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링고> 자의와 관계없이 여러 사건, 낯선 인물들과 얽키고설킨 해럴드
2020-03-03
글 : 이나경 (객원기자)

시카고에 있는 한 제약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하는 해럴드(데이비드 오옐러워)는 꼬여버린 인생을 풀고 싶어 한다. 그는 공동 사장인 리처드(조엘 에저턴), 일레인(샤를리즈 테론)과 떠난 멕시코 출장에서 자신을 해고하려는 두 사람의 계획을 알아채고, 아내 보니(탠디 뉴턴)에게 이를 토로하다 난데없이 이혼 통보를 받는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 이에 절망하던 해럴드는 위장 납치극을 꾸미고, 먼저 미국으로 돌아간 리처드와 일레인에게 납치범의 요구인 양 500만달러를 제시한다. 하지만 상황은 해럴드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회사에 앙심을 품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쫓기고, 리처드의 부탁을 받은 형 미치(샬토 코플리), 미국에서 마약 운반책으로 멕시코에 온 마일스, 아무것도 모른 채 마일스를 따라온 서니(아만다 사이프리드) 커플과 여러 갈래로 얽히게 된 그는 과연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마약과 음모로 결탁된 멕시코의 어느 도시에 홀로 남겨진 해럴드가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끝내 권선징악의 결과를 쟁취해낸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자의와 관계없이 여러 사건, 낯선 인물들과 얽키고설킨 해럴드의 선택을 예상해보는 재미 또한 있다. 하지만 다소 부족한 독창성과 개연성 때문에 <그링고>가 규정한 액션, 코미디, 드라마 장르 중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겉도는 인상을 준다. 샤를리즈 테론이나 아만다 사이프리드처럼 연기력이 출중한 여성 배우들의 캐릭터를 제한적으로만 활용하는 것 또한 아쉽다. 그럼에도 데이비드 오옐러워를 비롯해 크고 작은 배역을 소화해낸 이들이 각자의 몫에 충실한 덕에 극의 시너지를 형성한다는 지점은 고무적이다. <더 스퀘어>(2008), <더 기프트>(2015), <보이 이레이즈드>(2018) 등으로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 에저턴 형제가 연출자와 배우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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