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김나영 크레이브웍스 이사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20-01-07
글 : 김나영 (크레이브웍스 이사)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오노 마치코 / 제작연도 2013년

‘내 인생의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중 무엇이냐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와 동시대에 산다는 것에, 그래서 그의 작품이 계속된다는 것에 충분히 행복한 #고빠_다. 새삼 고백하건대 그의 영화를 영접하기 전의 나는 극적 감정이 극대화되고 반전이 있는 스토리를 선보여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프로듀서였다. 심지어 가족영화는 딱 질색이었다. 굳이 가족을 영화에서까지 봐야 해? 솔직히 벗어나고 싶고 지긋지긋한 존재 아냐? 어쩌면 나는 단 20자 안으로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후킹’한 하이 컨셉무비에 함몰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힘 빼고 담담하게 툭 내뱉는 그의 화법에 속절없이 당했고, 얻어터진 것처럼 며칠간 후상이 남았다. 이후 나는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을 모두 찾아보았고, 그가 쓴 책을 읽고, 그의 작품이 개봉하면 아침 시간이나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나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한편을 여러 번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아무리 여러 번 보아도 그의 작품은 충분한 멘털과 감정의 준비 없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내 인생의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작품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다. 유달리 이 영화에는 중첩되는 내가 있고, 내 딸들이 있고, 내 어머니가 있다. 가족영화를 시시해하던 나는 그사이 엄마가 되었고,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지극히 당연한 가족이 되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써야 하는지 매일 깨닫고 있다. 아침마다 정신 승리다.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하면 결국 딸들도 엄마처럼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사는 여성으로 자랄 거란 얘기는 개뿔. “왜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목욕도 같이하지 않느냐?”는 유다이의 질문에 훅 무너진다. 오만한 눈빛의 료타가 “육아엔 꼭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죠”라며,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바쁜 일들이 있다”고 얘기할 땐 내 마음속의 합리화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에이, 무슨 얘기예요. 시간이죠.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조건 시간이에요” , “아버지도 다른 사람이 못하는 거잖아요?”라고 말갛게 얘기할 땐 여지없이 케이오!

SF영화 속 미래 세계 같은 숫자 2020년이다. 아기 같던 두딸은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다. 지난 한해 동안 영화 같은 드라마도 만들어보겠다고 OCN 드라마 <프리스트> <킬잇>, tvN 드라마 스테이지 <오우거> <빅데이터 연애> <이의 있습니다> <모두 그곳에 있다>를 제작했다. 그런데 그동안 내 딸들은 잠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아두었더라!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그 엄청난 장면을 우리 집에서 마주하게 될 줄이야, #현타

올해는 딸들에게 자랑스러울 작품을 만들겠다는 호기를 부리기 전에 함께 목욕부터 해야겠다.

●김나영 드라마 제작사 크레이브웍스의 이사다.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한다. 영화도 가르친다. 그 무엇보다 엄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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