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아유]
'바람의 언덕' 장선 - 연기는 내 운명
2020-04-21
글 : 조현나
사진 : 백종헌

<바람의 언덕>의 한희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았음에도 어떠한 원망 없이 엄마의 상처까지 보듬고 껴안고자 하는 속 깊은 딸이다. 서툰 엄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한희의 노력은, 오랜만에 재회한 두 모녀가 조금씩 거리감을 좁혀가는 원동력으로 기능한다. 매 작품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를 선보이는 박석영 감독의 캐스팅 감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장선은 <바람의 언덕>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자신의 연기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자신이 연기한 인물에게 매번 미안함이 남는다는 장선의 말에서 그가 연기한 한희의 자상함과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어떻게 <바람의 언덕>에 캐스팅되었나.

=2015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석영 감독님을 뵀는데 그때 나중에 같이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후 내가 참여한 연극 <모럴 패밀리>를 직접 보러 오셨고, 잘 봤다는 후기와 함께 배역을 제안해주셨다.

-필라테스 강사로 일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하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더라.

=강사로 활동할 당시의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감독님이 그 사진을 보고 한희를 구상하셨다. 그래서 내가 주짓수를 했으면 한희도 주짓수를 했을 거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웃음) 수업하는 신의 대사들은 과거의 경험을 살려 즉흥적으로 한 경우가 많다. 필라테스는 일대일 수업이 많아서 영분(정은경)과 한희가 가까워지는 과정과 잘 어울리기도 했다.

-한희는 밝고 실없다 싶을 정도로 잘 웃는 인물이지만 실제 그 속엔 상처와 외로움이 공존한다. 그러한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연기했나.

=한희는 커다란 기쁨이라는 뜻으로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러 방어기제를 갖고 있지 않나. 하지만 한희의 방어기제는 웃음, 그 하나다. 나도 진심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웃어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지 한희가 가깝게 느껴졌다.

- “엄마를 어떻게 미워해야 될지도 모르겠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폭언을 퍼붓는 엄마가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한희는 어떻게든 엄마를 이해하고 끌어안으려 한다.

=날선 말들을 버티고 서 있어야 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이긴 했다. 다만 한희가 영분의 사랑을 느낀 순간이 이미 여러 번 존재하지 않았나. 영분이 호떡을 나눠주고 대신 전단지를 붙여주기도 했고. 그래서 한희는 그 아픈 말들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설령 그게 전부일지라도 일단 이 사람을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계기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나.

= “저러다 배우 되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어릴 때부터 TV 속 사람들을 따라 하는 걸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교회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성극에 참여했는데 나는 천사1이라는 작은 역할을 맡았다. 그럼에도 그때 같이 연습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재밌어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연기와 일을 병행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이 둘을 계속 같이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통과 거짓말> 촬영을 계기로 내가 연기를 정말 좋아하고, 이 일이 내 운명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연기를 지속하기위함이라고 생각하며 이제는 경제적인 활동도 즐겁게 한다.

-관객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 “나 저런 사람 본 적 있어” 혹은 “너무 나 같아서 마음에 남았다”라는 말을 들을 때 기쁘다. 내가 한 사람의 삶을 잠시나마 대신 산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끼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나를 통해 한 인물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나 자신보다 내가 연기한 인물을 남기는 배우가 되고 싶다.

2019 <창진이 마음> 2019 <바람의 언덕> 2018 <밤낚시> 2016 <그렌델> 2016 <해피뻐스데이> 2015 <소통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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