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장> 가부장제, 남존여비 사상의 역사가 깊은 만큼 여러 세대의 관객에게 소구할 수 있는 작품
2020-03-24
글 : 조현나

혜영(장리우)을 포함한 네 자매는 아버지 묘를 이장하기 위해 다 같이 시골로 떠난다. 홀로 동민(강민준)을 키우는 혜영은 회사로부터 퇴직 권고를 받았고 둘째 금옥(이선희)은 남편의 외도 문제로 속을 썩인다. 결혼을 앞둔 셋째 금희(공민정)는 목돈 들어갈 일이 많고 넷째 혜연(윤금선아)은 대학에서 투쟁 중이다. 오랜만에 모인 자매들은 가부장적이던 아버지에 관해, 그리고 이장 보상금 500만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 논한다. 막내이자 장남인 승락(곽민규)은 연락이 닿지 않아 데려오지 못했는데 큰아버지는 “어떻게 장남도 없이 무덤을 파냐!”라고 호통치며 네 자매를 다시 돌려보낸다. 어렵게 만난 승락과 전 여자친구 윤화(송희준)는 네 자매에게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장>은 정승오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감독은 전작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2016)에서 아픈 엄마의 병문안을 가던 네 자매가 부모가 죽은 뒤엔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해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 또한 제사를 통해 가족 내 성차별을 인지하고, 아파트 부지 문제로 할머니 묘를 이장해야 했던 감독 자신의 경험을 영화에 그대로 담아냈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만큼 현실적인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돋보인다. 온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신이 특히 인상적인데, 3대가 둘러앉아 가부장적 시스템을 옹호하고 비판하며 대립하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함을 남긴다. 이장이라는 중심 서사에서 잔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오남매의 개별적 서사도, 각자의 서사를 흡인력 있게 표현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보는 재미가 있다. 가부장제, 남존여비 사상의 역사가 깊은 만큼 여러 세대의 관객에게 소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을,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작품 최초로 신인감독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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