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할리우드영화들은 최소한 한국영화보다는 다양성 측면에서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고들 한다. <겨울왕국>이 처음 개봉했던 때, 어린 소녀들이 공주 대신 왕이 되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대관식’ 이벤트를 부모에게 요구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엘사는 파괴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고, 두 자매는 그렇게 남자를 얻는 대신 세상을 얻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엘사는 왕이 된다 해도 허리를 조인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한 모습이었다. 외양으로는 공주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엘사를 보여주는 방법은 어땠어야 하는가. “강한 얼굴 표정을 사용하든지 그런 표정과 아울러 다른 옷을 입게 하든지, 성적 매력과 무관한 변신 장면을 보여주든지 했어야 했다.” 현재의 상황은 페미니즘의 승리가 아니라, 혹시, <대중문화는 어떻게 여성을 만들어내는가>에서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를 인용해 말하는 것처럼 “반페미니스트적인 반격이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0년과 2006년 사이에 소녀들은 학업보다 체중을 더 걱정했고 자살률은 상승했다.
멀리사 에임스, 세라 버콘이라는 대중문화와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두 연구자의 <대중문화는 어떻게 여성을 만들어내는가>는 2016년에 쓰인 책답게 대중문화에서의 페미니즘에 관련된 최신의 이슈를 다룬다. 예를 들어 팔루디의 <백래시>가 미국 대중영화가 독신 여성을 추락시키는 방식을 지적했다면, 이제는 그 연령대가 더 높아지거나, 여성과 남성의 상황이 역전되는 듯 보인다. 성공한 중년의 여성은 나이 차이가 큰 젊은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 젊은 남자와 데이트하는 40대 여성은 쿠거, 30대 여성은 퓨마라고 불린다. 여성의 성적욕망을 대중문화가 받아들인 듯 보이지만 이 모든 일은 정체성이 아내 혹은 엄마에 묶이지 않는 여성들을 “당연하게도 훈계조로 성욕 과잉이라고 묘사”하는 일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쿠거나 퓨마가 여성에게 포식자로서의 권력을 주는 듯하지만, 이 역시 해묵은 ‘성녀 혹은 창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어들이다. 둘 중 어느 쪽인지는 명확하고. 어머니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 만들어진 신조어 ‘내가 섹스하고 싶은 엄마’(Mom I’d Like to Fuck)의 줄임말인 밀프(MILF)라는 표현 역시 여성을 남성의 시선 아래 두는 표현이다. 대중문화는 페미니즘과 함께 변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미 다 이루어졌다’는 환상을 주입 중이다. 평등은 아직 요원한 단어고, 그러니 이 책은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