 메릴 스트립, 게리 올드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협업한 <시크릿 세탁소>, 그리고 프로농구 업계의 뒷이야기를 담은 <높이 나는 새>다. 소개할 영화는 전문가들로부터 보다 훌륭한 평가를 받은 <높이 나는 새>. 농구를 소재 삼은 영화에서 기대할만한 거친 승부와 땀 냄새는 여기에 그다지 없다. 다만 농구 코트 뒤에서 벌어지는 에이전트와 협회의 갈등을 실감 나게 담고 있다. 선수협회와의 대립으로 농구 경기가 무기한 정지된 NBA 리그에서 이제 막 프로팀에 발탁된 신인 선수 에릭과 에이전트 레이가 갈 곳을 잃는다. 선수가 살지 않으면 자신의 처지까지 불투명해지는 에이전트 레이가 이 상황을 극복할 판을 짜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 전체를 아이폰 8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