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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 조일지 대표, “잘 만든 여성영화를 더 많은 관객에게”
2020-04-30
글 : 배동미
사진 : 백종헌

젊은 여성감독의 독립영화가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하지만 독립영화라 극장이나 온라인에서 쉽게 보기 힘들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여성감독들이 상업영화 연출 기회를 거머쥐기도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그렇게 우리가 놓친 영화와 여성작가는 모두 몇이나 될까. 미래의 가능성까지도 포함돼 있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안타깝다. ‘퍼플레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독립영화와 여성 서사란 교집합에서 출발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이다. 첫 영화를 만든 여성감독들의 제작기 ‘My First’를 싣는 온라인 매거진 <퍼줌>도 발행 중인 퍼플레이는 지난해 12월 20일 새 단장을 마치고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소중한 공간을 마련한 조일지 퍼플레이 대표를 만나 여성주의 영화란 무엇이고 현재의 상황에 어떻게 틈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물었다.

-퍼플레이를 통해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아 비전 경쟁에서 대상을 수상한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를 드디어 봤다. 마음만 먹고 보지 못하다 퍼플레이로 편하게 봤는데 확실히 이런 공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퍼플레이를 열게 되었나.

=궁금했다. 한국퀴어영화제에서 일할 때 프로그램을 짜고 출품작을 받아보면 여성감독의 작품이 엄청 많은데 막상 멀티플렉스에 가보면 남자감독들의 작품만 걸려 있었다. 왜 그럴까 궁금했고 더 깊숙하게 파고들게 됐다. 2016년 여성학 연구자, 인권활동가, 회사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우리가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가장 중요한 건 여성영화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고, 자연스럽게 스트리밍 서비스로 생각이 이어졌다.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원서를 쓰고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소자본을 모은 다음에는 이 예산을 가지고 개발과 디자인, 영화 수급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2017년 12월 31일 애플 베타 버전을 내놨다. 버그가 있고 때론 결제도 잘 안되는 상태로 2년 정도 서비스했지만 8천여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2019년 8월부터 기존 자료와 기술을 근거로 웹사이트를 개편하기 시작했고 2019년 12월 20일에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퍼플레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용자들은 넷플릭스와 왓챠 같은 기존 플랫폼에 익숙하다. 퍼플레이가 자본도 적고 인력도 부족하지만 당연히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보기와 같은 서비스를 개발해나갔다. 지금의 서비스에 만족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발전해나갈 계획이다.

-조 대표에게 여성 서사, 여성영화란 무엇인가.

=여성감독이 제작한 영화, 여성이 주변부에 머무는 게 아니라 주연 캐릭터로 나오는 영화, 여성 서사가 나오는 영화, 성평등한 영화를 여성영화라고 생각하고 서비스하고 있다.

-퍼플레이는 월정액이 아니라 보고 싶은 영화를 건건이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불편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월정액을 끊어놓고 안볼 때도 많은 스트리밍 플랫폼보다 경제적이란 생각도 든다. 이렇게 전략을 짠 이유가 있나.

=월정액으로 서비스하면 초기 진입 자금이 너무 많이 든다. 소비자들은 보고 싶은 영화를 그때그때 결제해서 볼 수 있어 편하고 우리로선 콘텐츠의 양을 늘리려고 무리하지 않고 퀄리티를 높여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창작자와의 정산은 어떻게 하나.

=감독들이 70% 가져가고 우리가 30%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정산은 반기별로 하고 있고 모든 결제 내역과 개요를 정리한 문서를 보내주고 있다. 지금 현재 가장 큰 고민은 회원 수를 늘려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인데 이는 감독들에게 수익을 돌려주기 위함이다.

-퍼플레이 가입자들의 성향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일단 여성영화를 보는 사람들 중에는 20~30대 여성이 많다. 그렇지만 고객을 한정지어 생각하고 있진 않다. 처음 시작할 땐 예산과 시간이 없어서 타기팅하고 홍보했지만 누구든지 여성영화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퍼플레이 인기작을 소개해달라.

=배우 이주영이 나온 영화들이 인기다. 조경원 감독 연출에 이주영이 출연한 <놀던 날>의 인기가 높은데 다른 데선 볼 수 없다. 4월 22일 민미홍 감독이 연출하고 이주영이 출연한 <어떤 알고리즘>이 공개됐다.

-매거진 <퍼줌>에서 처음 영화를 만든 여성감독들이 직접 기록을 남기는 ‘My First’ 꼭지가 인상적이었다.

=여성감독들이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첫 작품을 하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감독이 많았다. 최근 작품이나 두 번째 작품으로 글을 써달라고 요구하기보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여성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에 대한 글을 받아서 막 들어오려고 하는 여성 영화인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전공자가 아닌데 영화 유통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20대 초반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 친구를 따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갔다. 아무 정보 없이 어떤 영화를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 해외작품이었고 단편영화 묶음이라서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사이다’영화였다. 같은 장면에서 웃고 박수치고 환호하는 영화 관람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러곤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왜 극장에서 보지 못하는걸까 싶었다. 그 뒤로 영화의 재미를 알게 됐다. 10년 정도 마포FM에서 활동하면서 당시 양선우 한국퀴어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나 영화제 일을 같이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2013년 12월에 한국퀴어영화제에 들어가서 2014년 14회 영화제를 준비했고 19회까지 했다.

-팟캐스트나 리뷰 등 여성 서사를 전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유통에 더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제 현장에서 작품 하나하나를 잘 포장해서 관객과 연결해주는게 너무 재밌었다. 이미 잘 만들어진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강하다. 영화제 일을 할 때 영사실 안에서 영화가 잘 상영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동적이었다. 영화제에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불을 다 안 켜지 않나. 그것도 너무 좋았다.

-마지막으로 인생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주의 영화는 무엇인가.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를 최근에 봤는데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다. 퍼플레이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없어서 집에서 IPTV로 봤는데 한번도 안 끊고 푹 빠져서 봤다. 가지고 있는 돈에서 뭘 포기해야 할까를 놓고 고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무언가를 포기하는 모습이 좋았다. 내가 대표지만 퍼플레이로 직접 결제해서 본 변영주 감독의 단편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도 정말 좋았다. 박완서 작가와 일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나간 삶에 대해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그분들이 담담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했다. 두 작품 모두 펑펑 울면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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