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 소감이 한동안 미국의 인터넷을 달궜다. 하나의 동물종(인간),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성(性)이 다른 상대를 착취하고 지배하는 부정의에 대항하여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소감은 그 내용도 형식도 많은 이들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었다. 그가 이 멋진 수상 소감을 발표한 오스카가 정작 여성감독을 감독상에 노미네이트하지 않는 것으로 늘 비판받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 감독상 후보에도 호명되지 않은 여성감독이 있었으니 바로 <작은 아씨들>을 만든 그레타 거윅이다. 그레타 거윅은 2019년 골든글로브에서도 오스카에서도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를 비판하는 이야기 역시 충분히 길게 쓸 수 있겠지만, 그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아씨들>에는 여러 클래식 음악이 등장한다. 자매들 중 셋째인 베스(엘리자 스캔런)가 음악에 재능이 있어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극중 등장인물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기 때문이다. 19세기라는 시대 배경에 걸맞게 슈만이나 슈베르트 같은 낭만기 작곡가들의 음악이 틈틈이 들려온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도 고개를 내밀고 앞선 시대의 작곡가 바흐도 잠깐 등장하는 가운데, 관객이 가장 기억할 멜로디는 아마도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일 것이다. 영화는 베스가 연주했던 이 음악을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다른 인물이 한번 더 연주하게 함으로써 관객과 등장인물들에게 위로와 애도를 전한다.
베토벤은 <비창> 소나타를 1798년경에 작곡하여 1799년 발표했다. 베토벤 자신이 직접 제목을 붙인 몇 안되는 곡에 속한다. 보통 1796년에서 1798년 사이 베토벤이 청력 손상을 입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므로, 1798년이면 베토벤이 듣는 데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한 시기다. 아직 음악도 말소리도 잘 들을 수 있는 상태였지만 이명이나 누가현상(작은 소리는 들리지 않으나 약간 큰 소리는 과도하게 크게 들리는 현상)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베토벤은 점점 진행되는 청력손실로 인해 스스로 고립감을 느끼는 경험을 수십년에 걸쳐하게 된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베토벤은 그 이후로도 열정적으로 작곡을 했고 불멸의 명곡들을 써냈다. 그는 피아노나 공명판 같은 도구의 힘을 빌리는 동시에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들리지 않는 소리는 늘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다. <작은 아씨들>에서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말한다. “그런 글들을 안 쓰니까 안 중요해 보이는 거지.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그리고 출판사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조(시얼샤 로넌)의 원고는 호응을 얻는다. 베토벤이 세상의 소리를 제한당하면서도 듣고자 했던 소리, 그 작은 소리, 소리를 부여받지 못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온 세상은 알지도 못했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 소감을 다시 빌리자면, “목소리를 얻지 못한 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 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윤리적 책무일지도 모른다. 우유에서 소의 울음을 듣고, 문턱에서 휠체어 사용자의 한숨을 듣는 것, 듣기 위해 마음을 쓰고, 나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이야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