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러고 있을까?” 십몇년 전에 야구장에서 친구가 물었다. 그러면 좋겠다고 답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회사 동료들과는 30년 뒤에 만나도 영화 이야기를 나누리라. 나는, 바라기는, 시력이 허용하는 한 좋은 책에 대해 세상에 말하며 살고 싶다. “이제 철들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법한 일만 바라고 있다. 쓰루타니 가오리의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의 일을 그린다. 75살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는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그림체에 홀려 집어든 BL만화에 홀딱 빠진다. 할머니의 BL 생활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 사야마 우라라. 이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2019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 만화 부문 1위를 했다.
BL이라는 말이 낯선 분들을 위해 부연하면 보이스 러브(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간의 사랑을 다룬 창작물이다. 소설, 만화, 드라마 CD 등으로 제작되며, 관련된 용어를 말하자면 끝도 없지만, 남성 아이돌 그룹의 팬픽부터 <신세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같은 한국 상업영화의 2차 창작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 서브컬처와도 관계있다. ‘브로맨스’라며 남자들 사이의 끈끈한 우애를 강조하는 식으로 말하는 그것. 남성간의 성애를 다루지만 BL은 ‘여성향’ 창작물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 중국까지 동북아시아에서 BL 문화가 여성을 상대로 하는 거대한 문화산업이 된 이유에는 여성 인권의 억압(연애하는 두 사람 중 한쪽은 재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설정이 많다)과 여성의 성적 욕구 표현의 어려움(이른바 19금 작품이 인기가 많고 여성향 이성애물보다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신이 많다)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인기 비결이 무엇이든 여성 배제적인 여성향 창작물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다.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노년에 BL을 발견한 유키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이제 BL을 끊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우라라의 이야기. 여기에는 연령대에 따른 고민(한쪽은 죽음을, 한쪽은 진로를)과 연령을 뛰어넘는 교류가 나란히 흐른다. 두 사람 각자의 생활반경은 분위기가 정반대다. 한쪽은 북적대고 한쪽은 적요하다. 그래도 두 사람 다 이불 속에 안기듯 누워 타자의 사랑을 읽고 공상하며 두근거리기는 매한가지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