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소년 만화, 미국이 히어로 장르 코믹스라면 한국은 이제 웹툰이 최고의 영상화 소재로 거듭났다. 이미 수많은 웹툰들이 영화화, 드라마화돼 관객들을 만났다. 도합 약 2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함께> 시리즈도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했으며, 현재 상영 중인 <해치지않아>도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이미 한차례 영화화 경험이 있는 HUN 작가의 웹툰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국내의 웹툰 원작 드라마, 영화는 무려 60여 편 가까이 된다. 심지어 몇몇은 ‘이게 웹툰 원작이었어?’하는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에 못지않게 지금도 충무로는 여러 웹툰들의 영상화를 기획 중이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상화가 쉬운 길은 아닐 터.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 단우 작가의 <스토커> 등 끝내 제작이 미뤄지며 사실상 무산의 길로 들어선 사례들도 있다. 부디 현재 예정된 작품들은 무사히 제작에 착수해 극장가를 풍성하게 채워주길 바라보며, 다가올(제작 단계, 기획 중) 웹툰 원작 영화 다섯 편을 알아봤다.
<정상회담>
첫 번째는 무산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미 지난 9월 촬영에 착수한 작품이다. 2017년 웹툰을 영화화해 약 4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던 <강철비>의 후속작으로 알려진 <정상회담>이다. 다만 <강철비>의 스토리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가지는, 엄연히 따지면 완전히 다른 영화다. 심지어 <강철비>에서 북한 요원으로 활약했던 정우성, 남한 요원으로 활약했던 곽도원이 재출연하지만 각각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한다. <정상회담>에서 정우성은 따듯한 심성의 남한 대통령을, 곽도원은 쿠데타를 일으키는 북한의 고위직 간부를 맡았다. 거기에 유연석이 북한의 지도자 역으로 합류했다. 남한과 북한, 미국의 수뇌부들이 북한의 핵잠수함에 납치된 상황을 담는다.
이렇듯 속편인 듯 속편 아닌 영화가 탄생할 수 있는 이유는 <강철비>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잡은 이가 원작 웹툰의 작가 양우석 감독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남북 정세’를 다루는 유사점이 있지만 매번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가지는 ‘스틸레인’ 유니버스를 구축 중이다. 그 속에는 웹툰 <스틸레인>, 이를 각색해 영화화한 <강철비>, 다시 <강철비>를 토대로 <스틸레인>을 리부트한 웹툰 <강철비: 스틸레인2>, 현재 다음에서 연재 중인 웹툰 <정상회담: 스틸레인3>가 있다. 이번 영화는 <정상회 담: 스틸레인3>를 영화화하는 것. 시리즈물을 좋아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전편을 보지 않아도 각 작품을 관람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게 이점으로 다가올 듯하다.
<상중하>
웹툰의 최고 보고로 자리 잡은 만큼, 네이버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영상화하기 위해 ‘스튜디오 N’을 설립했다. 그리고 작품별로 각기 다른 제작사와 협업해 영상화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예정된 영화화로는 <비질란테>, <피에는 피>, <대작> 등 10편이 있다. 그중 유일하게 감독이 정해진 프로젝트가 있으니, 바로 ‘한’ 작가의 <상중하>다. 재벌, 회사원, 백수 각각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세쌍둥이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상류층이 되기 위해 화합·대립하는 내용이다. 세 사람 모두 욕망에 눈이 먼 캐릭터로, 소위 ‘진흙탕 싸움’이 펼쳐진다.
영화 <상중하>의 메가폰은 <웰컴 투 동막골>, <조작된 도시> 등을 연출한 배종 감독이 잡는다. 하드보일드한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낼지가 관건인 듯하다. 또한 감독도 감독이지만 주인공 형제들을 소화할 배우도 중요하다. 1인 3역을 연기, 각 캐릭터들의 전혀 다른 개성을 살릴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연의 편지>
웹툰 영화화가 꼭 실사라는 법은 없다. 조현아 작가의 <연의 편지>는 만화적 매력을 그대로 살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한다. 전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겪고, 전학을 온 소녀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던 학생이 남긴 편지를 발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교내 왕따 문제를 소재로 삼고, 미스터리한 전개를 가졌지만 특유의 서정적이고 담담한 톤이 돋보인 작품이다. <연의 편지>는 영상화됐던 여타의 웹툰들과 달리 10부작으로 구성된 (영화로 치면)중편 웹툰.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사실 10부작이라는 길이는 한 편의 영화로 만들기에 최적화된 호흡이다. 이미 스토리가 보장, 실사화에서 나타날 수 있는 괴리감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따라서 애니메이션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역시 작화가 될 듯하다. 학교 근교의 자연이 주 배경이 되고, 수채화 같은 색감으로 ‘지브리 감성’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웹툰인 만큼, 그림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표현할지가 핵심이다. 이를 완성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는 웹툰 <갓도령스>, <귀전구담> 등을 제작한 LICO가 맡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 <소중한 날의 꿈> 등을 잇는 한국형 애니메이션 영화가 될 수 있기를.
<부활남>
N 스튜디오 외에도 거대한 웹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회사가 있다. <신암행어사>, <아일랜드> 등으로 2000년대 초 한국 만화 업계를 이끌었던 윤인완(스토리 작가), 양경일(그림 작가) 콤비가 설립한 만화 콘텐츠 스튜디오 와이랩이다. 넷플릭스에서 TV 시리즈화한 <킹덤>도 그들의 단편 만화 <버닝헬>을 바탕으로 한 것. 현재 와이랩은 여러 웹툰 캐릭터들을 하나로 잇는 ‘슈퍼스트링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마치 MCU(Marvel Cinematic Universe)처럼 여러 만화 속 인물들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다. 그 속에 포함된 작품으로는 <신암행어사>, <버닝헬>, <부활남>, <테러맨>, <심연의 하늘> 등이 있다.
거기에 그들은 만화, 웹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실사 영화화까지 기획 중이다. 2017년 와이랩은 <뷰티 인사이드>, <럭키>, <독전> 등을 제작한 용필름과 협업해 슈퍼스트링 영화화를 발표했다. 같은 해 진행한 쇼케이스에서는 “첫 주자로 <부활남> 실사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죽으면 3일 후, 마지막으로 잠든 곳에서 다시 깨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석환이 주인공인 웹툰이다. 여러 시즌이 배출, 긴 스토리라인을 가진만큼 영화는 그중 일부분만 다룰 듯하다. 영화 <부활남>은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다.
<후레자식>
마지막은 스릴러 장르다. 웹툰계에서 스릴러 장르에 특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김칸비 작가의 <후레자식>이다. 사진적 의미로 ‘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비속어’인 후레자식. 그러나 웹툰에서 이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선우진이 사이코패스 살인마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내용이기 때문. 단순히 그를 저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아버지의 살인을 도왔던 그가 잘못됨을 깨닫는 과정도 그려진다. 잔혹한 장면과 조여오는 심리 묘사가 특징이다.
<후레자식>의 영화화하는 장르에 딱 부합하는 감독이 이끈다. <남극일기>, <헨젤과 그레텔>, <마담 뺑덕>을 연출한 임필성 감독이다. 음산한 분위기를 바탕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파고들었던 전작들의 장점을 그대로 <후레자식>에 가져올 듯하다. 덤으로 잔혹한 묘사를 여과 없이 담아 최소 15세 이상 관람가, 혹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예상된다. 뚜렷한 개성으로 마니아층을 보유했지만 흥행 면에서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던 임필성 감독. 과연 그는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장기를 살려 설욕에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