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는 금세 대답하면서, ‘당신은 시네필인가요’라는 질문에는 답을 주저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누가 봐도 영화광인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들을 뜻하는 ‘시네필’이란 단어는 언제부턴가 대다수의 영화 팬들이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거리감을 가지게 된 듯하다. 영화라는 매체예술의 외연이 확장되고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 또한 다각화된 이 시대,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영화를 향한 사랑의 행위들을 설명하기 위해 시네필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씨네21> 창간 25주년을 기념하는 연속 특집의 세 번째 기획이자 마지막 특집인 ‘우리 시대의 시네필’은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했다.
<스크린>과 <로드쇼>, <씨네21>과 <키노>, 프랑스문화원과 서울아트시네마, 영화마당우리와 서울영화집단. 담론을 형성하는 매체와 공간을 중심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이고 그 저변이 확장되었던 과거의 시네필 문화와 달리 20대부터 40대 초반에 해당되는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의 시네필 커뮤니티는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단절되어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어렴풋이 그 존재만을 인식하고 있던 새로운 세대의 영화적 동지들을 호명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번 특집에서 소개할 젊은 세대 시네필 57인의 이야기는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지금, 이곳의 영화 문화에 대한 소중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해리 포터> 시리즈, <실미도>와 <괴물> 등의 천만 영화를 통해 영화를 접하고 IPTV, 곰플레이어 무료 영화 등의 플랫폼을 통해 과거의 영화를 사랑하게 된 이들은 멀티플렉스와 독립예술영화관,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를 오가며 특정 플랫폼에 권위를 부여하기보다 자유분방하게 영상 관람 문화를 즐기는 존재들이다. 시네필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위계와 권위를 거부하며, 예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영화에 대한 건강한 리액션을 꿈꾸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미 당도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선배 세대 시네필의 ‘원죄’ 에 대한 이들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남성 중심의 위계 서열 문화와 일부 해외 평론가들을 지나치게 신봉하는 폐쇄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이전 세대과 구분 짓기를 시도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시네필들이 만들어나갈 새로운 시대의 영화 문화가 사뭇 기대된다. 설문에 응한 이들 중 다수가 담론을 형성할 지면의 부족을 이야기했다는 점도 마음에 남는다. <씨네21> 또한 매년 개최하는 영화평론상을 통해 지면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줄 필자들을 찾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앞으로 밀레니얼 세대의 시네필들을 위한 담론의 장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겠다는 다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