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화가 모리(야마자키 쓰토무)는 아내 히데코(기키 기린)와 함께 자신의 정원을 꾸미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30년째 정원 밖으로 나가지 않은 모리에겐 그의 정원이 곧 세계고 우주다. 풀벌레와 송사리, 풀과 수초와 나무, 햇빛과 바람과 연못이 그의 친구이며 가족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모리의 평온하고 고요한 공간에 작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손님들이 한두명씩 찾아오기 시작한다. 유명 화가인 모리가 쓴 간판을 얻기 위해 먼 곳에서 달려온 여관 주인부터 모리의 정원에 빠삭한 사진작가 후지타(가세 료)와 그의 제자 가시마(요시무라 가이토), 그외의 인물들까지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남극의 쉐프> <딱따구리와 비>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풍경 속 일상의 순간을 잔잔하게 담아냈던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신작이다. 일본의 근대 화가인 구마가이 모리카즈의 말년을 극화했다. 인물이 정원 밖을 벗어나지 않는 설정이라 한정된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데도, 영화는 생동감과 활력을 잃지 않는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포착한 벌레의 움직임과 나비의 날갯짓 등이 흥겨움을 더한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엉뚱한 농담은 관객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으나, 슬로 라이프 무비로서의 흐름과 분위기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신선 같은 노화가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 야마자키 쓰토무의 저력이 인상 깊다. 2018년 작고한 원로 배우 기키 기린의 다정한 모습 또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