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십 중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고 억울하게 해고당한 이력이 있는 성혜(송지인)는 이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버틴다. <성혜의 나라>에서 28살의 가난한 청춘을 연기한 배우 송지인은, 그 나이라면 누구나 누려볼 만한 욕구와 치기를 빼앗긴 채 말라버린 성혜의 얼굴로 깊숙이 잠수했다. 발랄한 얼굴이지만 어딘가 수심이 묻어 있고, 한없이 앳돼보이다가도 세상을 이미 다 알아버린 사람 같은 표정을 짓는다. 흑백 화면 속의 강단 있는 이목구비가 미세한 표정에도 힘을 불어넣어 성혜의 얼굴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기도 하다. 20대 시절 성혜처럼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배우 데뷔 후에는 무명생활을 거쳐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불안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송지인의 나라는 어떤 곳일까. 첫 스크린 주연작 개봉을 앞둔 배우를 만났다.
-스크린 첫 주연작이다. 캐스팅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매니저도 회사도 없지만 그저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굉장히 간절한 때에 감독님을 만났다. 전주국제영화제 출품이 목표라는 감독님 말씀에 속으로 ‘내가 또 속네, 또 속아’라는 생각도 했다. (웃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날엔 다 같이 껴안고 소리지르고 그랬다. 개봉 전 시사회에서는 무대인사 후에 엉엉 울었다. 지금도 내가 나오는 영화를 누가 보러 오겠어, 하는 마음과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추운 겨울의 촬영 현장이 촉박하고 힘들었을 것 같다. 개봉도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120분짜리 영화를 7회차 만에 찍었다. 감독님, 강두 배우, 나 이렇게 셋이서 두달간 격일로 만나서 영화 리딩을 열심히 했다. 현장에서 지체되면 안되니까 어떻게든 완벽하게 준비하자는 계획이었다. 극중 성혜가 입은 옷들도 내 의상이다. 집이 부천인데, 커다란 배낭에 내 옷을 잔뜩 구겨넣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허름한 의상 컨셉에 맞추기 위해 안 입고 쌓아둔 빈티지한 옷들을 챙겨간 건데 막상 감독님이 딱 좋다고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기분이 약간 묘했다. (웃음)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방송작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캐스팅 제안을 받은 것이 배우 입문의 계기다.
=나도 성혜처럼 아르바이트를 참 많이 했다. 어머니가 아프시기도 했고. 과외, 카페, 대학교 공공근로 등 학기 중에 공강 시간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던 차였다. 조·단역 아르바이트는 시간 운용이 자유로울 것 같아서 승낙했고 지금이 아니면 도전해보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성혜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이 있었겠다.
=고향이 거제도라 서울살이하면서 힘들게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처지와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꼭하고 싶었다. <성혜의 나라>는 우리의 삶에 닿아있는 이야기다. 연기할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영화에 끌어다 쓰기도 했다. 30대가 된 지금도 성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다만 요즘엔 그저 밝게 철없이 살려고 한다.
-특별히 공감했던 장면이 있나.
=집주인 아주머니가 집세 올려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첫 테이크에 눈물이 뚝뚝 났다. 아주머니가 아들을 장가 보내야 하는데, 아들을 이 방에서 살게 할 순 없지 않냐며 전셋집을 얻어줘야 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사는 집은 집주인 아들이 들어와서 살 수는 없는 집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처지가 비교되고 마음이 아팠다.
-오랫동안 조·단역 생활을 했다. <성혜의 나라> 이후 새로운 지향점이 생겼다면.
=의미 있는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을 좀더 알게 된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위로받는 관객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이 될 것 같다. 앞으로도 독립영화 작업을 많이 해보고 싶다.
영화 2020 <성혜의 나라> 2014 <카트> TV 2016 <기억> 2015 <호구의 사랑> 2013 <직장의 신> 2011 <청담동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