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다니엘 이즌 리얼> 현재 눈앞의 모든 상황이 우연이 아님을 깨닫는다
2020-04-07
글 : 이나경 (객원기자)
<다니엘 이즌 리얼>

부모가 싸우자 집 밖으로 나온 8살 루크는 총알이 박힌 채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의 모습을 목격한다. 유혈이 낭자한 총기사고 현장에서 벗어나려던 그는 자신을 다니엘이라 소개하는 환상 속 친구와 마주한다. 이들은 금세 친해지지만, 다니엘은 점차 본성을 드러내며 루크를 조종하려 든다. 결국 루크는 마음속에 다니엘을 봉인해버린채 성인이 되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다. 스스로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속에서 루크(마일스 로빈스)는 잠재워둔 상상의 친구 다니엘(패트릭 슈워제네거)을 불러낸다. 우연히 만난 캐시(사샤 레인)에게 호감을 보이는 루크를 위해 캐시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알려주고, 자신의 몸에 시험문제 풀이법을 적어와 루크를 도와주는 등 다니엘은 오랜만에 재회한 루크에게 즐거운 시간만 선물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상상의 친구는 조금씩 사악한 면모를 드러내고, 루크의 의지는 무시한 채 그의 일상을 침범하려 든다. 그리고 루크를 파괴한 뒤 그의 몸을 지배하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한다. 다니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던 루크는 어린 시절 자신이 목격한 총기사고 현장과 다니엘의 상관관계를 알게 되고, 현재 눈앞의 모든 상황이 우연이 아님을 깨닫는다.

<다니엘 이즌 리얼>은 영화의 각본가이기도 한 브라이언 드로의 소설 <In This Way I Was Saved>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획에서부터 완성까지 7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애덤 이집트 모티머 감독은 비슷한 테마의 단편 <섬 카인드 오브 헤이트>(2015)를 먼저 작업해 영화의 초석을 다진 후, <다니엘 이즌 리얼>로 세계관을 확장했다고 전한다. 트라우마로 조현병을 겪는 주인공 루크의 전사를 보여주며 사이코드라마로 시작하는 영화는 스릴러에 큰 틀을 둔 채 호러, 오컬트 등 여러 장르를 포용한다. 이런 혼합과 변주를 바탕으로 인간의 근간을 뒤흔드는 공포를 다양한 시각효과로 형상화하고, 독특한 분위기와 신선한 긴장을 유발한다. 하지만 초반의 기이한 에너지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며 급격히 선회하는 후반부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음악도 영화의 호흡과 공포분위기 조성에 한몫하지만, 이 역시 중반부를 넘어갈수록 제 기능을 잃은 채 스크린 속을 떠돈다. 그럼에도 끝까지 비주얼 랭귀지로 응답하려는 영화의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마지막으로 치달으며 마주하게 될 ‘핀헤드’(pinhead) 형체에서 <헬레이저> 시리즈가 연상되는 등 장르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장면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렇듯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의 심리묘사와 신체훼손에서 오는 시각적인 공포를 절묘하게 섞은 영화는, 비주얼 효과를 통해 인간의 심연을 시네마틱하게 그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로 악몽과 같은 참담함에 지배당한 제이콥의 현실을 그린 작품 <야곱의 사다리>(1990)와 자연스레 겹치는 잔상과 분위기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제이콥을 연기한 배우 팀 로빈스의 아들 마일스 로빈스가 <다니엘 이즌 리얼>의 루크 역을 맡았다. <할로윈>(2018)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마일스 로빈스, 모델 활동과 연기를 병행하기 시작한 패트릭 슈워제거, 제69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노래>(2016)로 화려하게 데뷔하며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한 사샤 레인 등 할리우드의 전도유망한 신예배우들을 <다니엘 이즌 리얼>에서 만날 수 있다. 두 자아의 경계가 흐려지고 충동할 때마다 변화하는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해낸 마일스 로빈스는 제52회 시체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애덤 이집트 모티머 감독은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부천 초이스 장편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CHECK POINT

비주얼 랭귀지

오랜 기간 뮤직비디오 작업을 한 애덤 이집트 모티머 감독의 감각을 영화 전반의 시각효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체훼손을 통한 인간 심연의 공포를 표현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한 비주얼 재현에 주목하자.

장르의 혼합과 변주

장르영화 마니아인 감독은 <페르소나>(1966), <엑소시스트>(1973), <레퀴엠>(2000),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2008) 등으로 영화의 정서를 구축했다고. 또한 <악마를 보았다>(2010),<스토커>(2013)와 같은 한국영화의 훌륭한 만듦새를 닮고 싶다고도 밝힌 바 있다.

전도유망한 신예들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2세들인 마일스 로빈스(수잔 서랜던과 팀 로빈스의 아들)와 패트릭 슈워제네거(마리아 슈라이버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아들)의 조합이 신선하다. <아메리칸 허니: 방황하는 별의 노래>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사샤 레인의 출연 또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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