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은 관성에 의해 같은 궤도를 맴도는 한 가족의 로드무비다.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 장녀는 동생들을 하나둘 차에 태우고, 네 자매는 섬으로 가는 배를 탄다. 그들은 그러나 “장남을 데려오라”는 큰아버지의 불호령에 몇번이고 선착장 매표소를 오가게 된다. 미션을 받고 다시 한길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각각의 자매들에게서 나를 발견했다”는 <이장>의 최이슬 제작실장은 이 로드무비의 크레딧에 한번은 제작부 일원으로, 다른 한번은 ‘매표소 직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네 자매에게 탑승권을 건네는 손이 바로 그의 것. “단역을 모두 캐스팅하기 어려워 스탭들이 십시일반 출연했다”는 전말을 들려준 최이슬 제작실장은 현장에서도 그 손처럼, “프로듀서와 팀원들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해냈다. 박지은 프로듀서의 부름을 받고 제작회계 역할로 합류한 그는 “위로부터 배우며 아래도 이끌어가겠다”는 마음으로 정산과 계약 진행 서포트를 담당했고 한정된 예산과 시간 속에서 현장 운영과 촬영 공지까지 도맡았다. “꼭 필요한 인원만으로 만든 영화다 보니 모든 스탭이 일당백을 했다.”
특성화고에서 영상을, 학부에서 영화를,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프로듀싱을 전공하며 한길을 달린 최이슬 제작실장은 “기획과 섭외를 비롯해 산업 측면에서 영화의 큰 그림을 아우를 수 있는” 프로듀서 일에 매력을 느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올곧게 제작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직진했다. 각종 국내 영화제에서 자원활동을 했고, 1인 배급사를 꾸려 친구들의 단편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했으며, 쇼박스 투자팀에서 인턴을 했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끝으로 영화제 자원활동가 이력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씨네21> 978호 독자모델 코너에 전해오기도 했다.“서른살 즈음에는 <씨네21>과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조금 이르게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해내기 위해 도전을 이어온 그는“어렸을 때는 10년 뒤, 2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정작 일을 시작하니 1, 2년 후의 내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는다”며 “이제는 인생의 단기계획을 세워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잘하고 싶다”고 한다. 내일부터 새로운 작품 촬영에 돌입해 돌아가자마자 짐을 싸야 한다는 그의 뒷모습에서 성실한 마라토너의 너른 등판이 보였다. 굳세고 미덥다.
That's it
UFO 타투
언젠가 로케이션 헌팅 중 폐차장에서 만난 개에게 팔을 물린 최이슬 제작실장은 작품에 대한 기억이 흉터로 남는 게 싫어 타투를 택했다.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예측불가인 미래를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UFO 도안을 골랐다고.
Filmography
제작실장
2020 <이장>
프로듀서
2018 <괜찮아>(단편)
2018 <사진들>(단편)
2018 <2020 발렌타인>(단편)
2018 <히스테리아>(단편)
2018 <컷>(단편)
2017 <델타 보이즈>
2015 <다시 만날 날까지>(단편)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