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짜고짜 누군가를 찾아와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 가영(정가영)의 이야기가 성적인 위험 수위를 넘나든다. 가영이 찾아온 그림 그리는 남자 성범(이석형)은 유부남이다. 그런데 대화를 듣다 보니 성범과 가영은 과거에 좀 이상한 관계였다. “네가 그냥 유부남이냐? 나랑 잤던 유부남이지.” 불륜을 저질렀던 두 사람은 이제 여자의 새로운 연애 상대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다. 그런데 그 사람도 유부남이란다. 이들의 대화는 너무 유치하다. 두 사람은 누군가 먼저 선을 넘기만을 기다린다. 영화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이 10여분 동안 의미 없는 대화를 쏟아내다가 각자 얻을 것을 얻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누군가는 또 시작됐다고 고개를 흔들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어떤 멜로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진솔한 오프닝이라 느낄 수도 있다.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는 모두 사랑이 싹트는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정가영 감독의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하나의 목적을 갈구하는 듯한 대사를 쏟아낸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라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그 의미 없는 대사의 충돌이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지, 사랑이 탄생하는 마법 같은 순간의 포착에 도전한다. 가영은 감독 자신의 초자아인가. 순수한 허구의 캐릭터인가. 이 영화는 실제 경험담에 근거한 기록물인가.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섹스와 영화의 상관관계라는 부제를 달아도 그럴듯하게 어울릴 영화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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