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오>(1985), <지옥인간>(1986) 등을 연출하며 미국 컬트, 호러 영화계의 대부라 불렸던 스튜어트 고든 감독이 지난 3월24일, 만 7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가족들은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를 통해 “그가 복합장기부전으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1947년생의 스튜어트 고든 감독은 전위적인 연극 연출가로 경력을 시작했다. 미국 매디슨시의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던 그는 1968년 <피터팬>을 각색한 사이키델릭 버전 정치 풍자극을 제작한다. 그러나 연극에서 외설적인 장면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풍기문란죄로 고소를 당하고,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 이후 아내인 캐롤린 퍼디 고든과 함께 시카고에서 연극 회사 ‘오가닉 시어터’를 설립해 연극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1974년에는 현대 미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마멧의 <섹슈얼 퍼버시티 인 시카고>를 초연했으며, 1977년에는 즉흥 코미디극 <블리치 범스>를 5년간 장기 상영으로 이끌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연극계에서 명성을 쌓은 스튜어트 고든 감독은 영화 제작자 브라이언 유즈나와 함께 미국 현대 호러 소설 거장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하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를 영화화한 <좀비오>를 연출하며 영화계에 뛰어든다. 천재 의과대학생 하버트(제프리 콤즈)가 시체를 되살리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좀비오>는 키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에 실소를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를 버무려 호평 세례를 받는다. 90만 달러(10억 9000만 원, 3월27일 환율기준)의 제작비로 단 18일 만에 촬영된 영화는 제작비의 두 배가 넘는 극장 수입을 거두고, 비디오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흥행에 성공한다. 거기에 평단의 인정까지 받으며 1985년 시체스영화제, 1986년 판타페스티벌 등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은 그 기세를 이어 또 한 번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저 너머에서>를 영화화해 1986년 <지옥인간>을 제작한다. <좀비오>와 마찬가지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며, 뇌를 자극해 현실 차원을 넘어선 이세계를 보는 실험을 하는 이야기다. <지옥인간>은 전작인 <좀비오>에 비해 흥행 면에서는 부진했지만 엽기적인 상상력,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스플래터 요소를 그대로 살려 컬트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그렇게 스튜어트 고든 감독은 호러영화계의 신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그는 훗날 <사탄의 인형>에게 영향을 준 <돌스>, 애드거 앨런 포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함정과 진자> 등을 꾸준히 선보이며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1989년에는 분위기를 바꿔 디즈니의 가족영화 <애들이 줄었어요>의 원안을 쓰기도 했으며 1990년대에는 <로봇 족스>, <포트리스> 등 SF 액션 장르로도 영역을 넓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스튜어트 고든 감독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01년에는 주전공인 컬트 호러로 돌아와 <데이곤>을 선보이며 팬들의 반가움을 샀다. 2000년대 중반에는 노선을 조금 틀어 스릴러 장르에 도전했는데, 피폐해진 직장인의 범죄행각을 담은 <에드먼드의 범죄>는 제39회 시체스영화제에서 오피셜 놉스 비전-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뺑소니 사고를 소재로 한 <스턱>은 제26회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 최고상인 금까마귀상을 수상하며 여전한 위상을 자랑했다.
이외에도 스튜어트 고든 감독은 존 카펜터, 조 단테, 기예르모 델 토로 등 여러 호러 거장 감독들이 에피소드 연출을 맡은 단편 TV 시리즈 <마스터즈 오브 호러>에 두 차례 참여했다. 시즌1에서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녀의 집>을, 시즌2에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검은 고양이>를 연출했다. 2014년까지도 그는 LA에서 <11월... 애드거 앨런 포와 함께 한 모든 것>, <맛> 등의 연극을 제작하는 등 호러 영화, 연극 분야에서 꾸준히 활약하며 ‘거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줬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별세에 그의 딸 마가렛 고든은 <버라이어티>를 통해 “스튜어트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제작자였으며, 멘토이자 친구였다. 그러나 나와 동생들에게는 무엇보다 최고의 아버지였다. 그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대변인 도미닉 만치니는 “그는 사랑스러운 남자였고, 10년을 함께 한 소중한 친구였다. 매우 그리울 것이다”고 애도를 표했다.
<마스터즈 오브 호러>에 함께 참여했던 동료 감독들도 슬픔을 전했다. 돈 코스카렐리 감독은 SNS를 통해 “스튜어트 고든은 우리가 왜 공포영화를 만들고, 보는지에 대해 ‘공포영화는 우리 스스로의 죽음에 대한 리허설’이라고 말했다. 스튜어트, 당신은 최고의 창작자였다. 평안히 잠들기를”이라고 말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도 해당 글을 공유하며 “평안히 잠들기를. 쾌활하고, 유쾌하고, 창의적이었던 호러 마스터(스튜어트 고든 감독)”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