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바람의 언덕' 강지현 조명감독 - 미장센으로서의 조명
2020-04-27
글 : 조현나
사진 : 오계옥

어릴 때 두고 간 딸 한희(장선)와 재회한 영분(정은경)은 차마 자신이 엄마라 밝히지 못한 채 한희의 필라테스 수업을 수강한다. 회차를 거듭하며 가까워진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며 골목길을 걸어간다. 그런 두 사람을 인도하듯 저 멀리 가로등 하나가 골목길의 어둠을 밝힌다. “이 광원이 두 사람의 빛나는 앞날인 것처럼 보여주자”는 강지현 조명감독과 박석영 감독의 협의에 따라 연출된 신이다. “비록 현실은 슬프지만 어디선가 밝은 희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다.” 강지현 조명감독은 “인물들의 외로움과 불행을 차갑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빛이 인물들을 감싸안도록” 연출했고, 이를 위해 나트륨등과 볕이 잘 드는 낮 시간대를 활용했다. 때문에 추운 겨울의 태백이 주 배경임에도, <바람의 언덕>에는 초봄의 뭉근한 포근함이 머문다. 한희가 영분을 붙잡는 다리도 “본래 굉장히 칙칙하고 어두운 장소였지만, 20여개의 나트륨등을 달아 인공적인 느낌 없이 최대한 자연스럽고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한희의 수면 텐트 속에는 모닥불을 피워놓은 것과 같은 온화함을 표현하기 위해 장선 배우가 직접 제작한 조명을 달았고, 영분과 윤식(김준배)이 술잔을 기울인 주점에도 한지로 감싼 조명을 설치해 예스러움과 따뜻함을 강조했다. 공을 들인 만큼 <바람의 언덕>은 그의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 중 하나다. 강지현 조명감독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옷이 젖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며 <바람의 언덕>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시나리오작가를 꿈꾸며 영화과에 입학한 강지현 조명감독은 학부 시절 동기의 제안으로 조명팀에서 현장을 경험했다. “막상 해보니 불을 켠다는 것이 무척 재밌는 일이었다.” “빛으로 그림을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낀” 강지현 조명감독은 <영어 완전 정복>(2003)을 시작으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바람의 언덕>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했다’고 티를 내는 조명보다 ‘했나?’ 싶게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조명”이 좋은 조명이라 여기는 강지현 조명감독을 두고, 박석영 감독은 “섬세하게 빛을 그리는 근사한 예술가”라 칭하기도 했다. “내러티브가 잘 표현되는 미장센으로서의 조명”에 중점을 둔다는 강지현 조명감독의 차기작은 김현탁 감독의 <아이>다.

That's it

프리다 칼로 도록

“남미에 여행을 갔다 우연히 들른 헌책 방에서 구입했다. 자기 처지를 비관하지않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프리다 칼로가 용감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이후 여행을 갈 때마다 반드시 들고 다닌다.”

Filmography

조명감독 2019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바람의 언덕> 2019 <발광하는 현대사> 2018 <늦여름> 2016 <어떻게 헤어질까>

조명팀 2014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2013 <사이코메트리> 2013 <감기> 2011 <고지전> 2010 <이끼> 2006 <비열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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